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가이드 17] 도쿄역(東京驛)의 세 얼굴(상)

by 하임

마루노우치(丸の内) 쪽에서 보는 도쿄역 역사는 도쿄에서 도쿄 타워와 함께 야경의 맛집이다. 도쿄 타워는 롯폰기나 아자부다이 힐즈를 놀러 가는 분들이 전망대에서 항상 즐길 수 있지만, 여행객 입장에서 야경을 보려고 킷테(KITTE)나 마루노우치 빌딩(丸ビル)에 올라갈 일은 많지 않다. 관광지라기보다 생활의 중심. 도쿄역은 그런 곳이다.

ChatGPT Image 2026년 3월 26일 오후 12_10_24.png <도쿄역 팝아트> Chat GPT 제공

도쿄역 이야기를 하려면 건물부터 시작해야 한다. 마루노우치 쪽 붉은 벽돌 역사(驛舍)는 1914년에 완공되었다. 길이 약 335미터, 남북 양쪽 끝에 돔을 얹은 3층짜리 철골 벽돌조 건물로, 당시로선 일본 최대 규모의 서양식 근대 건축이었다. 외벽에 쓰인 붉은 벽돌만 거의 90만 장이라고 한다. 완공 이후로도 곡절이 많았다. 1945년 도쿄 대공습으로 지붕과 3층 부분이 불타 버렸고, 전후엔 2층짜리로 응급복구된 채 수십 년을 버텼다. 2003년에야 국가 중요문화재로 지정됐고, 2007년부터 2012년까지 대규모 복원 공사를 거쳐 지금의 모습을 되찾았다. 2024년 발행된 새 만 엔짜리 지폐 뒷면에 이 역사(驛舍)가 새겨진 것도 그런 상징성의 연장선이다. 지금 야경으로 빛나는 저 붉은 벽돌 건물은 110년의 시간을 건너온 건축이다.

IMG_0872.HEIC 마루노우치 빌딩에서 본 <도쿄역>


장엄한 마루노우치 광장과 정체를 알 수 없는 식당


도쿄역은 크게 세 구역으로 나눌 수 있다. 마루노우치(丸の内) 쪽, 야에스(八重洲) 쪽, 그리고 캐릭터 숍과 라멘 스트리트, 오미야게 가게들이 밀집한 도쿄역 1층과 지하 1층의 쇼핑몰이다. 같은 도쿄역이지만 마루노우치 쪽과 야에스 쪽은 전혀 다른 얼굴을 하고 있다. 마루노우치 쪽은 넓은 광장이 먼저 눈에 들어오고, 그 뒤로 차분한 빌딩들이 줄지어 서 있다.

역 광장에 서면 이상한 감각이 온다. 등 뒤로는 110년짜리 붉은 벽돌 역사(驛舍)가 버티고 있고, 앞으로는 마루노우치 빌딩과 신마루노우치 빌딩 사이로 교코도리(行幸通り)가 황거까지 직선으로 약 1킬로미터 뻗어 있다. 일본 경제의 심장부에서 일본 정신의 중심부까지, 한눈에 꿰뚫리는 거리. 그리고 그 두 축의 교차점에 도쿄역이 서 있다. 이 도쿄역을 통해 신칸센이 전국으로 뻗어 나간다. 경제의 중심, 정신의 중심, 그리고 전국으로 이어지는 관문이 이 한 자리에 겹쳐 있는 것이다. 장엄하다 싶을 만큼의 무게감이다.

그런데 이 각진 분위기의 마루노우치에 예상과 달리 소소한 재미도 있다. 마루노우치 빌딩과 신마루노우치 빌딩 안에는 직장인들을 위한 1만 엔 내외의 접대형 식당들이 즐비하다. 이 중 몇몇 식당은 도쿄역을 정면으로 볼 수 있는 운치 있는 창가를 가지고 있다.

- 마루노우치 빌딩 https://maps.app.goo.gl/CCdr3vjxfuYcFKbP9


마루노우치 빌딩 5층에 있는 한 식당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처음 들어갈 때부터 무엇을 파는 식당인지 알 수 없는 묘한 입구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좁은 입구를 지나 펼쳐지는 공간은 올드한 유럽풍 인테리어의 정취를 풍겼다. 일견 고급 티 가게 같은데 들어가서 메뉴를 펼치니 대부분이 딤섬이었다. 창가 좌석에서 주문 후에 느긋하게 앉아 도쿄역 야경을 즐기며, 샤오롱바오와 하가우, 샤오마이 등등이 곧 입 속에서 달콤한 육즙과 함께 터질 걸 상상하는 것도 하나의 재미고, 일본에서 굳이 칭다오 비어를 주문하는 것도 묘한 재미라고 생각되었다. 조합이 참 어색하면서도 각자 자기 역할을 하는 비빔밥 같다. 따로 보이지만 결국에는 섞이고 마는 그런 것 같다. 하지만 이 집의 딤섬 맛은 기억나지 않는다. 야경이 너무 강했나 보다.

나는 오랫동안 이 집을 중식당으로 이해하고 있었다. 글을 쓰다가 가게 이름이 도무지 생각나지 않아 퇴근 후에 마루노우치 빌딩으로 달려가 보았다. 가게 이름이 카사블랑카 실크(カサブランカシルク)다. 늘 입간판에 <카페 타임>이라고 적혀 있어서 카페 타임이라고 생각했는데 아니었다. 식사 시간이 아닌 오후 시간에 주문할 수 있는 메뉴를 적어 둔 것이었다. 게다가 가게 이름은 입구 벽 맨 위에 심지어 가타카나로 조그맣게 쓰여 있었다. 들어가다 오른쪽 벽면을 보니 호우시웨찬(法式越餐)이라고 세로로 쓰여 있었는데, 집에 와서 그 뜻을 찾아보니 프랑스식 베트남 요릿집이라는 뜻이다. 한참을 웃었다. 정체라고는 일도 모르는 식당에 그저 도쿄역 야경을 보러 다녔던 거였다.

- 카사블랑카 실크 https://maps.app.goo.gl/iLm8K6dsnio7vs3B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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딤섬 맛으로는 근처 니주바시 스퀘어(二重橋スクエア) 빌딩 2층의 야우메이(YAUMAY)가 압도적이다. 1930년대 상하이의 화려함을 그대로 옮겨 놓은 듯한 소파와 의자들, 화려한 벽면이 펼쳐진다. 식사 중에 주위를 둘러보면 조시가이(女子會)라고 여성들끼리 한 잔 하는 모임이 많이 보인다. 전통의 딤섬 맛집 딘타이펑이나 크리스털 제이드와는 사뭇 다른 분위기지만, 맛도 수준급이고 정장 차림의 웨이터에게 서빙을 받으며 서민 음식인 딤섬을 한 입 하는 것도 나름 언밸런스의 매력이 아니겠는가.

- 야우메이 https://maps.app.goo.gl/L8m3QLKEQGVpWwxh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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킷테(KITTE), 새로운 야경의 명소


도쿄역 남쪽 출입구 길 건너편에는 킷테(KITTE)라는 빌딩이 있다. 도쿄 중앙우체국 자리에 세운 건물로, 우표(切手, 킷테)와 와줘(来て, 킷테)를 함께 담은 이름이다. 내부는 삼각형에 가까운 특이한 구조로, 가운데가 비어 있어 각 층에서 건너편을 들여다볼 수 있다. 긴자 식스(GINZA SIX)의 긴 직사각형 중정과 비교하면 조금 시선이 답답하고 불안한 느낌도 주지만 한 변에서 다른 두 변의 가게들을 볼 수 있는 꽉 차 있다는 느낌도 준다.

- 킷테 마루노우치 https://maps.app.goo.gl/LS2n7pAJkN2h7EUd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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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곳에서 유명한 것은 5층의 회전 스시집, 네무로 하나마루(根室花まる)다. 홋카이도 네무로 출신답게 재료의 신선도에 집착하는 집으로, 맛과 가성비로 알려져 있어 평일에도 한 시간 대기쯤은 기본이다. 개인적인 취향으론 도쿄에서 가성비와 맛으로는 긴자 미도리 스시가 최고지만 도쿄역 쪽으로 여행한다면 이곳도 좋은 선택이다.

- 네무로 하나마루 깃테점 https://maps.app.goo.gl/ZDB1uaMrScN5SSZC8


킷테의 진짜 매력은 6층 루프 가든에 있다. 여기 올라가면 마루노우치의 높은 빌딩들과 도쿄역 청사를 한눈에 담을 수 있는 야경 명소다. 건너편 야에스 쪽으로는 다이마루(大丸) 백화점부터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까지 화려한 야경이 펼쳐진다. 여기서는 인생 야경 샷 하나 충분히 건질 수 있다. 물론 배경이 화려하다고 해서 훌륭한 인물 사진이 나온다는 보장이 없다. 그럴 때는 가급적 큰 그림을 만들어서 인물을 배경 속에 녹여내면 배경이 인물을 잘 감싸 줄 것이다.


마루노우치에 감춰진 재미 두 개


마루노우치 빌딩 뒤쪽으로 유라쿠초(有楽町) 방면의 도쿄 국제 포럼까지 이어지는 마루노우치 나카도리(仲通り)도 꽤 낭만적인 거리다. 12월이면 양쪽 가로수에 약 120만 개의 LED 일루미네이션이 켜지면서 크리스마스 기대감이 한껏 올라간다. 휴일에는 차 없는 거리로 변신하기도 하는데, 높고 좁은 길 사이로 빌딩 1층 로드숍들이 쭉 정렬해 있어 산책 겸 브랜드 구경하기 딱 좋다. 나카도리는 일본 국내 셀렉트숍(투모로우랜드, 에스트네이션, 빔즈)과 유럽 명품 로드숍(에르메네질도 제냐, 존 롭, JM 웨스톤)이 나란히 공존하는 보기 드문 거리다. 긴자가 해외 럭셔리 브랜드 일색이라면, 나카도리는 일본의 안목(眼目)이 편집한 거리라는 느낌이 있다.

이 거리에서 언뜻 눈에 띄지 않게 잘 숨어 있음에도 빛을 발하는 곳이 두 군데나 있다. 하나는 미쓰비시 1호관(三菱一号館)이다. 마루노우치의 높은 빌딩들 사이에 소담스럽게 서 있는 이 붉은 벽돌 건물은 1894년에 지어진 일본 최초의 근대식 오피스 빌딩이다. 1968년에 한 번 철거되었다가 2009년에 같은 자리에 똑같은 모습으로 복원되어, 지금은 미술관으로 살아가고 있다. 이 미술관의 매력은 복도에 있다. 2층 내부 복도는 흰 벽에 짙은 옷색의 바닥과 문으로 단순하게 이루어져 있는데, 살짝 어두운 느낌이 선명하지 않은 흐릿함을 주면서 과거로 들어가는 문처럼 느껴진다. 복도 창가 쪽에서 내려다보면, 아래의 사람들의 소음은 차단된 채 그들의 일상을 고요하게 관찰할 수 있는 공간의 매력이 있다.

- 미쓰비시 1호관 미술관 https://maps.app.goo.gl/dtZ1YbE8jRpDei8w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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또 한 군데는 아식스 런베이스(ASICS RUN BASE)다. 러너를 위한 거점 시설로, 짐 보관·샤워·착의 교환 서비스를 갖춰 고쿄(皇居, 황거) 주변 러닝을 염두에 두고 만든 공간이다. 황거를 한 바퀴 돌면 약 5킬로미터다. 도쿄는 서울에 비해 공기가 좋다. 수십 년에 걸친 차량 규제와 도시 녹화 정책의 결과다. 이곳에서 러닝 장비를 빌려 황거를 한 바퀴 돌고 나서 샤워까지 마치면, 도쿄라는 도시가 몸으로 들어오는 느낌이 난다. 관광을 온 분들이 도쿄의 문화와 역사를 눈으로 담고 물욕을 채우는 것도 재미있지만, 황거를 한 바퀴 달리는 즐거움도 이에 못지않다. 강추다.

- 아식스 런 도쿄 마루노우치 https://maps.app.goo.gl/fNMKCwnoJuZ8bZCW9


도쿄역 마루노우치는 관광객이 잘 찾지 않는 곳일지 모른다. 다만 도쿄에 사는 사람들의 일과 쇼핑과 휴식이 함께하는 곳이며, 도쿄 라이프의 한 단면을 보기에 더없이 적당한 곳이다. 늘 어른거리는 110년짜리 붉은 벽돌 야경 하나와 황거 러닝 한 바퀴. 도쿄에서 달리 어느 곳을 여행했을 때보다 더 기억에 남을 장면은 의외로 이런 것이다.

이제 도쿄역의 또 다른 얼굴인 야에스로 넘어가려 한다. 마루노우치 출구와 야에스 출구를 연결하는 통로는 생각보다 찾기 어려운데, 1층과 지하로 연결되어 있는 북쪽 자유 통행로(北自由通路)를 이용해야 한다. 야에스 쪽에 있다면 다이마루 백화점을 지나 철강 빌딩 방향으로 가야 찾을 수 있고, 마루노우치 쪽이라면 킷테 반대쪽 끝 입구를 찾으면 된다. 지하상가도 거미줄처럼 얽혀 있으니 처음엔 헷갈릴 수 있다. 야에스 이야기는 다음 편에서 이어진다. (다음은 도쿄역의 세 얼굴 하 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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