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의 미술관 덩어리
가나자와에 도착했을 때는 "도시가 되게 작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여기서 뭘 보고 갈 수 있을지 고민되었다. 오사카 심야버스를 타고 넘어왔기에 꽤나 피곤했다. 일단 숙소로 갔다. 가나자와 역에서 10분 이내 거리였고 깨끗한 방이었기에 꽤나 만족스러운 곳이었다. 새벽시간이라 체크인은 불가했고, 짐만 맡기고 호텔 내 제공되는 커피 한 잔 후, 길을 나섰다. 여행을 하면 가능한 걷는 게 우선이기에 30분 내외 거리는 가능한 걷곤 한다.
가나자와 성터 가는 길은 누군가 말한 것처럼 작은 교토와도 같았다. 다른 점이 있다면, 교토보다 사람이 적다는 사실이었다. 새벽녘 공기는 차기도 했지만 맑기도 했기에 걷는데 다른 에너지가 필요하지 않았다. 불편한 저녁을 보냈다기엔 너무 맑은 기운이었다. 가나자와 성터는 공원처럼 열린 공간이었다. 성안은 입장료를 내고 들어가게끔 되어 있었지만 외부는 공원처럼 여기저기 둘러볼 수 있게끔 만들어져 있었다. 성터의 여기저기를 둘러보는데 앉을 공간도 있어서 잠시 앉아서 성을 바라보기도 하였다. 성은 여타 성과는 다르게 하얗게 납이 발려져 있었다. 옛날 유사시에 총탄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기와에 납을 섞었다고 한다. 그런 점이 가나자와 성을 더 멋들어지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비록 9월에 온 가나자와 성이지만 하얀 성터가 벚꽃과 만나면 얼마나 멋들어질까 생각해 보니 또 한 번 와봐야겠다 생각되었다.
둘러보고 나서 겐로쿠엔의 입장시간에 맞추어 겐로쿠엔으로 넘어왔다. 가나자와 성터와 겐로쿠엔은 길 하나를 두고, 자리 잡고 있었다. 물론 그 옛날에는 사이에 길이 있진 않았겠지만 말이다. 겐로쿠엔으로 넘어와서 바라보는 가나자와는 웅장하는 느낌보다는 다정한 옆집?의 느낌으로 바라봐졌다. 겐로쿠엔은 일본의 3대 정원답게 관광객이 꽤나 많았다. 아침 오픈 시간이었음에도 불구하고, 관광객들뿐 아니라 수학여행을 온 학생들도 많이 보였다. 들어서자마자 보이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우물이 보였다. 끊임없이 솟아오르는 물은 시간이 멈춘 것과 같은 느낌을 주었다. 많은 것들이 변해가지만 본인만은 변하지 않는다는 그런 모습이랄까. 정원 곳곳에는 청소하고 관리하시는 분들이 많았다. 9월쯤이어서 떨어지는 낙엽이 많았던 탓도 있지만 여기저기서 낙엽을 쓸고 닦는 분들이 계셨고, 그래서인지 바닥이 더럽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커다란 연못을 기준으로 나무들 틈으로 산책하는 기분이 너무 좋았다.
정원은 누가 말하지 않아도 들어서면 뭔가 각각의 테마에 따라 나누어져 있는 게 느껴진다. 사실 나도 테마가 있었다는 사실은 몰랐었는데 곳곳의 분위기가 좀 달랐다는 것은 확실히 알 수 있었다. 정원 내에는 동상도 있었고, 또 이끼나 다른 형태의 나무들도 심어져있었다. 일본식 정원은 아무래도 깔끔하게 잘 정돈된 느낌이 있어서 다니다 보면 세련된 백화점을 다니는 느낌이 든다. 혼자 쉬지 않고 다녀서 한 2시간 반 정도 돌아다녔다. 혹 누군가와 함께 오거나 좀 더 여유가 있다면 4시간 정도 머문다는 생각으로 다니면 좋지 않을까 싶다.
생각보다 가나자와에는 갈 곳이 많았다. 정말 의외의 도시였다. 도시 내부를 돌아다니는 유료 셔틀버스도 있었지만 모든 것들이 밀집되어 있어서 어느 정도의 체력만 뒷받침된다면 도보로 다니기에 무리되는 곳은 없었다. 다음날 숙소에서 나와 이번에는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과 스즈키 대 세트 칸을 방문했다. 가나자와 21세기 미술관은 내외부가 모두 전시공간으로 사람들이 북적이고 있었다. 나는 내부까지 들어가진 않았고, 외부에만 있었는데도 뭔가 마음이 탁 트인 느낌이었다. 내부에는 유명한 수영장 착시 전시물이 있다고 하는데 미리 예약하지 않으면 갈 수 없는 곳이라, 가지 못했다. 날씨도 맑고 곳곳에 세워진 전시품들을 보니 마음이 성장한 것 같았다.
미술관에서 스즈키 다이세트 칸은 도보로 20분이 채 걸리지 않았다. 미술관 대비 스즈키 다이세트 칸은 그냥 한 전시관 정도의 작은 규모였다. 히지만 입장 후, 바닥에 깔린 연못? 수면의 잔상과 나무들의 모습. 그리고 커다란 실내 평상으로 쉼의 공간이 만들어진 멋들어진 곳이었다. 그리고 바로 옆에는 일본 저택 같은 곳이 이어져있어서 가볍게 산책하기 좋은 곳이었다. 특히나 물의 잔상을 이용한 사진들이 멋들어져서, 한 번쯤 가서 멋진 사진 한 장 건지는 것도 좋을 것 같았다. 내부에는 작은 도서관이라고 해야 하나? 스즈키 다이센 츠칸 관련 도서도 있고, 독서할 공간이 있었다. 더불어, 자리마다 관리 감독하시는 분들이 계셔서 절대 엄숙해야 하는 공간이었다.
앞서서 잠깐 말했듯이 가나자와는 작은 교토라고 불리는 곳이다. 그것의 대표적인 예가 히가시 차야 거리이다. 이곳에 들어서면 옛날 일본 건물들이 늘어서 있고, 입구에 버드나무가 멋들어지고 있어서 교토의 기분을 물씬 느낄 수 있는 곳이다. 다만, 교토보다 거리가 매우 짧고, 사람이 적어서 좋기도 하고 안 좋기도 한 그런 곳이었다. 나는 우선 피로를 풀기 위해서 팥빙수를 판매하는 “하유와”라는 곳에 들어서서 일본식 말차 빙수와 커피를 마셨다. 창밖으로 보이는 커다란 버드나무가 얼른 오라고 반기는 것만 같았다. 입구에는 하유와 말고도 다른 식당들이 많기에 한곳을 선택해서 창가 쪽에 앉으면 경치도 보고 맛있는 음식도 먹을 수 있는 시간을 가질 수 있을 듯하다.
디저트 시간을 가진 후, 히가시 차야 거리에 들어섰다. 하늘이 파랗고 쨍해서 거리를 더 멋있게 만들어주는 것 같았다. 사람들이 교토만큼은 아니지만 많이 있어서 혼자 예쁘게 사진 찍는 게 쉽진 않았지만 풍경이 너무 맘에 들어서 혼자 삼각대를 들고 여기저기서 사진을 찍었다. 마주 보고 있는 건물들은 디저트 가게 아니면 기념품 가게여서 나의 주머니를 끊임없이 공격하고 있었다. 가나자와의 기념품을 여기서 다 살 순 없었기에 겨우겨우 주머니를 지켜냈다.
저녁시간이 다가오고 남은 저녁시간은 어디로 가야 할까 고민하던 찰나에 가나자와에 멋진 도서관이 있다는 소식을 접했다. 이시카와 현립 도서관은 중심지에서 좀 벗어난 곳이었기에 버스를 탑승해서 도착했다. 버스에서 내려서도 조금 더 걸어갔었는데 도서관에 입성하기 전에는 그냥 도서관이라는 안이한 생각이 들었는데 들어가고 나서는 와! 입이 딱 벌어졌다. 360도로 건설된 도서관은 내부가 로마의 콜로세움처럼 책들로 둘러싸여 있었다. 특히 1층에 카페가 있는데 커피를 가지고 도서관 자리에서 독서를 할 수 있는 뭐랄까 작은 쉼 공감이라고 해야 할까? 자리도 각각 목적에 따라, 잠깐 쉴 수 있는 곳. 공부할 수 있는 곳. 독서하면서 노트북을 할 수 있는 곳 등 다양하게 마련되어 있었다. 또 꼭! 조용히 독서하고 싶은 사람들을 위한 사일런스 공간도 따로 만들어져있었다. 돔 뚜껑도 너무 멋있어서 만약에 밤에 도서관에 있을 수 있다면 정말 별도 보고 책도 읽는 일석이조의 공간이 아닐까 싶었다. 여행지에서 도서관에 온건 사실 처음인데 뭔가 특별한 경험을 한 것 같았다.
도서관에 방문하고 나서 폐장시간이 되어 밖으로 나왔다. 해 질 녘 노을이 지평선에 걸쳐 도서관과 어우러진 게 너무 아름다운 도시의 풍경이었다. 가나자와는 곳곳이 명소였고, 곳곳이 공원이었다. 가나자와라는 한 덩어리의 미술관에 와 있는 기분이었다. 왜 이런 곳을 이제 알았을까 하는 후회 아닌 후회도 들고 참 멋진 시간을 보내게 되었다.
특히나, 이런 가나자와에서 내게 편한 쉼의 공간을 주었던 호텔은 다시금 묵고 싶은 가성비 호텔이었다. 기차역과 가까워서 어디 다니기도 좋았고, 낮과 밤으로 보이는 기차역은 멋들어진 여행의 감성에 잠기기 딱 좋은 곳이었다. 또 인포메이션에서는 간단한 음료와 쉼 공간대 제공되고 있어서 나처럼 체코인전에 도착하거나 체크아웃을 하고 난 다음에 쉴 수 있는 공간이 있어서 무척이나 좋았다. 짧지만 긴 1박2일의 가나자와 여행을 마치고서 다시 다른 곳으로 옮긴다는 게 이렇게 섭섭할지 몰랐다. 가나자와는 다시금 기회를 만들어 벚꽃이 필 무렵이나 눈이 내릴 무렵 와야 할 곳이 되어버렸다.
체크포인트
호텔 1박2일 ¥7,039
오사카-가나자와 왕복 심야버스 ¥8,700
겐로쿠엔 ¥320 (입장시간 08:00-17:00)
스즈키 다이센 츠칸 ¥310
이 시가와 현립 도서관 (입장시간 09:00-16:0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