브런치북 조약돌 셋 04화

겁쟁이 현자와 용감한 멍청이

수 水

by 하이디 준

내가 바보로 지내기를 자처하는 이유는, 가장 큰 이유로는 ‘사람들이 무서워서’겠지만, 한편으론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고 마는 나 자신을 타이르기 위한 목적도 있었다. 물론 나는 얼마 되지도 않는 타인들과의 만남에서 좀 다르다는 평가를 받거나 스스로 그렇게 느끼곤 했지만, 대부분은 그걸 합리화하며, 혹은 오만함의 재료로 써가며 내가 아니라 세상이 바뀌어야 하는 거라고 믿고 있었다. 다만 그 싸움에 지치자 (애초에 장기전을 할 만한 체력도 정신력도 안되었으니까) 그저 나를 가두고, 세상을 쳐냈다고 눈을 질끈 감고 선언하고는, 내가 편할 수 있는 길들만 선택하고, 그런 시간과 사람들에만 신경을 쏟았다.


사실 그건 어느 정도는 필요한 일이었다. 나는 모든 걸 비워내고, 삶에 대한 가치관을 재정립할 필요가 있었으니까. 그리고 그렇게까지 하다보니 동시에, 내가 그렇게 유별난 존재가 아니므로 안심해도 된다는, 나 역시 멍청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그럼에도 스스로의 멍청함에 웃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하지만 멍청한 걸 인지한 이후, 개선하려는 노력을 하지 않으면, 나는 그냥 멍청한 것에 족하는 겁쟁이일뿐이다. 대단히 놀라운 일은, 나는 내가 멍청이인 것은 그럭저럭 잘 수용하고서도, 내가 겁쟁이란 사실은 쉽게 받아들이지 못한다는 거다. 그러니까 나는 겁쟁이인 현자보다 용감한 멍청이를 더 존경하는 모양이다.


무지한 것은 알아갈 수 있다. 배움의 길이 열려있다. 물론 그렇다고 지혜나 깨달음이 더 얻기 쉽다고 말할 수는 없다. 하지만 늘 그렇듯, (모든 이야기들 속에서, 그리고 어쩌면 현실 속에서도) 그 모두를 얻어내려면 용기가 선행되어야 한다. 일어설 용기, 마주할 의지, 알고자 하는 집념. 그 힘을 뭐라 부르던 간에, 그건 배우거나 가르칠 수도, 주거나 받을 수도 없는 부분이다.


사람들은 여기에 의문을 표하겠지. 많은 성공한 이들이 과거를 회상하며, 누가, 혹은 무엇이 나에게 용기를, 동기를, 목적을 주었다고 말하니까. 하지만 그 부분에서 사람들은 착각하는 거다. 그 힘은 절대 외부에서 오지 않는다. 외부에서 수많은 자극이 가해진다 하더라도, 내가 보지 않고, 듣지 않고, 느끼지 못한다면, 그건 존재하지 않는다.


그걸 붙잡고, 그걸 내 것으로 하기로 마음먹어야 한다. 언제나, 언제나, 마지막 결정의 순간엔 오직 나 혼자만이 서 있다. 다른 어떤 누구도, 그 어떤 존재도 그 순간만큼은 개입하지 못한다. 그건 엄청난 책임인 동시에, 엄청난 자유로움이다. (물론 책임과 자유가 실은 거의 동일하다고 할 만큼 가까운 단어란 걸 깨달은 지는 얼마 안 된듯 싶다.)


내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무엇인가. 실은 사람들도 아니다. 타인은, 정말이지 타인은 항상 부차적인 문제다.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언제나 나 자신이다.


나는 내가 변해갈 모습이 두려운거다.


시행착오와 수련을 통해, 과거나 현재의 나를 용인하고 사랑하는 것까지는 어떻게든 해내겠는데, 모습도 형태도 색깔도 냄새도 모르는 미래의 나에 대해선 도무지 어떻게 해볼 수가 없는 거다. 과연 그 새로운 ‘나’도 나는 사랑할 수 있을까? 아무것도 모르는데? 이쯤되면 우스워진다. 내가 유일하게, 세상에서 내 의지로 바꿀 수 있는 존재인 나 자신을 두려워한다는 건, 실상은 코미디다. 괜히 멍청이라고 자처하는 게 아닌 거다.


그럼 그 미래의 ‘나’는 지금의 ‘나’가 사랑할 수 있는 방향으로 커가면 되잖아.

어느 꼬마 아이라도 어이없이 내뱉겠지.

애초에 ‘이상적 자아상’을 아직도 버리지 못한 거라면, 나는 과거나 현재의 나를 모두 수용했다고 말해도 되는 걸까.


나는 여전히 분열되어 있다.

아직도 부서진 조각들인 채 그대로.

그래서 그렇게나 먼지와 재로 화해버리는 것에 아주 큰 매력을 느끼는 거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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