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just need your asking
타이페이에서 생각보다 하기 힘든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바로 데이트. 물론 장소에 국한되는 문제는 아닌 게 확실하지만 나의 경험 데이터에 기준을 둔 지극히 개인적인 판단에 근거하는 이야기다. 그런 내게도 가뭄에 단비 내리듯 몇몇 남자들과 밥을 먹는 기회가 생기기도 하는데 몇 년 전 우연히 알게 된 미국에서 태어나고 자란 일명 ‘아메리칸 타이와니즈'와 저녁을 먹게 되었다.
즐겁게 밥을 다 먹고 계산을 하려는데 마침 내가 먹고 싶었던 것을 먹어서 내가 밥을 사거나 타이페이에선 늘 그렇듯 더치페이를 할 생각이었다. 물론 데이트를 할 때 동서양을 막론하고 남자들이 대부분 돈을 내는 경우가 많긴 하지만 나는 평소 '남자한테 밥, 커피, 차 등등을 자주 얻어먹고, 마시고, 타고 다니는 여자'(한 드라마에서 공효진 씨가 한 대사를 내가 하게 될 줄이야!)가 아니었기 때문에 되도록이면 더치페이를 하는 것이 편하고 자연스러웠다. 그렇지만 상황을 보고 상대가 호의를 베풀 땐 되도록 그 호의를 무시하지 않으려는 노력도 나름 했다고 생각한다.
그런데 이 남자, 밥을 다 먹고 번갯불과 같은 속도로 계산을 하려는 자세를 취하기에 나는 그런 그에게 ‘오늘 내가 먹고 싶은 걸 기분 좋게 먹었으니 내가 내겠다.’라고 정중히 말했다. 그런데 그는 내 말을 제대로 듣지도 않고 점원의 눈치를 보다 본인의 카드로 쏜살같이 계산하더니 '나중에 이야기하자.'며 나를 가게 밖으로 끌고 나와서 하는 말이 아주 가관이다.
"나는 왜 항상 남자가 여자에게 ‘오퍼’해야 하는 건지 이해를 잘 못하겠어."(물론 영어로)
남들 눈엔 쿨하고 젠틀한 남자로 보였을 그 남자의 멘트에 나는 너무 어이가 없었지만 그냥 넘기기로 했다. 우리 더치페이할까 이 말 한마디를 못하고 내 몫까지 다 낸 그의 부질없는 체면과 함께 이어지는 생색, 플러스 내 얘기를 듣고 난 후 오 마이 갓 너 참 생각이 깊은 애구나 유얼 쏘 디프런트와 함께 다음날부터 이어지는 폭풍 연락. 나는 정말이지 이 세상에서 찌질하고 자기 체면만 중시하면서 생색내는 남자가 너무 너무 싫다. 그래서 나의 짧은 만남은 또 이렇게 끝이 났다. 너같은 놈과 데이트 하느니 난 나 혼자만의 길을 걷겠노라.
I don’t need your offering.
I just need your aski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