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_6
나는 새롭게 새로운 곳에서 적응하기 시작했다. 지역대표로서 활동하던 봉사단체의 활동영역을 전국구로 옮겨서 이번에는 메인영역에서 활동하게 되었다. 새로운 친구들로 갈리다 보니 더 이상 그 친구를 볼 기회는 없었다. 히지만 오며 가며 그의 이야기를 접하기도 했고, 이전 대표자들은 베트남 해외자원봉사를 갈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에 그렇게 또 해외자원봉사에서 만나게 되었다.
내 베프의 전 남자친구. 그렇기 때문에 더더욱 연애할 수 없는 내가 좋아하는 사람. 요즘은 해외자원봉사를 가거나 하면 일정 금액을 지불하거나 내거나 하는데 그때는 정말 전액 지원이었기 때문에 거절할 이유도 없었다.
가족들과의 여행이 아닌 첫 해외방문이었고, 또래 친구들과 가는 해외자원봉사였기에 여러모로 뜻깊은 기회였다. 커다란 버스에 몸을 싣고 다 함께 베트남에서도 도시가 아닌 곳으로 베트남 대학생 친구들과 함께 교육봉사활동을 하러 갔다. 우리가 하는 일은 학교건물을 보수공사하거나 도왔고, 작은 한국어를 알려주거나 그림을 그리거나 해서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일이었다. 뭘 가르쳐줬다고 하기에는 너무 어설퍼서 시간을 보냈다는 말이 더 맞을 것 같다.
술은 그 체육대회 이후로는 단 한 번도 먹은 적이 없기에 늘 술자리를 치우는 건 내 몫이었고, 술도 못 마시면서 밤새 떠들고 노는 것조차도 행복했었다. 말도 많이 안 통하지만 일하시는 분들께서 직접 코코넛을 따서 코코넛도 먹게 해 주셨고, 길 가다 파리가 둥둥 떠다니는 비닐에 담긴 사탕수수도 맛있었다. 지금 동남아에 가면 사탕수수도 음료수컵에 담아주고 라임도 살짝 뿌려주는 그런 고급진 맛이었지만 그땐 정말 날 것 그대로였다.
그리고 그와의 관계는 아무 변화가 없었다. 그는 나에게 여전히 관심이 없었고, 그는 나를 친구로 분류해두고 있었다. 우리는 그냥 그렇게 친구로서 하하 호호 티격태격할 뿐이었다. 그땐 그것도 좋았다. 여성스럽지도 않고 애교스럽지도 않은 내 성격을 잘 받아주기도 했고, 괄괄한 성격을 잘 받아주었던 친구였기에 더 기억에 남는 것일지도 모른다. 그는 기억도 못할 다정함이겠지만.
무더운 여름의 봉사활동은 내게 베트남에서의 행복함과 그리움, 까만 얼굴을 선물해 줬다. 그래도 한편으로는 이게 정말 봉사활동일까? 내가 즐긴 건 아닐까? 정말 도움이 되었을까? 그런 진지한 고민도 꽤 많이 했다. 국회의원들이 대충 코스프레하는 그런 것들을 내가 한건 아닐까 하는 불안함도 있었다. 그 사람들이 봤을 때는 어쨌든 일회성 만남이었고, 오히려 귀찮고 성가셨을 수도 있으니까. 단순히 내 위주로만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내가 좋아하는 사람과 좋은 일을 하는 기회였고, 처음 있는 해외라는 곳에서 낯선 언어로 행복을 교감할 수 있는 기회였다. 지금은 많이 희석되어 버린 내 마음이 다시 몽글몽글해졌으면 좋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