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2
카페를 나서고 보니 오늘은 가기 싫은 숙제 같은 모임이 있다는 걸 깨달아버렸다. 요즘에는 그런 경우를 잘 보지 못한 것 같은데 나는 가기 싫은 모임이나 만남도 거절하지 못한 채 숙제처럼 해내고는 한다. 일단 거절도 못할뿐더러 싫은 소리도 하지 못해서 그 상황이 매우 스트레스를 받는 상황이라 할지라도 나는 가고 만다. 다들 왜 스트레스를 받으면서 까지 나가냐고. 그냥 안 가면 되지 않냐고 하는데 나는 참 그게 쉽지 않다. 그것도 연습이 필요한 건데 말이다.
약속 시간은 다가오고 한참을 서성거리고서야 약속장소로 천근만근의 다리를 옮겼다. 사실 가고 싶은 약속이 아니다 보니 어디서 만나든 무엇을 먹든 상관이 없었다. 밥만 먹고 나와야지 다짐을 하고 고깃집으로 들어섰다. 이미 그들은 고기를 굽고 있었다. “아!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응응” 그리고는 나는 궁금한 게 없다 보니 냠냠 고기만 주워 먹었다. 손절이 대세인 시대라곤 하지만 나 같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최대한 티를 덜 내려고 하면서 음식을 먹었다. 그래도 다른 공간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의 이야기는 재미있긴 하다 나는 모르는 그들 세상의 이야기. 세상을 바라보는 그들의 모습들. 이 사람의 성격. 그런 걸 보면서 내가 보고 생활하는 이 세상은 참 별거 아니다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우리는 서로의 최근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가끔 사람들을 만나면 자기 객관화가 덜된 사람들을 보곤 한다. 아니 그게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일지도 모른다. 좋은 환경에서 태어나 좋은 여건에서 공부를 하고 부족함 없이 자라와서는 나는 그리 잘나지 않았다고 말하는 사람들이나 누구보다 좋은 벌이에 좋은 피지컬을 가지고서 나는 부족하다 말하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의 기준은 어디에 있으며 그들이 생각하는 평균은 무엇인가 묻고 싶은 때가 있다.
솔직히 나는 외부적으로 보았을 때는 못생기지도 잘생기지도 않은 외모와 통통한 피지컬, 그리고 좋은 벌이. 남들이 알만한 회사에 박사학위까지 남부럽지 않은 사람이다. 그래서 어디 다른 모임에 가서 직장을 이야기하거나 내가 어떤 사람인지 말하는 게 좀 꺼려진다. 어떻게 이야기를 하든 누군가에는 잘난척하는 것으로 보일 수도 있고, 그걸 이야기하는 순간 그 사람들은 내가 아닌 다른 나를 보게 될 것 이기 때문이다. 왜 그런 이야기가 있지 않은가. 허름한 옷을 입은 사람이었는데 본인이 서울대학생이라고 하는 순간 대우가 달라졌다는 말.
역으로 본인이 어떤 가정에서 자랐고, 어떤 공부를 했고, 어떻게 자라왔는지 이야기를 하면서 나는 정말 힘들게 자랐고, 남들 생각하면 그리 잘나지 않게 자랐다라고 하면. 조금 갸웃스러울 때가 있다. 하지만 그것도 기준이 달라서이고, 생각의 차이겠지. 다만, 정말 평범한 사람들 앞에서 그런 말을 안 하는 게 좋지 않을까? 눈치가 없는 건지 아님 역으로 다른 사람들을 무시해서 하는 말인 건지 알 수가 없다.
듣고 있으면 가끔 불편한 자랑 아닌 자랑과 은근한 자랑이 깔린 그의 말을 듣고 있노라면 아, 역시 이 모임은 나오지 않아야 하는데 라는 후회로 가득 찬다. 하지만 이 날 안 만났다고 지나가는 게 아니라 다시 약속을 잡고 결국을 만날 것임을 알기에 그냥 눈 딱 감고 나온 것이다. 저녁만 먹고 일어서겠다던 나의 다짐은 결국 후식까지 가게 되었고, 크게 실속 없고 시답잖은 이야기로 2차까지 시간을 꽉꽉 채우고 말았다.
멍하게 서있으면서 생각해 본다. 성악설을 믿는 사람이지만 누군들 선하지 않은 사람은 없다고. 사연 없는 사람이 없는 것처럼 다 이유가 있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들을 바라보면서 그래, 저들에게 악의가 있는 것도 아니고, 그저 그들의 생각이 그럴 뿐인데 싫다고 별로라고 거절할 용기 따위 없다면 그냥 듣고 있어야 하는거라고. 그러면서 또 오늘의 숙제가 끝이 났다고 미소를 띤다. 적어도 몇 달은 보지 않아도 된다고 그렇게 다짐하면서 말이다.
거절이라는 걸 할 수 있으면 좋으련만 그렇게 할 수 없다면 적절한 수준에서 나에게 포기를 가르치는 게 나을 것 같다. 사라 천성이라는 게 있는데 손절의 손도 못 할 나라는 인간에게 그저 조금 마음을 내려놓고 편안하게 지내라고 밖에 말을 할 수가 없는 것이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