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 水
스티븐 킹의 ‘더 샤이닝’을 읽으며 진정 무섭고 견딜 수 없었던 것은 유령도, 좀비도, 피도, 미쳐가는 사람도 아닌, 아버지라는 존재였다. 괴물로 변해가는 주인공, 그 기억 속의 괴물 같은 아버지, 무기력한 어머니. 부모를 닮고 싶지 않다는 인물들의 심정에 공감하며, 나는 그 장면들의 끔찍함에 몸서리쳤다. 홀린 듯 읽으면서도, 더 이상 읽고 싶지 않은 기분. 또다시 악몽을 꾸게 될까 두려웠다. 잘 아문, 새 살로 덮인, 오래 된 상처. 물론, 그리 오래 지나진 않았는지도.
하지만, 다행스럽고도 놀랍게도, 연구실 문을 열었을 때 문득 돌아보던 이는, 안경에 살짝 걸리는 시선에서 지식의 날카로움과 나이가 주는 이해의 부드러움이 동시에 드러나는, 여태껏 본 적 없던 표정과 얼굴을 한, 그러나 실은 언제나 그렇기를 바라왔고, 또 그것이 진짜 모습이리라 믿고 싶었던, 그런 아버지였다. 연구실에 걸맞는, 노년의 학자의 얼굴을 어렴풋이 닮아가는, 순간적인 아버지의 인상. 그 인상으로 지난 기억들을 모두 지워버릴 수 있다면.
날씨가 믿을 수 없을만큼 청명한 가을날들이었다. 유난히 올해 가을은 만족스러울만큼 길었다. 그래서 나는 세상 그 누구보다 행복한 순간들을 맛볼 수 있었고, 그 어느 때보다 온화한 마음으로, 누구든 사랑할 것 같은 기분으로 지냈다. 여태껏 자유롭기를, 무언가에서 풀려나기를 한없이 기원했었는데, 올해, 어느 순간 그 일이 서서히 일어나기 시작했다. 늘 예상했던 것처럼, 결국 족쇄는, 감옥은 내 안에 있는 것이었지만. 그랬기에 더욱 풀려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타인이 강요하는 게 아니라 실은 내가 욕심을 부린 것 뿐. 무엇을, 누구를 위해, 왜? 라고 묻는 순간, 모든 틀은 산산이 부서졌다. 견고한 세계, 절대적 규율. 그런 건 존재하지 않았다. 다만 한없이 자유로운 내게 선택이 있을 뿐. 가장 중요한 건 행복, 내가 살아있는 이 순간에 느끼는 그 벅차오르는 환희의 감정뿐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걸 거스르지 않으면, 세상도 자연스레 나와 평화를 이룬다는 것을, 이제 막 깨달은 참이다. 그리고 그게 지나고 나니, 무엇도 나를 건드릴 수 없는 경지가 있음을, 조금씩 알아간다.
아, 정말로 강한 건, 버티고 서는 단단한 바위가 아니라, 이리저리 흘러가는, 그러나 아래로, 아래로 향하고야 마는 순한 물이구나. 더 이상 날을 세우지 않아도 된다는 것에 안심해서, 나는 한없이 흘러넘칠 것만 같은 상태가 된다. 순하고 순한, 온화하고 평화로운, 그러나 그렇기에 가장 강한 사람.
지난 기억들을 지울 순 없다. 어떤 물이 흘러도 그건 마찬가지. 하지만 여기까지 오게 만든 건 바로 그 기억들과 고통들이 있었기 때문이다. 지나간 것은 이미 지나간 것. 나를 토닥이고 나를 사랑하는, 아직은 살짝 흐릿한 나에게로 조금씩 다가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