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_4
평범하게 학교를 다녔고 평범하게 성적을 받았다. 그러다가 봉사활동에 발을 담갔다. 거창한 이유가 있었다기보다는 남들과 함께하는 게 좋았다. 장애가 있는 이들과의 만남. 환경보호를 하겠다는 운동. 어르신들과 함께하는 시간들. 아이들에게 알려주는 공부들 등. 봉사활동이라는 이름아래 나 혼자가 아닌 함께하는 시간임을 알려줘서 좋았다.
그러다가 전국적으로 활동하는 봉사활동 단체에 가입을 하게 되었고, 지역대표로 봉사활동도 조직하고 직접 봉사활동도 참여하였다. 앞서 말한 것처럼 다양한 봉사활동의 종류가 있었고, 환경 봉사활동, 어른 아이 봉사활도, 봉사활동을 조직하는 일 등등 이렇게나 많은 봉사활동이 있다는 것도 그때 처음 알았다. 사실 이과생이기도 했고, 봉사활동이라는 것이 나에게 큰 의미를 주는 것은 아니었지만 많은 사람들이 취직과 졸업을 위해 봉사활동을 수단으로 삼기도 하였다.
사실 봉사활동을 수단으로 삼는 것을 탓할 수는 없지 않은가. 목적이 어찌 되었든 그 봉사활동을 하는 순간 최선을 다하고 마음을 다한다면 나는 충분하다고 생각했다. 그 당시에 봉사활동이 진심인 친구들이 취업을 위해 봉사활동을 하는 친구들을 염려하는 마음으로 바라보기도 했었는데 사실 그게 뭐가 중요한가. 뭐든 진실성 있고 진심이면 그보다 더 좋은 일이 있겠냐만은 어떤 계기든 참여하면서 진심이 될 수도 있지 않을까?
내가 좋아했던 봉사활동 중 하나는 혼자 사는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뵙는 것이었다. 지역센터의 도움과 함께 맺 혹은 매다 대학교 근처 할머니 할아버지를 찾아가서 한 시간 정도 떠들다가 오는 것이었다. 많이들 적적하신지 늘 내가 오는 걸 기다려주시고 아닌 척 하지만 보고 싶어 하셨었다. 그래서 그때 지역센터 선생님도 항상 말씀하셨다. 한두 번 올 거라면 오지 말라고 꾸준히 와야 한다고. 어린이 봉사활동도 마찬가지지만 잠깐 왔다가 가면 그 또한 어르신들께 상처가 되는 것이라고.
사실 가서 하는 것도 별거 없었다. 할머니 집에 가서 그냥 내 이야기도 하고 할머니 옛날이야기도 듣고, 가끔 주물러드리기도 하고, 누워서 할머니랑 고구마 같은 것도 먹고,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혼자 사신다는 게 그냥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도 했지만 마음이 아팠다. 독거노인들이 생을 달리했을 때, 빨리 알아채지 못하는 것이 왕래하는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래서 지역센터에서는 정기적으로 찾아뵙고 다가가는 시간을 가지는데 그나마 지역센터의 관리에 있는 할머니 할아버지는 다행인 것이었다.
지금껏 이어지는 봉사활동은 아니었지만 나의 할머니도 많이 생각났었고, 괜히 그리움에 종종 찾아뵈었던 것 같다. 그리고 아이들 교육봉사도 있었다. 대학생들로 이루어진 팀으로 작은 취미활동 같은 것들을 알려주고 같이 놀아주는 봉사활동이었다. 풍선을 가지고 하는 풍선 놀이나 간단한 과학 교실 등 아이들이 좋아할 만한 교육을 주어진 예산에서 만들어서 진행했었다. 특히 어린이 교육봉사활동을 주도해 주신 팀장님이 또 엄청 자해 주셔서 재미있게 참여했었다.
이런저런 봉사활동을 기획하고 기획한 봉사활동을 발표해서 지원금도 받고 대학생이 할 수 있는 자유로움과 창의성으로 봉사활동을 했었었다. 특히나 전국 봉사활동 단체 내에서의 학생회 단체로도 활동했기 때문에 정기 적으로 봉사활동의 내용을 공유하는 시간도 갖고 세미나 같은 시간도 가졌다. 그러면서 분위기를 돋우기 위해서 장기자랑 같은 것도 하고, 함께 합숙하면서 아이디어도 공유하면서 정말 대학생활을 풍성하게 보냈던 것 같다.
지역에 살면서 전국의 친구들을 사귄다는 것도 특별한 경험이었고, 이것을 핑계로 각 지역을 다니면서 경험을 쌓는 것도 즐거운 일이었다. 또 청춘남녀의 그 싱그러움을 긍정적인 영향인 봉사활동에서 뽐내고 있으니 지금 생각하면 정말 베스트오브 베스트의 경험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