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류, 세계를 가다 (2)

한류 변천사

by 하임
한류변천사 .png 한류 변천사 (현대 경제 연구원 주간 경평 888 호 참조)


한류 2.0


2004년 MBC에서 방영되었던 <대장금>은 한류 영향력을 아시아를 넘어 중동으로 확대하였다. 또한 북미, 중남미, 유럽, 아프리카에 이르기까지 거의 전 대륙으로 한류를 확산하였다. 일본에서는 2003년 <겨울연가>에 이어 2004년 <대장금>이 대박 한류를 이어갔고, 미국, 캐나다 외에도 이란, 터키, 인도, 호주, 나이지리아, 이스라엘 등지에서도 방송되었다. 2007년 이란에서는 86% 라는 상상할 수 없는 시청률을 기록했었다. 이란에서 <대장금>의 성공은 경이로웠는데 그 원인에 대해서 1) 탄탄한 스토리 구조에 2) 궁중 요리 등 한국 문화의 다양한 볼거리 그리고 3) 이영애 등 출연 배우들의 열연에 기반했다고 하면 거의 80 점은 넘길 것이고, 거기에 더해서 1)'노출'에 엄격한 현지 심의를 무사히 통과했던 한복 덕도 톡톡히 보았고, 2) 드라마 내용으로 표현된 조선사회의 유교적 질서가 이란 현지의 대가족 문화와 여러 측면에서 공감을 유발한 덕도 보았다고 답하면 거의 만점을 받을 것이다.

그리고 <대장금>의 뒤를 이어서는 <주몽>도 이란에서 시청률 60%를 넘겼다.


드라마의 분전이 강렬해 보였던 한류 2.0 시기에 중국에서의 한류는 오히려 역성장했었다. 2001년 중국 정부가 동북공정을 시작된 이후 현지의 기획사들부터 중국 정부가 중국 내에서의 K-POP 등 한국 문화가 인기를 끌고 있는 것에 불편해한다는 이야기가 들렸다. 또한 한국의 기획사나 방송사들이 한류 드라마에 대해 지나치게 높은 가격을 요구해서 중국 방송사 측이 반발하던 차에 일본 기획사들이 베이징 올림픽을 앞두고 일본 드라마 26편 이상을 무상으로 제공하면서 중국 방송에서 한국 드라마가 사라져 버렸다는 이야기도 들렸다. 소문의 근거에 대한 사실 확인은 불가했지만 중국으로의 콘텐츠 수출이 눈에 띄게 줄어들었다.


한류 2.0 시기에 H.O.T. , 젝스키스, god, SES, 핑클 등 1세대 아이돌들의 인기가 급속히 퇴조했다. 또한 음악 산업에는 가요 기획사의 주요 수입원이 음원 수입이 CD 판매 중심에서 디지털 음원 매출로 옮아가면서 매출도 심각하게 줄어들었다. 디지털 음원이 나오기 전에는 가요 기획사에게는 CD 판매가 주 수입원이었다. 가수들의 CD는 10곡 내외를 수록하였고 장당 10,000원 내외에 판매되었다. 판매된 CD 매출 중에서 가수 기획사는 음반사로부터 '마이낑'( 前金 / 일본에서 ‘마에킨’으로 발음된다. 우리나라에선 ‘마이낑’ ‘마이킹’으로 변용)이라는 선급금을 받았을 경우 장당 3,000원 내외를 , 마이낑을 받지 않았을 경우 장당 6,000원 내외를 받았다. '마이낑'시스템은 음반사가 가요 기획자의 초기 투자 비용을 선급해 주고 음반 매출로 마이낑을 변제하고 CD 매출의 일정 비율을 가져가는 음반사 투자 시스템이었다. 가요 기획자 입장에서는 음반이 성공했을 경우 음반사가 제작 과정에 아무런 기여를 하지 않고 많은 수익을 가져간다고 불만을 표출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음반사 입장에서는 변제되지 않는 마이낑들이 악성부채로 발전했던 경우가 다반사였다. 당시 가요업계에서는 50만 장 이상 CD가 판매되면 대박이라고 했는데 이 경우 기획사 수익은 마이낑 유무에 따라 30억 원내외에서 15억 내외였다. (당시 목동 38평이 3억 좀 넘었어요 ㅎ) 하지만 음원 소비자들의 선택으로 디지털의 음원이 대세가 되고, 음원 판매도 곡당으로 바뀌게 되면서 가요 기획사의 수익이 급감하였다. 대박 히트곡도 디지털 음원 수익이 7억을 상회하기 어려웠다.


아이돌 스타의 퇴조와 음악 산업의 변화 등 2개의 충격파를 맞고 휘청되던 가요 기획사들이 잡은 2개의 키워드는 다시 아이돌과 해외시장 진출이었다. 한류 2.0 시기를 거치면서 SM이 동방신기, 슈퍼주니어, 소녀시대 등을, YG가 빅뱅 등을, JYP가 2PM과 원드걸스를 한국과 세계 시장에 내놓으면서 3개 가요 기획사들은 드라마가 만들어 놓은 한류 1.0과 한류 2.0 시기를 뛰어넘어 글로벌화된 한류 3.0 시대를 여는 초석을 깔고 기둥을 올렸다.

이들 가수 그룹 중 대장주는 동방신기이었다. 동방신기는 2004년부터 국내 활동과 일본 활동을 병행하였는데 2005년 한국에서는 'rising sun'으로 각종 시상식을 휩쓸었으나 일본에서의 성적은 초라했다. 2006년부터 동방신기는 숙소를 아예 일본으로 옮겼다. 3개월 동안은 방에 틀어박혀서 멤버들끼리 일본어 공부만 했었다라든가, 신인가수로서 음악 방송이 섭외되지 않아 대도시의 소규모의 라이브 하우스 등을 빌려 말만 전국투어인 라이브 공연들을 했다는 흑역사들은 잘 알려져 있다. 국내에서는 정상급 가수, 일본에서는 무명가수라는 괴리로 멤버들이 한동안 심리적 갈등을 겪었지만 동방신기는 일본 활동에 전념한 지 일 년 반 만인 2007년 6월 18일에 부도칸 (7,000석 규모) 공연을 성공시키면서 상승의 전기를 마련했다. 이후 승승장구하던 동방신기는 2009년 12월 31일 NHK 홍백가합전을 끝으로 멤버 3명이 팀을 이탈하면서 최대의 위기를 맞게 되었다. 그러나 남은 멤버 2명으로 2012년에는 일본 전국투어 55만 명의 유료 관객을 동원했고, 2013년에는 일본 4대 돔 투어와 닛산 스타디움 (72,000석) 공연에 성공하더니 2018년에는 닛산 스타티움에서 3일 연속 공연으로 22만 5천 면의 관객을 동원하는 대기록을 보여주었다. 동방신기는 이제 일본 팬들에게 K-POP의 대표라는 인식보다 16년 간 일본에서 꾸준한 활동해 온 'とうほうしんき'(토호신기/東方神起)로 인식되고 있다. 닛케이 전자판을 참조한 아래의 자료에서 보듯 동방신기는 2018년 일본에서 연인원 128만 면을 동원할 수 있는 티켓 파워로 일본 가수들을 제치고 당당히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동방신기.png <2018년 일본 가수 콘서트 동원 파워> 출처 KOFICE 일본 콘텐츠 산업 동향 2019년 18호

다시 한류 2.0 시대 이야기로 돌아가면 그 시기 K-POP은 드라마에 비해 활동이 미미해 보였지만, 2010년 이후 한류 3.0 시대의 글로벌 확장을 준비하는 축적의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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