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쿄여행가이드20]두 바퀴가 만드는 도시의 결

by 하임
<도쿄 바이크 투어> AI 제공

도쿄는 자전거를 타기 좋은 도시다. 그런데 도쿄의 자전거 문화는 서울이나 파리와는 사뭇 다르다. 서울처럼 레저와 스포츠 중심의 자전거 전용도로가 강변을 따라 정비되어 있는 것도 아니고, 파리처럼 높은 교통비 때문에 출퇴근 자전거 물결이 도심을 점령하는 것도 아니다.

도쿄에서 가장 흔하게 볼 수 있는 자전거는 마마챠리(ママチャリ)다. 앞 핸들 포스트나 뒤 화물받침대를 개조해 유아 시트를 달고 아이를 한두 명씩 태운 자전거가 도쿄 동네 풍경의 일부가 된 지 오래다. 어린이집이나 유치원 등하원, 동네 수영장, 슈퍼 장보기까지 도쿄 엄마들의 일상을 책임지는 대표적인 운송 수단이다. 서울에서 초등학교 하교 시간이면 학교 앞을 가득 채우는 부모님들의 차량 행렬처럼, 도쿄에서는 동네 수영장 앞에 마마챠리가 줄지어 주차된 모습이 보인다. 요즘은 전기 마마챠리가 대세인데 가격이 20만 엔 전후라고 하니, 도쿄 엄마들이 슈퍼우먼으로 살아가는 데 드는 비용도 만만치 않다.

동네 수영장 앞 주차해 둔 마마챠리

도쿄 도심에서 자전거를 타면 차도 가장 왼쪽 차선 끝 부분을 따라 달리게 된다. 노면에 갈매기 모양 세 개와 자전거 그림이 그려진 곳이 자전거가 달리는 공간이다. 신호는 차량과 함께 직진 신호를 받고 사거리를 건너면 된다. 일본에서는 자전거가 자동차처럼 크게 우회전하기보다, 교차로를 직진으로 건넌 뒤 멈춰 방향을 바꾸는 방식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일반적이다. 처음에는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오히려 더 안전하다는 것을 알게 된다.

<자전거 공도 표시>

도쿄 도심은 서울과 달리 대중교통이 전철 중심이라 버스가 많지 않고, 비싼 주차료 덕분에 자가용 통행도 적다. 주말에는 화물 차량도 거의 없어서 자전거로 도심 여행을 하기에 매우 쾌적한 환경이다. 주말 도심 도로를 자전거로 달리면 넓은 차선을 혼자 독점하는 기분이 든다.


북쪽으로, 아사쿠사와 스카이트리


주말에 자전거를 타고 북쪽으로 스미다 강(隅田川)을 따라 올라가면 30분 내에 도쿄도 현대미술관(東京都現代美術館)을 지나 아사쿠사 센소지(浅草寺) 근처에 도착한다. 아사쿠사 옆 백화점 주륜장에 자전거를 세우고 센소지와 아사쿠사 일대를 둘러볼 수 있는데, 이곳은 아침부터 외국인들로 넘쳐난다. 가미나리몬(雷門)에서 센소지까지 이어지는 나카미세(仲見世) 쇼텐가에는 사람들로 빼곡하고, 주변 도로 곳곳은 자전거 여행객들의 무단 주차로 골머리를 앓는다. 자전거 주차 금지 안내판 바로 앞에 자전거가 뻔히 서 있는 광경은 도쿄 여느 곳과는 다르게 이곳만의 오버투어리즘을 보여준다. 길거리에 버려진 쓰레기도 도쿄답지 않게 많다.

-아카사카 센소지 https://maps.app.goo.gl/Lwbct57W5MvWAMVA8

아사쿠사에서 오른쪽 오시아게(押上) 쪽으로 가면 도쿄 스카이트리(東京スカイツリー)가 나타난다. 높이 634m의 전파 송신탑으로, 가까이 서면 목이 젖혀질 정도로 올려다봐도 탑 끝이 보이지 않는다. 가까이에서 보는 것보다 오히려 5km쯤 떨어진 곳에서 바라볼 때 그 전체 형태가 더 선명하고 아름답다. 돌아오는 길에는 고코쿠지(護国寺) 쪽으로 내려오면서 도쿄도 현대미술관 부근을 지나게 되는데, 이 일대 기요스미시라카와(清澄白河) 지역은 도쿄의 새로운 커피 거리로 불리는 곳이다. 블루보틀(Blue Bottle Coffee) 일본 1호점이 이곳에서 시작했고, 지금도 개성 있는 스페셜티 커피숍들이 모여 있어 자전거를 세우고 커피 한 잔의 여유를 즐기기에 더없이 좋다.

- 도쿄도 현대미술관 https://maps.app.goo.gl/yEu54QkXYd6RvLAj6


우에노까지, 주말 도심 레이스


같은 북쪽이지만 우에노(上野) 쪽은 강변이 아니라 도심을 통과해서 가야 한다. 니혼바시(日本橋) 쪽으로 해서 야에스(八重洲) 대로를 따라 북쪽으로 올라가면 된다. 니혼바시 일대는 미쓰이(三井), 미쓰비시(三菱), 노무라(野村) 같은 대형 금융사와 백화점들이 어깨를 맞대고 서 있는 구역이다. 평일이라면 정장 차림의 직장인들과 택시들로 숨이 막힐 곳인데, 주말 아침이 되면 거짓말처럼 텅 빈다. 그 넓은 6차선 도로 위에 나 혼자 페달을 밟고 있으면, 유리와 화강암으로 마감된 고층 빌딩들이 양쪽으로 도열해 배웅이라도 해주는 것 같다. 빌딩들은 각지고 단단하고 무표정한데, 그 사이를 자전거로 쏜살같이 빠져나가는 느낌이 묘하게 통쾌하다. 도시가 잠깐 나에게 길을 내어준 것 같은, 주말 도쿄에서만 누릴 수 있는 작은 특권이다. 우에노까지 30분을 달려 넓은 우에노 공원(上野公園)을 한 바퀴 돌고, 공원 안 스타벅스에서 브런치를 하는 것은 도쿄의 주말이 주는 즐거움 중의 하나였다.

- 스타벅스 우에노 공원 https://maps.app.goo.gl/Dq8RNV9KqNEMAKAv7


신주쿠까지, 1시간의 땀범벅


좀 더 먼 곳으로 가고 싶으면 1시간 거리의 신주쿠(新宿)로 향한다. 니혼바시 쪽으로 해서 고쿄(皇居)를 거쳐 부도칸(武道館) 공원으로 올라갔다가 요츠야(四ツ谷)를 따라 직진하면 신주쿠 교엔(新宿御苑)에 60분 내에 도착할 수 있다. 신주쿠 교엔은 계절마다 다른 이유로 발걸음을 멈추게 만드는 곳이다. 한여름에는 넓은 잔디밭 위에 그냥 주저앉게 된다. 자전거를 세우고, 헬멧을 벗고, 땀에 젖은 채로 잔디에 등을 기대면 그것으로 충분하다. 할 일도, 가야 할 곳도 잠시 잊어버린다. 봄이면 매화와 벚꽃이 차례로 피고, 바람이 불 때마다 꽃잎이 무더기로 떨어진다. 그 아래 서 있으면 꽃비를 맞는 건지 꽃바람을 맞는 건지 구분이 되지 않는다. 가을에는 일본식 정원 구역의 단풍이 물드는데, 연못에 비친 붉은 나무들 앞에서는 그냥 멈춰 서게 된다. 사진을 찍으려다 그냥 보게 되는, 그런 장면이다. 60분을 땀범벅으로 달려온 보상치고는 과분하다 싶을 정도다.

신주쿠 교엔까지 간 김에 땀을 좀 더 내고 싶어 10분에서 15분 정도 더 달리면 6월에 수국으로 이름을 날리는 네즈 신사(根津神社)와 도쿄대학 부속 고이시카와 식물원(小石川植物園)에 닿게 된다. 모두 도심 속에서 자연을 느낄 수 있는 곳들이다. 땀이 범벅이 된 채 큰 나무 숲 그늘 속에 몸을 숨기고 있다보면 여기가 도쿄인지 청평인지, 내가 여행자인지 거주민인지 모든 것을 잊게 만든다.

- 고이시카와 식물원 https://maps.app.goo.gl/xuTrfaSeCfALpoa88


돌아오는 길에는 오차노미즈(御茶ノ水) 역 앞 히지리바시(聖橋) 다리를 지나게 된다. 빨간색, 주황색, 노란색 세 개 노선의 열차가 강 위에서 교차하는 오차노미즈 역은 철도 사진 명소로 이미 유명한 곳인데, 영화 〈스즈메의 문단속〉의 실제 배경이 되면서 더욱 많이 알려졌다. 주오 쾌속선(中央快速線)·주오 소부선(中央・総武線)·도쿄 메트로 마루노우치선(東京メトロ丸ノ内線), 세 노선의 전차가 동시에 프레임에 들어오는 순간을 위해 여러 전문 촬영자들이 삼각대에 카메라를 거치하고 숨죽이며 기다린다. 스미다 강변 곳곳에서 여러 대의 낚싯대를 드리우고 한곳을 응시하는 낚시꾼들의 집념과 어딘가 닮은 풍경이다. 이 집념이라면 아키하바라(秋葉原)에서 한정판 굿즈를 사기 위해 밤새 줄을 서는 사냥꾼들도 못지않을 것이다.

- 오차노미즈역 https://maps.app.goo.gl/e6rt7K6gNXLacu1U9

<하지리바시 앞>

남쪽으로, 도쿄 타워와 재물신


남쪽으로 가려면 긴자(銀座)를 통과해서 내려간다. 주말에는 긴자 중앙로(銀座中央通り)가 차 없는 보행자 전용 도로로 운영되는데, 자전거도 이곳을 통과하면 경찰에게 주의를 받는다. 긴자 뒷길로 우회해서 신바시(新橋)를 지나면, 도쿄 타워(東京タワー)가 가장 예쁘게 보이는 조죠지(増上寺) 쪽에 도달하게 된다. 조죠지 앞에는 팬케이크와 에그 베네딕트로 유명한 브런치 명소가 있는데 줄이 워낙 길어 번번이 포기하게 된다.

빵을 포기하고 좀 더 달리면 '출세의 계단'이라고 불리는 아타고 신사(愛宕神社) 계단에 도달한다. 가파른 86개의 돌계단으로 이루어진 이 계단은 에도 시대에 한 무사가 말을 타고 올라 쇼군에게 매화꽃을 바쳤다는 일화에서 '출세의 돌계단(出世の石段)'이라는 이름이 붙었다. 행여나 하는 마음에 한여름에 두 번이나 올랐지만 겨울이 오고 해가 바뀌어도 별 변화는 없었다.

- 출세의 돌계단 https://maps.app.goo.gl/7AwxCDYdBWabZHnG8


여기서 남쪽으로 더 내려가면 시나가와(品川) 방면에 재물운 신사로 알려진 헤비쿠보 신사(蛇窪神社)가 있다. 흰 뱀 신앙으로도 유명한 곳인데, 이곳에서는 독특한 '돈 씻기' 의식을 할 수 있다. 경내에 마련된 작은 물가에서 지폐나 동전을 흐르는 물에 씻으면 돈이 불어난다는 믿음이다. 반신반의하며 지폐를 씻어보았는데, 돌아온 뒤 돈 흐름이 조금 나아진 것 같았다. 다 아시다시피 이건 결과라기 보다 사실 바램에 가까운 것이다.

- 헤비쿠보(카미텐메이텐소) 신사 https://maps.app.goo.gl/wqrqspbzsNwoSbs57

돌아오는 길에는 시바리큐 온시 공원(旧芝離宮恩賜庭園)을 한 바퀴 돌고 올 수 있다.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곳인데, 공원 한가운데 큰 연못이 있고 그 옆 찻집에서 일본 전통 말차를 팔고 있다. 다다미 방에 앉아 말차를 마시며 주변 빌딩 숲과 연못의 조화를 바라보는 경험은 분명 독특하다. 다만 서양분들에게는 다다미에 양반 자세로 앉아 있는 것이 관광 체험인지 고통 체험인지 알 수 없는 노릇이다. 주변 고층 빌딩과 정원의 조화, 숲길과 바다 냄새를 함께 느낄 수 있는 좋은 곳이지만, 도쿄 여행 중 일부러 여기를 찾아온다면 들인 시간에 비해 즐길 게 한정적이다.

- 시바리큐 온시 공원 https://maps.app.goo.gl/w7B7CHyiRqngaKti8


동쪽으로, 그리고 오다이바라는 반면교사


동쪽으로 갈 때는 대부분 새로 개발된 지역이라 자전거 도로가 인도에 별도로 표시되어 있고 차도와 함께 사용하는 구간이 드물다. 도요스(豊洲) 지역은 강을 바라보며 달릴 수 있어 좋다. 도요스 라라포트(ららぽーと豊洲) 뒤쪽 임해 공원에는 자전거 도로가 강변을 따라 시원하게 뻗어 있어, 레인보우 브릿지(レインボーブリッジ)를 바라보며 강바람을 맞으며 달리기에 더없이 좋은 코스다. 라라포트 뒤 넓은 광장에는 블루보틀 커피가 자리 잡고 있다. 전면이 유리로 오픈된 목조 건물인데, 광장 자체가 도쿄만(東京湾)을 향해 탁 트여 있어 바다를 바라보며 커피를 마시는 여유를 느낄 수 있다. 도요스에서 마음먹고 한참을 달려가면 도쿄답지 않은 주택가가 이어지다 열대 식물원이 나온다. 규모가 크지는 않지만 내부가 아기자기하게 잘 꾸며진 곳이다.

- 블루보틀 토요스 공원점 https://maps.app.goo.gl/LPGDyQCbszB648RW9

- 유메노시마 열대식물관 https://maps.app.goo.gl/4Gp8ixrNENCMtuKU9

동쪽에서 살짝 남쪽으로 가면 오다이바(お台場)다. 여기는 정말 십수 년 전에 반짝 뜬 관광지였다. 신바시에서 무인 자동 운전으로 운행하는 유리카모메(ゆりかもめ)를 타고 레인보우 브릿지를 건너 들어갔던 그곳, 당시 드라마 '춤추는 대수사선(踊る大捜査線)'의 배경이 되며 도쿄 여행의 필수 코스 중 하나로 꼽혔던 그곳이다. 자유의 여신상, 건담(ガンダム) 상, 후지 TV(フジテレビ) 특유의 구체 건물은 여전히 그 자리를 지키고 있다. 하지만 2021년 9월 문을 닫은 오에도 온센 모노가타리(大江戸温泉物語)는 건물마저 사라진 공터가 되었고, 실내에 유럽형 상가와 분수대로 유명하던 비너스포트(VenusFort)도 2022년 3월 문을 닫았다.

자전거를 타고 돌아다니다 보면 도로 블록 곳곳이 손길을 기다리듯 들떠 있고, 한때 히트 쳤던 시설들이 빠져나간 자리들이 눈에 밟힌다. 공간만 있다고 사람들이 오는 건 아니다. 도쿄만의 인공 섬 위에 좋은 것들을 모아 놓았지만 일상적인 거주민의 삶이 없다 보니 자생적인 이야기가 쌓이지 않았다. 처음 오다이바를 설계할 때 도쿄의 미래가 여기 있다고 믿었을 것이다. 하지만 도쿄의 미래는 결국 오다이바가 아닌 다른 곳에서 만들어졌다. 롯폰기 힐스(六本木ヒルズ)가 생겼고, 시부야(渋谷)가 다시 태어났고, 도라노몬(虎ノ門)과 아자부다이(麻布台)가 새로운 도심으로 올라섰다. 사람이 살고 이야기가 쌓이는 곳이 도시의 미래가 되었다. 오다이바는 지금, 화려한 채 서서히 빛을 잃어가고 있다.

-오다이바 https://maps.app.goo.gl/73BkQQCKQfii7LMdA


두바퀴가 만드는 도시의 결


두 바퀴로 달리다 보면 도쿄의 뒷면이 보인다. 질서의 도시라고 부르는 곳인데, 우에노 주변 도로에는 버젓이 불법 주차된 차량들이 있고 아사쿠사 골목에는 쓰레기가 쌓여 있다. 자전거가 아니었다면 그냥 지나쳤을 장면들이다.

뒷면만이 아니다. 전철을 탔다면 굳이 찾아갔겠는가. 출세의 길이라는 이름이 붙은 86개 계단도, 세 노선의 전차가 강 위에서 동시에 교차하는 히지리바시 다리 아래도 전철 지도 위에는 존재하지 않는 장면들이다. 자전거는 명소와 명소 사이, 편집되지 않은 도쿄를 보여준다. 그래서 오히려 도쿄가 더 좋아진다. 완벽하지 않다는 걸 알고 나서야, 도시가 비로소 입체적으로 느껴지기 때문이다.

(다음은 도쿄 옷 쇼핑 편이 이어집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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