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가이드 18] 도쿄역(東京駅), 세 얼굴(하)

by 하임

도쿄역의 서편인 마루노우치(丸の内) 쪽이 역사와 경제, 그리고 황거(皇居)로 이어지는 정신이 함께하는 곳이라면, 동쪽인 야에스(八重洲) 쪽은 사람이 모이고 텐션이 올라가는 활력의 활화산 같은 곳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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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 번째 얼굴 — 야에스(八重洲), 사람의 에너지


야에스 쪽 상점가의 공식 명칭은 '도쿄역 1번가(東京駅一番街)'다. 도쿄역 1번가는 야에스 쪽 지하 1층과 1층에 걸쳐 펼쳐지는 상점 집합체로, 그 안에 도쿄 캐릭터 스트리트(東京キャラクターストリート), 도쿄 라멘 스트리트(東京ラーメンストリート), 도쿄 오카시 랜드(東京おかしランド) 등이 들어서 있다. 요컨대 도쿄역의 야에스 쪽은 먹고, 보고, 사는 모든 것이 한꺼번에 몰려 있는 곳이다.

마루노우치에서 북쪽 자유 통행로(北自由通路)를 타고 야에스 쪽으로 가다 보면 지하 1층으로 내려가는 길이 보인다. 물론 1층도 충분히 번잡하지만, 지하 1층으로 내려가면 혼돈이라는 단어가 실감나는 곳이 바로 이곳이다. 북쪽부터 보면 두 갈래 길 양쪽으로 캐릭터 스트리트 매장들이 가득 차 있다. 길이 두 곳이니 가게는 4줄로 줄지어 있는 셈이다. 약 32개 점포가 이 지하 통로를 채우고 있는데, 크레용 신짱(クレヨンしんちゃん), 리락쿠마(リラックマ), 울트라맨(ウルトラマン), 프리큐어(プリキュア), 무민(MOOMIN), 스누피(SNOOPY) 같은 캐릭터 전문점은 물론, 일본 테레비·TBS·후지테레비·테레비아사히·테레비도쿄 등 재경 민방 5개사의 공식 숍도 나란히 자리 잡고 있다. 쇼치쿠 가부키야혼포(松竹歌舞伎屋本舗)라는 가부키 굿즈 전문점까지 있어, 이 좁은 통로가 3대가 함께 즐길 수 있는 공간이 된다. 1층에도 캐릭터 스트리트 존이 하나 더 있는데, 그곳에는 포켓몬 스토어(Pokémon Store)가 있어 혼잡의 정도는 거의 한계를 넘길 것이다. 신제품이 드롭되는 날이면 가뜩이나 정신없는 지하도가 끝도 없는 줄로 가득 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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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역 1번가 캐릭터 스트리트>


예전에는 이런 줄을 보며 그저 신기하다고 생각했는데, 얼마 전 시부야의 모 의류 브랜드 콜라보 제품을 사러 간 날이 생각난다. 10시부터 번호표 추첨이라고 해서 아침 9시 반에 갔더니 이미 우리 앞에 400명도 더 있었고, 그날 줄 선 사람이 총 530명이라고 했다. 운 좋게 45번을 뽑았는데, 입장까지 1시간, 매장 안에서 또 2시간 너머를 기다려 겨우 반팔 티와 키링 인형을 손에 넣었다. 만 3천 엔쯤 줬는데, 2주 후 한국 리셀 사이트에서 40만 원을 호가하더라고. 7,700엔짜리 키링도 18만 원이라고 한다. 소중함이나 갖고 싶은 욕망의 강도가 숫자로 계산된다는 게 심플하다고 해야 할까, 선명하다고 해야 할까. 하여간 내 욕망을 측정할 수 있는 기준이 되는 것 같다.


도쿄역 지하 — 소비가 압축된 도시


캐릭터 스트리트를 따라 좀 더 내려가면 도쿄역 지하 중앙쯤, 중앙광장 근처에 도쿄 바나나(東京ばな奈) 도쿄역 본점이 있다. 하네다나 나리타 공항에서 도쿄를 다녀오는 거의 모든 분들이 하나씩 사오는 그 바나나 모양 잼 빵의 본점이다. 본점답게 종류도 훨씬 많고 도쿄역 한정판도 있는데, 인근 가게들의 안내 소음과 지나가는 사람들의 소음이 합쳐져 내 귀가 받아들일 수 있는 데시벨의 상한을 가볍게 넘겨버리는 곳이기도 하다.

거기서 다시 남쪽으로 걸어오면 '도쿄 라멘 스트리트(東京ラーメンストリート)'가 있다. "1주일 통해도 질리지 않는다"를 콘셉트로, 도쿄의 유명 라멘집 8개가 한자리에 모여 있다. 쓰케멘으로 유명한 로쿠린샤(六厘舎), 소금 라멘 전문 히루가오(ひるがお), 미슐랭 빕 구르망에 선정된 채소 국물 라멘의 소라노이로 니폰(ソラノイロNIPPON) 등 장르도 맛도 제각각이다. 관광차 오신 분이라면 라멘 한 그릇으로 도쿄의 분위기를 통째로 들이킬 수 있는 곳이다.

IMG_6250.HEIC <도쿄역 1번가 라면스트리트>

캐릭터 스트리트에서 북쪽 출구를 따라 동쪽으로 가면 지하 1층은 바로 다이마루 백화점 도쿄역점(大丸東京店)으로 이어진다. 다이마루 백화점 지하 1층의 도시락·반찬·식음료 코너도 사람으로 북적이지만, 1층으로 올라온다고 해도 사정은 마찬가지다. 다이마루 1층은 과자 선물용 브랜드들의 경연장이다. 시세이도 파를러(資生堂パーラー)의 구움과자, 가마쿠라 명물 하토 사블레(鳩サブレー), 글리코·모리나가·카루비·가메다 4대 과자 메이커의 안테나숍이 모인 '도쿄 오카시 랜드(東京おかしランド)'까지 줄지어 있다. 도쿄를 들렀다 집으로 돌아가는 출장객들과 현지 주민들이 어우러져, 이 일대에서만 5~6개의 긴 줄을 동시에 볼 수 있다. 다이마루 1층이 좁다 보니 줄이 백화점 밖으로 빠져나와 도쿄역 1층 오미야게 지역까지 합류하는 모양은 장관이라고 해야 할지, 혼돈이라고 해야 할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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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역과 다이마루 역 1층은 늘 유명 과자점들에 늘 줄이 서 있다.


이동의 중심 — JR 고속버스와 도시의 관문


다이마루 1층 유리 벽을 따라 야에스 쪽으로 나오면 택시 스탠드 줄이 보이고, 그 옆으로는 JR의 고속버스 정류소가 줄지어 있다. 도쿄역 야에스 남쪽 출구 앞에는 JR 고속버스 터미널(東京駅八重洲南口バスターミナル)이 있는데, 여기서 센다이·아오모리·니가타 등 도호쿠(東北) 방면은 물론, 나고야·오사카·교토까지 전국 각지로 출발하는 버스가 수시로 떠난다. 한국에서는 고속버스라 하면 대형 터미널에 모아 놓는 것이 보통이지만, 도쿄에서는 건물 앞 노상에 번선(番線)을 나열하고 거기서 버스가 그냥 출발하는 방식이다. 복잡해 보이지만 의외로 간단하다 — 번선 안내판을 보고 해당 번선에 줄 서면 된다.

그리고 미드타운 야에스 지하에도 거대한 버스 터미널이 따로 있다. '버스터미널 도쿄 야에스(バスターミナル東京八重洲)'로, 2022년 개업해 지금도 3기 공사가 진행 중이다. 완공되면 신주쿠의 버스타 신주쿠(バスタ新宿)를 넘는 일본 최대 규모가 된다. 지하철 야에치카(八重洲地下街)를 통해 도쿄역과 연결되며, 하차 지점은 맞은편 데츠코 빌딩(鉄鋼ビル) 앞이다. 이 지하 터미널에서는 오사카·나고야·센다이·히로시마 등 전국으로 가는 고속버스 노선이 집결하고 있다.

야에스 쪽은 정말이지 줄, 줄, 줄이다. 이 혼잡에서 벗어나고 싶다면 잠시 시간을 내어 2층으로 올라가 보기 바란다. 공원처럼 앉을 의자도 많고, 간단히 스낵을 먹을 수 있는 스탠딩 테이블도 있다. 무엇보다 맞은편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東京ミッドタウン八重洲)의 2, 3층 식당들을 여유롭게 관찰할 수 있다. 밤에는 건물 안의 모습이 선명하게 보여, 맞은편 식당들을 들여다보고 있자면 마치 미니어처 내부를 보는 느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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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역 야에스 1층, 2층 쉼터

야에치카(八重洲地下街)를 통해 미드타운으로 건너가면 지하 1층에 칼디(KALDI) 매장이 있다. 에티오피아의 염소지기 이름에서 따온 이 수입 식품 체인은 커피 원두와 세계 각국의 과자·조미료·파스타·와인을 좁은 공간에 쑤셔 넣다시피 진열해 놓은 곳이다. 입구에서 드립 커피 한 잔을 무료로 건네주는 것이 오래된 전통인데, 그 커피 한 잔을 손에 쥐고 좁은 통로를 누비다 보면 어느새 처음 보는 수입 과자며 향신료가 바구니 안으로 들어와 있다. 처음부터 그렇게 설계된 가게다. 귀국할 때 이 세 가지를 하나씩 챙기면 지인 선물 걱정은 끝이다 — 식빵에 발라 구우면 메론빵이 되는 스프레드, 밥 위에 뿌리면 그만인 파란 마늘 라유, 그리고 검은 패키지의 흑트러플 감자칩. 세 개 합쳐도 천 엔 남짓이고, 한국에서는 구할 수 없는 칼디 오리지널이라 받는 사람도 반긴다.

이 지하 상가에 스시로 야에스점(スシロー八重洲店)도 있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면 입구 스크린에 입장할 순서와 테이블 번호가 표시되고, 자리에 가서 태블릿으로 주문하면 자동 레일로 손님 자리까지 배달된다. 계산도 손님이 나가면서 직접 셀프 레지로 하는 방식이라, 직원은 청소와 대기 손님 응대만 한다. 처음 왔을 때는 정말 대단한 시스템처럼 느껴졌는데, 이제 비슷한 방식이 하나둘 생기고 있다. 아무래도 인건비를 견디기가 쉽지 않은 모양이다.


세 번째 얼굴 —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東京ミッドタウン八重洲)


지하도를 다 지나면 도쿄역의 세 번째 얼굴인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가 있다. 원래 '도쿄 미드타운'은 롯폰기(六本木)에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지만, 야에스와 히비야(日比谷)에도 각각 존재한다. 미쓰이 부동산(三井不動産)이 운영하는 복합 개발 브랜드로, 단순한 쇼핑몰이 아니라 호텔·오피스·문화시설을 함께 품은 도심 복합도시 개념이다. 야에스의 미드타운은 "재팬 프레젠테이션 필드 — 일본의 꿈이 모이는 거리, 세계의 꿈으로 자라는 거리"를 콘셉트로 내걸고 2023년 문을 열었다. 지하 1층부터 지상 3층까지 57개 점포가 들어서 있는데, 그 구성이 꽤 의도적이다. 가네코 안경(金子眼鏡), 오니츠카 타이거 니폰 메이드(鬼塚タイガーNIPPONMADE), 포터(PORTER), CFCL — 딱 이 멤버들이 지향하는 지점은 거의 비슷하다. 일본제, 장인성, 일상의 품격. 롯폰기 미드타운이 글로벌 럭셔리를 끌어모았다면, 야에스 미드타운은 일본을 세계에 소개하는 게이트웨이를 자처하는 셈이다. 그리고 여기 오면 비로소 야에스의 줄줄줄에서 벗어나게 된다.

- 도쿄 미드타운 야에스 https://maps.app.goo.gl/8YLNqwArL75SQn2K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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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쿄역, 세 얼굴의 도시


도쿄역을 처음 찾는 사람들은 흔히 역 안을 잠깐 지나치는 공간으로 여긴다. 그런데 실제로 서 보면 마루노우치와 야에스는 전혀 다른 도시의 얼굴이다. 마루노우치 쪽은 110년짜리 붉은 벽돌 역사(驛舍)와 황거(皇居)를 잇는 넓은 가로수 길이 묵직한 무게감을 주고, 야에스 쪽은 캐릭터 굿즈, 라멘, 과자, 고속버스가 뒤섞인 활력의 도가니다. 한쪽은 일본의 정신이 응축된 공간이고, 다른 한쪽은 일본의 일상이 폭발하는 공간이다. 그 두 얼굴을 동시에 품고 있다는 것이 도쿄역을 단순한 교통 허브 이상의 무언가로 만드는 이유일 것이다.

도쿄역은 여전히 진화 중이다.

(다음은 롯폰기(六本木)로 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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