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계 초보자'의 인생 연습
요즘 정신없이 바쁜 업무 덕에 쉬는 날엔 멍 때리기 급급한 나의 일상에 아주 작은 물결이 일었는데 그것은 바로 '유미의 세포들’이라는 한국 드라마를 만나게 된 것이다. 물론 이 작품은 원작 웹툰이 워낙 유명해서 아주 예전에 우연히 접한 적은 있었지만 진지하게 보지 않았기에 그저 단편적인 기억들만 생각이 났다.
'아 그래 세포들이 참 귀여웠지.
근데 그걸 드라마로 만들었다고?'
와 같은 기억들 말이다.
으레 만화나 웹툰을 원작으로 하여 각색하는 작품들이 많기에 그리 큰 기대 없이 아주 작은 호기심에 아주 짧은 클립 영상을 클릭해서 보게 되었는데 그 클릭 한번이 나의 앞으로의 타이완에서의 삶에 커다란 방향성을 잡아주게 되는 계기가 되었다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그만큼 짧지만 큰 임팩트였다.
사실 우리는 친구를 만나 우정을 나누든 마음에 드는 이성과 썸을 타고 연애를 하든 어렵지 않게 전형적인 큰 틀 안에서의 클리셰들을 만날 수 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상대의 '우선순위'에 있어 내가 차지하는 등급은 과연 어디인가 하는 부분이 아닐까.
‘나야 쟤야?! 일이야 나야?!'와 같은 지금 생각해보면 도대체 왜 그런 질문을 했는지 당최 이해할 수 없는 저 말들은 내가 어렸을 땐 아주 흔하고 또 흔한 대사였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을 수가 없다. 그만큼 유치했었고 좋아하는 이의 눈에 나만이 담기기를 바랐던 적이 적지 않았으니까.
그때의 나를 후회하는 것은 아니지만 지금의 나는 이런 교훈을 얻었다. 이 세상엔 그 어떤 것도 나 자신 말고는 그 자체를 바꾸게 할 수 있는 사랑이라는 것은 없다고. 나를 사랑하면 나 스스로 변화할 동기와 목표를 얻을 수 있기에 그것이 어떤 방향이든 나의 의지와 노력 여하에 따라 얼마든지 바뀔 수 있다. 아주 간단한 예로 '지금까진 오전 9시에 일어났지만 이제부턴 7시에 일어나서 조깅을 해야지'와 같은 것 말이다.
그렇지만 상대의 감정을, 사랑을 과연 내가 어떻게 바꾸고 변화시킬 수 있단 말인가? 이와 같은 이치로 나 역시 상대를 좋아하고 사랑하는 감정을, 그것의 우선순위를 과연 수치화할 수 있을까? 감히 말해보건대 할 수 없다. 나 역시 그렇게 할 수 없다. 그렇기에 극 중 구웅의 우선순위 1순위는 참으로 통쾌하고 또 무릎을 탁 치게 만드는 그것이 아니었나 싶다. 연애를 할 때마다 항상 우선순위가 바뀌던 유미와 달리 구웅은 어떤 누구를 만나든 항상 그의 인생 우선순위 1위가 자기 자신이지 않았던 적이 없었던 것이다.
나 역시 누군가를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하면서 항상 우선순위가 바뀌었던 것 같다. 내가 하고 싶은 일이나 먹고 싶은 것이 있더라도 항상 상대를 먼저 생각했다. 그것이 사랑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다. 그렇지만 그런 관계를 이어오면서 왜 표현하지 않느냐 왜 나를 사랑해주지 않느냐 보채기 시작하는 내 모습을 조우하게 되었고 그런 변화에 굉장히 혼란스러웠던 것 같다. 난 항상 내가 중요하고 나를 사랑하고 그보다 내가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었는데 그게 아니었던 것이다. 나는 그저 이기적이고 나를 사랑할 줄 모르는 '관계 초보자' 였다. 그것이 사실이었다.
자신을 우선순위 1순위에 두고 나를 진정으로 존중하고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일까. 지금도 정확히 그것의 답은 알 수가 없지만 어렴풋이나마 하나씩, 조금씩 연습해 가면서 알아가고 싶다는 생각이 든다. 그 연습의 최적의 장소가 바로 이곳 타이완이라는 것에 한치 의심의 여지도 없다. 시간이란 내 감각을 일깨우기도 전에 휙 하고 날아가버려서 어느새 나는 이곳 생활 만 5년을 넘기게 되었다. 지금 회사의 HR은 외국인 직원의 핸들링을 꽤 잘하는 편이라 내가 굳이 이미그레이션에 가지 않고도 타이완의 영주권 신청을 대신해서 진행해주고 있다. 굉장히 감사한 일이다.
앞으로 한국에 돌아갈지 이곳 타이완에서 영원히 살지 알 수 없다. 비혼 1인 가구로서 해외에서 장기간 생활하는 것이 녹록지는 않지만 하나의 큰 숙제를 해결해 가고 있는 중이니 우선 이곳에서 영주권을 안정적으로 취득하고 내 커리어업의 기회와 지금 보다 조금이라도 더 큰 소득을 얻을 수 있는 발판을 마련해야겠다는 플랜을 서서히 구체화시켜야 할 때인 것 같다. 독립적으로 경제적 자유를 얻어야지만 노후가 불안해지지 않지만 나는 지금도 중요하기에 이 부분을 어떤 식으로 잘 조율해나갈지가 관건 일 듯하다. 나는 조기 은퇴나 퇴직을 생각하지 않기에 파이어족이 될 생각은 없지만 ‘코스트 파이어족'이나 '바리스타 파이어족' 같은 용어의 개념을 살펴보니 내가 가려는 길과 비슷해서 참고해서 계획을 짜보는 것도 좋을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