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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하이디 Feb 20. 2022

That's just the way things are

삶의 진실






 나에게는 지금까지도 잘 잊히지 않는 굉장히 강렬한 색채를 가진 몇몇 인생작들이 있는데 그중 하나는 김용균 감독의 영화 '와니와 준하'이고 그중 둘은 미국의 쇼타임이라는 채널에서 방영됐던 드라마 'Queer As Folk'이다. 가끔 난, 작품 속과 비슷한 경험을 한 적이 결코 없고 이야기 속 캐릭터와 닮은 구석이 하나도 없는데 왜 이렇게 현실이 아닌 가공의 스토리에 내 감정을 이입하고 마치 내가 그 인물이 된 것처럼 마음 아파하는지 항상 그 원인을 알고 싶었다. 그런데 최근에 닳고 닳게 봤던 몇몇 장면들을 곱씹어 보면서 느낀 점이 하나 있다. 이건 어쩌면 ‘애도’의 한 행위일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김형경 작가님의 책 ‘좋은 이별’에 이런 내용이 있다. 사람은 인생을 살면서 저마다 감당할 수 없는 슬픔이나 이별을 만났을 때 그것을 마주하는 태도가 다 다른데 그것으로부터 회피하는 사람, 도망치는 사람, 받아들이는 사람, 포기하는 사람 등등 결국 여러 방식으로 이 슬픔을 해결하려 하지만 종국엔 반드시 어떠한 방법으로든 자신을 위로하고 애도를 해야만 하며, 이 애도를 제대로 하지 않으면 지금 당장은 그 상처가 아프지 않고 아무렇지 않아 보여도 언젠간 반드시 수면 위로 떠올라 자신을 힘들게 한다는 것이었다. 난 이 구절을 처음으로 읽었던 그 당시엔 이해가 잘 가지 않았지만 시간이 조금 지난 뒤 상처가 곪고 터지고 난 후 제대로 약을 바르지 않아 고생했던 기억이 떠오르면서 어쩌면 내가 가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무의식 속 상처와 추억, 경험 및 아픔 등이 '나의 지금'에 영향을 끼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때 불현듯 내 머릿속에 '애도'라는 한 글자가 떠올랐다. 내가 지금 간접적으로 느끼는 이 감정들은 아마도  김형경 작가님께서 말하고자 하셨던 그 애도의 한 부분이 아닐까? 하는. 동생 영민과의 추억이 깃든 옛 집에 준하와 함께 사는 와니, 그런 동생 영민의 방을 단단히 걸어 잠근 채 오랜 세월 그 누구에게도 말할 수 없었던 상처를 가진 와니, 준하를 사랑하지만 결코 사랑한다 표현할 수 없었던 아픔을 가졌던 와니, 결국 비가 억수같이 쏟아지던 그날 준하가 떠나고 냉장고 자석에 걸려 있던 집 열쇠와 준하가 마지막으로 남긴 메모를 본 순간 봇물 터지듯 펑펑 눈물을 쏟아내던 와니, 영화 속 와니를 조용히 숨죽이며 지켜보다 감정이 최고조로 치닫던 그 클라이맥스 앞에 나도 한참을 아무 말 없이 그저 펑펑 울었다. 그러고 보니 처음 이 영화를 봤던 날도 그렇게 비가 억수같이 쏟아졌었는데. 이렇게 돌이켜 보면 나에게도 그런 가슴 아픈 마지막이 있었지만 지금은 흐릿해진 기억 속 저편에 아주 소중한 추억으로 잘 남아 있고 이제 더 이상 슬플 이유도 마음 아플 이유도 없다. 오히려 개운한 마음이다. 나는 한 동안 영화 속 와니의 감정과 슬픔에 굉장히 심취해서 그녀의 취향까지 복붙 할 정도가 되었는데 극 중 와니가 좋아했던 '해물탕'과 '화이트 와인' 조합이 바로 그것이다. 여기선 해물탕을 찾아보기가 쉽지 않기에 난 비가 오는 날 종종 맑은 탕 베이스의 타이완 식 훠궈와 화이트 와인을 즐겨 마시곤 한다.





 Queer As Folk  '브라이언'이라는 캐릭터도 한때 내가 굉장히 심취했던 인물 헤테로를 혐오하고 신을 믿지 않으면서(신을 믿지 않고 부정하는 부분은 어느 정도 나와 비슷한  같다. 그래서  끌렸는지도.) 쿡쿡 사람 속을 긁어놓는 어마 무시한 독설때문에 초반엔 비호감 캐릭터였으나  중후반으로 갈수록 오히려 거짓을 읊지 않고 본인의 일에 최선을 다하면서 항상 자신의 감정에 솔직하고 헤테로든 게이든 레즈비언이든 혹은  어떤 무엇이 되었든지 간에 인간은 본인이 추구하는 삶의 방식으로 행복을 결정할  있다는 지금  삶의 가치관에 지대한 영향을  메시지를 끊임없이 내뱉던, 갈수록 호감이 되는 캐릭터로 변모하였던 기억이 난다.

 굉장히 인상적인 대사 하나를 꼽으라면 주저 없이 꼽는 하나가 있는데 절친 마이클에게 동성애자라고  특별할  없다는, 동성애자라서  애틋하고 영원히 사랑할 것이라는  썩어빠진 사고방식을 버리라는 충고와 함께 날린 날카로운 한방이 바로 그것이었다.


'헤이 마이키, 이성애자 커플이 그렇듯 동성애자 커플도 서로 좋아하고 사랑해서 결혼할 수 있어. 하지만 오히려 그렇기에 이성애자 커플과 똑같이 마음이 변하고 사랑이 식고 이혼할 수도 있다는 거, 알고 있니?'


 난 이 씬에서 진짜 망치로 머리를 얻어맞은 기분이 들었다.  그래,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라는 게 나만 남다르고 눈앞의 이 사람만 특별하고 우리 사이는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고 하는 그런 마약과도 환상이 항상 존재하는데 동성애자라고 별반 다를 거 없구나. 관계라는 건 성별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는 거구나. 결국 이 모든 것의 정답을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나의 깊은 마음속 무의식 세계 속에 꽁꽁 숨어 지내면서 꼭 한 번씩 이렇게 튀어나와 나에게 자극을 준다는 것을 난 아주 어렴풋이 나마 알게 되었다. 그렇기에 더 이상 내가 왜 이런 감정을 느끼는지 궁금하지 않고 내가 왜 이런 생각을 하는지 의심하지 않는다. 내가 겪은 경험과 상처, 아픔이 지금의 나를 존재할 수 있게 하기에 오히려 더 고맙고 감사하고 나라는 사람의 뿌리가 더 단단해지는 느낌이 든다.




 

 난 신을 믿지 않고 종교를 가지지 않지만 '법륜스님'을 한 인간으로서 참 존경한다. 그분 말씀 중에 지금까지도 나의 마음속에 큰 울림을 주는 한마디가 있다.



사랑해도 헤어질 수 있고 미워해도 만날 수 있다.

그게 삶의 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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