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e practical romanticist
우리는 왜 반드시 특별한 ‘무언가’가 되어야만 하나.
드라마 쌈 마이웨이에서 설희의 목소리를 통해 임성춘 작가가 말했다. 너네는 다 꿈도 있고 다 잘 났는데 나 하나쯤은 그런 대단한 거 없어도 되는 거 아니냐고 그냥 평범하게 좋은 엄마 하면 안 되는 거냐고. 그래, 가만 생각해보면 이 세상에 몇 명쯤은 설희가 말한 것처럼 스펙이니 자기 계발이니 하는 그런 사회적 흐름에 편승하지 않아도 괜찮은 사람들이 있을 것 같다. 전 세계 인구가 60억이 넘는데 그런 사람이 다수는 아닐지라도 반드시 존재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사실 최근 요즘 들어 '반드시 어떻게 해야만 한다'는 각종 유튜브 채널이나 SNS의 거국적인 유혹에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는데 순간 '아차!' 싶다. 애초에 내가 SNS 계정을 만든 것도 누군가에게 보이고 싶다거나, 보다 많은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서가 아니었다. 그냥 하루하루 일기 대신 사진이나 짧은 메모로 나의 일상을 기록하고 싶은 이유가 컸다.
사람 간의 관계란 것도 그렇다. 아니 도대체 왜 반드시 나는 너에게 ‘어떠한’ ‘확실한’ 무언가가 되어야만 하나. 그냥 남자, 여자, 친구, 연인 이런 정의 없이 사람 대 사람으로 만나서 자연스럽게 이야기하고 교감할 수 있다면 그냥 그걸로 된 거 아닌가. 나랑 너는 친구야 도장 꽉. 너는 나만의 것이야 손가락 걸고 꾹꾹 약속. 왜 이렇게나 우리는 관계에 집착하는 관계 집착증 환자가 되어가고 있는 것인지. 그냥 그런 생각이 든다. 우리 그렇게 섣불리 미리 확정하지 말고, 지키지 못할 약속 따위 하지 말고, 친구나 연인이라는 정의 없이 천천히 그렇게 알아갈 수는 없을까.
그래서 나는 여기 이곳 타이페이에서 그냥 누군가의 특별한 무언가가 되지 않더라도, 많은 사람들이 원하는 경제적 자유를 결코 얻지 못하더라도 그저 인간의 기본적인 도리와 사람됨을 위한, 더 알고 싶은 순수한 지적 욕구를 충족하기 위한 개인적인 수양 측면에서의 독서와 자기 계발은 계속해서 해나가고 싶다. 왜냐면 나는 생계를 위해 매일 다니는 회사가 생각보다 싫지 않고, 아름다운 시를 읽으면 아직도 소녀처럼 몸이 붕 뜨는 것만 같고, 눈부신 음악을 들으면 여전히 십 대 시절 그때 생각했던 것처럼 마음 따뜻하고 몽글몽글한 사랑이 반드시 존재할 것이라 믿는 아주 아주 지극히 현실적인 로맨티시스트이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생각을 하는 내가 참 마음에 든다. 그래서 매일매일이 감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