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나 자신을 사랑하지 못했었다.
예쁘지도 않고 그렇다고 똑똑한 것도 아니고 특기도 없고 뭐든 평균 아니면 평균 이하인 나 자신이 싫었다. 소심하고 내성적인 모습을 숨기려고 당당한 척 활발한 척하는 내가 싫었다. 항상 다른 누군가가 되고 싶었다.
연애를 해도 나는 불안했다. ‘나를 왜 좋아해?’라는 의문이 들기도 하고 그 사람이 언제든지 나를 버리고 떠나버릴 것만 같았다. 그런 연애는 길면 고작 5개월 보통은 3개월 정도밖에 지속되지 못했다.
남편이 내게는 처음이었다. 1년이 가도 2년이 넘어도 연애를 지속할 수 있었던.
나는 넓은 어깨와 팔자걸음이 콤플렉스였다.
참, 굵은 무다리도 있다.
어릴 적부터 걸핏하면 “어깨 진짜 넓네, 수영했나?” , (주로 남학생들이) “와.. 내보다 어깨 더 넓을 것 같다.”, ‘그 어깨 넓은 애’로 불린다던가 “팔자로 걷지 말고 똑바로 걸어라. 여자애가 왜 이렇게 팔자걸음이 심하냐.”라는 이야기(혹은 지적)를 종종 들었다.
시댁살이를 하던 시절 시어머니와 쇼핑을 다녀오는 차 안에서 이런저런 대화를 하다가 내 팔자걸음과 내 어깨에 대한 콤플렉스를 공유했더니 시어머니가 깜짝 놀랐다.
시어머니는 우리 시누이가 팔자걸음으로 걸어도 흉하다고 생각한 적도, 고치라고 말한 적도 없다고 했다. 걸음걸이도 한 사람의 개성이고 그냥 모두가 각자의 걷는 모양이 있는 것이니 그것을 지적하고 고치라고 말할 이유가 없다고 했다. 시어머니는 내 어깨는 하나도 넓지 않고 아름답다고 말해주었다. 내가 가진 특별한 다름이 나를 정의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남편은 내 팔자걸음도 무다리도 너무 사랑스럽다고 한다. 그게 나만 가진 매력이고 나 자체라고 한다. 내 어깨가 세상에서 가장 예쁘고 사랑스러운 어깨라고 말해준다.
조금씩 나의 넓은 어깨도, 통통한 무다리도 오리 같은 팔자걸음도 괜찮아 보였다. 그게 나 자체를 정의하는 일부라고 생각하니 심지어 특별하게 느껴지기도 했다.
남편이 아낌없이 건네준 따뜻한 말들은 서서히 나를 바꾸어갔다.
이제 거울 속의 내 어깨에 더 이상 눈길이 가지 않는다.
내 종아리가 남편보다 훨씬 굵어도 건강한 내 몸이 기특하다.
그리고 나는 이제 팔자걸음으로 걸어도 당당하다.
평범한 내가 이제는 좋다.
특기는 없지만 내가 가진 쓸데없는 잔재주가 좋다.
똑똑하지는 않지만 적당히 한 사람 몫은 하고 있는 내가 기특하다.
내성적이고 소심한 성격도 그게 나라고 받아들이니 마음이 편하다.
조금 소심하지만 그만큼 행동에 조심하니 감사한 일이고
내성적이지만 내 마음은 굳고 강하다.
나는 비로소 나 자신을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나를 사랑하고 나니 남편에게 표현하는 사랑에도 너그러워졌다.
더 깊고 풍부하게 사랑할 수 있게 되었다.
사람을 대하는 것에도 너그러워졌다.
마음속에 항상 작은 사랑을 품고 표현할 수 있게 되었다.
나 자신에게도 너그러워졌다.
내 삶이, 나의 태도가, 나를 둘러싼 세상이 조금씩 달라 보였다.
내가 사랑하는 나와 함께하니 마침내 행복하다 느낄 수 있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