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가이드 14] 신주쿠(新宿) 맛집

먹으러 간 신주쿠

by 하임
<먹으러 간 신주쿠 포스터> 제공 Claude

도쿄에서는 일반 상점들이 비교적 이른 시간에 문을 닫는 경우가 많다. 음식점은 이보다 늦게까지 여는 편이지만, 내가 자주 가는 곳들을 기준으로 보면 밤 열 시 전후에 마감하는 집들이 적지 않았다. 패스트푸드점을 제외하고는 거의 세 시부터 다섯 시까지 브레이크 타임을 가지는데, 여덟 시간 노동에 한 시간의 식사 시간이 칼같이 지켜지는 현장이라 보인다.


화려한 불빛 뒤에 가려진 적막


처음 도쿄를 여행할 때 니시신주쿠(西新宿) 쪽 호텔들이 비교적 저렴해서 숙소를 그쪽으로 정하고는, 밤이 되면 이태원 간지가 날까 홍대 간지가 날까 기대하며 밤거리를 배회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 니시신주쿠는 오피스와 주택가 중심이라 밤이 되면 편의점 외에는 영업하는 곳이 없었고, 솔직하게 표현하면 여기는 그냥 깜깜해진다.

히가시신주쿠(東新宿)의 경우는 오모이데 요코초(思い出横丁)나 골든가이(ゴールデン街) 쪽은 해가 져야 본격적으로 시끌벅적 해지지만, 열 시까지 영업을 하는 음식점들을 제외하고는 예상외로 거리가 한산하다. 옛날이야 신주쿠 대로 좌우의 대형 LED 광고 영상만 봐도 좋았을 때도 있었지만, 이미 그 정도로 우리 눈이 휘둥그레지기에는 세계 곳곳 도시의 영상 디스플레이 치장이 상향 평준화되어 가고 있다. 게다가 히가시 쪽은 최근에 좀 밝아졌다지만 파칭코 가게나 성인 대상 가게들이 호객 행위를 하는 데다 길거리의 어린 친구들이 약간 많이 터프해 보여서 다니는 거 자체가 부담스러울 때가 많았다. 그래서 몇 번의 방문 이후 신주쿠는 도쿄 여행에 꼭 가야 하겠다는 '제히(是非) 리스트'에서 빼버렸었다.

- 오모이데 요코초 https://maps.app.goo.gl/5QLvAQKqDzPxrcJT9

- 신주쿠 골든가이 https://maps.app.goo.gl/D3AVTHySQKHZsWsv6


회식의 공기 VS 주말의 외식


그런데 주말이나 밤에 간혹 내 생활 동선에서 벗어나 좀 재미있는 한 끼를 위해 여기저기 검색하다 보니 웬걸, 신주쿠의 음식점들이 의외로 관심을 끄는 곳이 많았다. 물론 한 끼의 식사가 무엇을 먹느냐도 중요하지만 누구와 먹느냐가 중요하다. 그런데 직장 회식 자리처럼 적당한 멘트도 해야 하고 상대방의 감정을 살피며 일본 말로 '쿠우키오 요무(空気を読む, 공기를 읽다)' — 분위기를 파악한다는 뜻이다 — 를 해야 하는 자리라면, 아무리 맛있는 집에 간들 결국 음식 맛보다는 회식 뒤의 평판을 신경 쓰게 되거나 누군가의 나쁜 기분이 전염되기도 한다. 그래서 회식은 삼겹살이 좋다. 모두가 고기가 얼마나 익는가를 바라보기 때문에 식사 중에는 서로의 감정 교류를 아낄 수 있다. 그리고 식사가 끝나갈 때쯤 폭탄주 몇 잔 돌고 나면 서로 선명함과 흐릿함의 경계에 놓일 가능성이 높으니까.

주말에 하는 외식은 뭔가 일상을 벗어나는 다른 느낌이고 싶다. 평일 배고픔으로 먹는 에너지 보충과 다르고, 회식 때 먹는 공감대를 위한 보조 재료와도 다른 그 무엇이어야 한다.


그의 生을 받아먹다 — 아즈마 스시(阿津滿 寿司)


신주쿠에서 찾아간 집 중에 가장 인상적이었던 곳은 가격도 적당하고 평점이 좋아 찾아갔던 주택가 한가운데의 '아즈마 스시(阿津滿 寿司)'였다. 화려하고 번잡한 히가시신주쿠 뒤편으로 한참을 걸어 들어가 '여기도 신주쿠인가?' 하고 생각할 즈음 나타난 조그만 동네 스시집이었다. 들어가는 순간 무엇보다 다치(立ち, 카운터석)를 장악하고 있는 이타마에(板前, 주방장) 어르신은 거의 여든이 넘어 보였다. 그리고 홀 서빙을 담당하시는 사모님 역시 일흔은 넘어 보였다.

-아즈마 스시 https://maps.app.goo.gl/mnk6CxYRJGVoGwMp9


다섯 시 반에 겨우 한 자리가 나서 예약을 했더니 우리가 첫 손님이었고, 여섯 시가 되니 단골 손님인 조렌 상(常連さん) 두 분이 오셔서 가게가 좀 시끌벅적해졌다. 주인장은 허리가 오른쪽으로 좀 굽으셨고 오른손을 살짝 떨고 있었는데, 묘하게 칼질할 때는 전혀 흔들림이 없었고 생선살은 반듯하게 잘려 있었다. 물론 쥐고 내어주는 것은 젊은 마스터들보다 하염없는 슬로우였다.

일본 스시는 크게 세 가지 형태로 나뉜다. 손으로 밥 위에 생선을 얹어 쥐는 니기리(握り), 군함처럼 김으로 밥을 감싸고 위에 성게나 연어알 등을 올리는 군칸(軍艦), 그리고 김 위에 밥과 재료를 올려 돌돌 마는 마키(巻き)다. 아즈마 스시는 전형적인 에도마에(江戸前) 니기리 스시 집이다. 에도마에란 원래 에도 앞바다, 지금의 도쿄만에서 나는 재료를 바탕으로 하되, 신선함 그 자체보다 절이거나 조리하는 ‘작업’이 중요한 스시의 방식이다.

문득 음식 맛보다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나는 저 마스터의 生, 그 한 호흡 한 호흡을 받아먹고 있는 것이 아닐까.' 언제 은퇴할지는 알 수 없지만 거의 마지막에 도달한 예술가의 퍼포먼스를 지켜보면서, 그의 속도에 맞게 느릿하게 한 점씩 받아먹었다. 무엇을 먹었는지 기억은 나지 않으나 나는 그의 퍼포먼스의 관객이었다.


스톱을 외칠 때까지 — 신주쿠 다츠키치(新宿立吉)


다음으로 재미있었던 가게는 '신주쿠 다츠키치(立吉)'라는 튀김 오마카세 집이었다. 마포 전 골목에서 간단하게 한 잔 하시는 분들은 대개 그 풍성함을 좋아하시는데, 일본 사람들도 튀김을 좋아하지만 튀김 오마카세라는 형식은 좀 낯설고도 호기심을 자극했다.

여기서 나오는 튀김은 일반 튀김과는 다른 쿠시아게(串揚げ, 꼬치튀김)이다. 재료를 꼬치에 꿰어 빵가루를 입혀 기름에 튀기는 요리로, 오사카에서 발달한 서민 음식이다. 새우, 아스파라거스, 토마토에 치즈를 넣은 창작 쿠시아게까지 줄을 잇는다. 신주쿠에 본점이 있는 이 가게는 대부분 예약 없이 가서 기다렸다가 들어가는 곳인데 가격이 그렇게 높지는 않다. 술 몇 잔에 쿠시아게를 배불릴 때까지 먹어도 내가 갔을 땐 1인당 4천 엔이 넘지 않았다. 신주쿠 다츠키치는 도쿄에 본점을 포함해서 4군데가 있는데, 내가 방문한 곳은 핫포로 지점이었다.

바로 눈앞에서 하나씩 튀겨 주는데, 이곳은 정해진 개수가 없고 손님이 스탑할 때까지 계속 내어주는 시스템이다. 너무 맛있어서 허겁지겁 먹다 보면 열 개 정도 넘어가면서 배가 더부룩해지고 입안에 기름기가 돌아다니기 시작한다. 역시 허리띠 풀고 먹기에는 좀 부담스러운 음식이지만, 마지막 디저트로 아이스크림을 튀겨 줄 때는 다시 마음이 풀린다.

- 신주쿠 다츠키치 핫포로 https://maps.app.goo.gl/Y9mu1oezAkQPJLor6


스시와 츠케멘 — 신주쿠 스시 바 니기리테 & 타츠노야


히가시신주쿠의 약간 안쪽에 있는 '신주쿠 스시 바 니기리테(新宿 Sushi Bar にぎりて)'는 관광객과 현지인이 다 좋아하는 곳인데, 여기는 숙성회를 주로 사용한다. 스시의 가장 기본은 손으로 쥐는 니기리지만, 여기서는 생선을 일정 시간 숙성시켜 감칠맛을 끌어올린 것이 특징이다. 세트 없이 하나씩 주문해 먹는 방식인데, 하나를 시키면 두 피스씩 나온다. 처음 갔을 때 이걸 몰라 생각보다 훨씬 많이 먹었던 기억이 있다. 가격도 저렴해서 오천 엔 내외면 충분하다. 마스터들을 우러러보며 먹게 되는 다찌 구조인데, 직장인들과 관광객이 뒤섞여 먹는 모습이 그냥 신주쿠 그 자체인 곳이었다.

- 신주쿠 스시 바 니기리테 https://maps.app.goo.gl/3hePTFH1G9ACgvxk6


일본 라멘은 크게 세 가지로 나뉜다. 뜨거운 국물에 면을 넣어 먹는 일반 라멘, 국물 없이 비벼 먹는 마제소바(まぜそば), 그리고 진한 국물을 소스처럼 따로 담아 면을 찍어 먹는 츠케멘(つけ麺)이다. 츠케멘은 면과 소스가 따로 나오기 때문에 마지막까지 면의 탄력을 살릴 수 있고, 진한 소스가 묻은 면의 맛이 국물 라멘과는 전혀 다른 쾌감을 준다.

그중 니시신주쿠 쪽에 있는 '타츠노야(龍の家)'는 열한 시 오픈런을 위해 열 시 반에는 무조건 달려야 한다. 국내 방송에 소개되면서 한국인들에게도 유명해진 집으로, 대표 메뉴는 구운 곱창이 들어간 육수에 면을 찍어 먹는 '츠케멘 모츠'다. 불에 바싹 구운 곱창에서 우러난 진하고 고소한 육수에 탱탱한 면을 찍어 먹는 맛이 일품이다. 처음 짠 육수에 퍼지는 곱창 향이 입안에서 섞일 때의 희열은 대단하지만, 첫맛이 강렬한 만큼 중간쯤 오면 슬슬 힘들어진다. 하지만 이 집의 묘미는 면을 다 먹고 나서 남은 육수에 죽을 만들어 준다는 거다. 짠 음식으로 브런치를 하다가 마지막에 들어오는 부드러운 죽의 느낌은 여느 간장 육수 베이스의 츠케멘과는 확실히 차별화된다.

-타츠노야 https://maps.app.goo.gl/dQX7Loq13KdEqaae8


어느 나라 소파로 배달될지 — 애프터 올 커피(After All Coffee)


타츠노야에서 아침 겸 점심을 해결하고 나면 바로 이어지는 커피 타임은 길 건너 골목길에 있는 '애프터 올 커피(After All Coffee)'다. 이 집 커피는 순해서 큰 자극은 없지만 디저트가 예술이다. 치즈케이크를 소금에 찍어 먹는데 단짠의 구성이 좋고, 미니 사이즈 까눌레(Cannelé)도 적당히 달아서 좋다. 까눌레는 프랑스 보르도 지방의 전통 과자로, 겉은 캐러멜 향이 나도록 바삭하게 굽고 속은 쫄깃하고 부드러운 것이 특징이다.

좁은 공간에 열 명 남짓이 모여 있는데 영어, 일본어, 중국어, 한국어, 프랑스어 등 전 세계 말들이 섞여 돌아다닌다. 누가 무슨 말을 하는지 알 수도 없고 관심도 없다. 다만 모두가 사진을 찍는 걸 보면 나 역시 누군가의 사진에 슬쩍 찍혀서 멀리 영국의 조그만 동네 공원 벤치에 앉아 있는 친구에게 전송되었을지 모른다. 시차가 있으니까 영국 어느 외곽 주택가의 소파로 배달되었을 수도 있겠다.

- 애프터 올 커피 https://maps.app.goo.gl/np4eWr8PnuvxeTuE9


여름을 비켜가며 — 오이와케 당고(追分だんご本舗)


이세탄 백화점 길 건너편에는 '오이와케 당고 혼포(追分だんご本舗)'라는 유서 깊은 당고집이 있다. 1947년에 창업한 신주쿠를 대표하는 노포의 당고 가게다. 이 집은 당고와 얼음 빙수로 유명하다.

당고(団子)는 쌀가루를 반죽해 빚은 일본의 전통 화과자다. 꼬치에 세 개에서 다섯 개를 꽂아 내는데, 간장과 물엿을 섞어 만든 단짠 소스를 바른 미타라시(みたらし), 쑥을 넣은 요모기(よもぎ), 깨를 바른 고마(ごま), 팥소를 얹은 앙코(あんこ) 등 종류가 다양하다. 가게 앞 매대에는 수십 종류의 당고가 손님을 기다리고, 안쪽 카페에서 계절 한정 빙수도 즐길 수 있다. 여름엔 말차 빙수 한 그릇을 하려면 사십 분쯤 기다려야 한다.

우유를 얼려 간 고운 한국식 빙수와 달리 일본 전통 가게의 빙수는 얼음을 갈아 시럽을 올리는 방식이다. 내 입에는 우유 빙수는 텁텁한 반면 얼음 빙수는 상큼하다. 맛차가 쌉쌀하게 올라간 얼음 빙수는 시원함이 더하고 위에 적당히 단 팥이 올라가 있어 여름을 잠시 비켜가기에 딱이다. 여기에 당고 세 알 정도 먹으면 오후 세 시의 당 보충으로는 충분하다. 일본의 떡은 한국 송편보다 더 부드럽고 찰진데, 내 입맛에는 약간 거친 송편이 더 맞는 편이다.

- 오이와케 당고 혼포 https://maps.app.goo.gl/WLgzASWuAyVC6gRr9


메스(Mess)에서 찾는 퍼스널(Personal)


신주쿠에서 먹은 것들은 물론 맛있었다. 맛이 없었다면 애초에 그 자리에 머물지도 않았을 것이다. 맛은 기본이다. 그런데 맛을 기억하는 방식은 사람마다 다르다. 누군가는 '감칠맛이 풍부하다', '육즙이 살아 있다', '밸런스가 훌륭하다'는 말로 정리한다. 유튜브 먹방에서 반복되는 그 판에 박힌 표정들, 첫 한 입에 눈을 감고 고개를 끄덕이는 그 장면들. 나는 그 언어가 달랐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그것이 내 기억의 언어는 아니다.

내가 신주쿠에서 기억하는 것은 허리가 굽은 이타마에의 손끝이 미세하게 떨리다가 생선을 쥐는 순간 멈추던 그 고요함이고, 튀김 기름 냄새와 맥주 냄새가 섞인 좁은 카운터의 공기이고, 말차 빙수를 기다리며 가게 앞에 서서 등에 느꼈던 한여름 신주쿠의 열기다. 혀가 아니라 눈이, 코가, 피부가 먼저 반응했던 그 순간들.

맛은 그 자리를 완성시켰지만, 기억은 내 몸 전체가 그 공기 속에 있었다는 사실로 완성된다. 전문가의 리뷰도 방송용 표정도 아닌, 그 계절 그 골목의 공기 속에 서 있던 나만의 장면. 그것이 신주쿠를 기억하는 나만의 방식이다.

(다음은 우에노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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