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4
요즘 들어서 봉사활동이라는 것을 전혀 하지 못하고 있는 나를 보면서 다시 반성하게 된다. 목소리기부를 해볼까? 주말마다 무슨 봉사활동을 해볼까? 고민만 하고 실행은 하지 않는 나를 보니 좀 안쓰럽다.
불과 몇 년 전 난 그 친구를 다시 만났다. 좋은 의미로 만났기 때문일까? 이런저런 작은 일들이 있을지언정 다들 돈독하게 만나고 있었기 때문에 여전히 그룹방은 남아있었고, 대화창이 뜨문뜨문 하지만 활성화되어 있었다. 그러다가 정말 몇 년 만에 우리는 개인적으로 대화를 하게 되었다. 여전했다. 시답잖은 농담과 대화들이 쌓이고 다시 그때로 마음이 몽글몽글해졌다.
내 친구는 이미 결혼을 했고 그는 그녀와 헤어진 상태였기에 사실 우리 관계가 달라지는 건 한순간이었다. 마침 둘 다 서울 근처에 있었고 마음도 거리도 가까워지는 듯했다. 어느 날 집에 전등이 고장 났고 밤 10시가 넘었던 그때, 나의 징징거림에 그가 찾아왔다. 이러고 어떻게 있었냐 앞으로는 자기가 봐주겠다. 잔소리를 쏟아내더니 전등을 고쳐주었다. 밤 10시 이후 1 시간 넘게 걸리는 거리를 달려와준 것만으로도 고마웠는데 그 잔소리마저도 고마웠다.
늦은 밤 간단히 요깃거리를 채우고서 그냥 이런저런 이야기를 했다. 그 친구는 어렸을 때도 사업수완이나 말수완이 좋았었다. 그 특기를 살려서일까 사업을 하고 있었다고 한다. 그러다 COVID-19 사태에 지금은 조금 주춤하고 있다고. 사실 이과계열의 인간이라 잘 알지도 못한 채로 듣고 있었다. 열심히 살아왔겠거니 그렇게.
새벽이 깊었고 어디 따로 가서 잘 곳도 없었기에 그는 그렇게 잠을 잤다. 맥주 한 캔의 술기운이었을까, 오랜만에 본 그의 모습에 몽글몽글함이 올라와서일까, 여기까지 와준 그에게 고마움을 느껴서일까, 그와 나는 관계가 한걸음 더 가까워졌다. 어떻게 보면 나의 짝사랑이 이루어졌다고 해야 할까. 다음날 그렇게 나는 출근을 했고 그도 그렇게 나갔다. 매일 하는 연락이 좋았고 좀 더 달라진 우리 관계가 마냥 좋기만 했다. 매일 보는 것도 아니고 가끔 만났고 그의 푸념도 들어주고 그의 힘듬도 들어주었다.
퇴근하고서 그를 만나러 가는 길이 설레었고 그의 얼굴을 보는 게 떨렸었다. 그가 아직 제대로 준비가 되지 않았기에 밥을 싸 거나한 건 거의 내 몫이었지만 싫었던 것도 불편했던 것도 없었다. 그 상황들이 좋았고 연애하는 모든 이의 마음이 그렇듯 그냥 그가 잘 먹고 잘 이겨내서 다시 이전처럼 잘 되길 바랐었다.
그렇게 관계가 달라질수록 난 해야 할 숙제가 하나 있었다. 내 친구 그녀에게 연락을 해야 했다. 뜬금없이 나는 그녀에게 연락했고 꾸밈말없이 말했다. 그와 사귄다고. 그녀는 진심으로 축하해 주었고 그도 나도 서로 행복했으면 한다고. 어쩌면 나와 그사이에 그녀가 끼어든 건 아닐까 생각했었다고. 분명한 건 그는 그녀를 그때 정말 좋아했고 아마 그의 마음속엔 그녀가 여전히 남아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상관없었다. 쨌든 지금 내가 그의 곁에 있으니까.
그리 일상적인 연인관계는 아니었다. 그는 그리 좋지 않은 상황에 힘듦이 느껴졌고 돈이 필요하다는 게 보였다. 직접적으로 돈을 빌려줄 순 없어도 여유분의 노트북이나 휴대폰, 아이패드를 빌려주었다. 일할 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될까 싶었다. 그는 잘 쓰고 돌려주겠다는 말과 함께 기쁘게 가지고 돌아섰었다. 아까웠던 건 아니었다. 다만 소유욕이 워낙 강한 나이기에 물건은 잘 쓰고 돌려주길 바랐었다. 그게 5년이든 10년이든.
그는 돈이 필요했었다. 지금은 보이는 그의 말들이 그때는 그저 힘들었던 그의 모습만 보였다. 어디가 이자율이 좋다더라 어디 쪽대출은 어떻더라. 물어보았다. 얼마가 필요하냐고. 나는 그에게 내가 가진 역량을 넘어선 채 돈을 빌려주었다. 조만간 갚겠다는 두리뭉실한 답변에 그저 그렇게 천만 원 단위의 돈을 빌려주었다. 매일 힘내라 했다. 괜찮다 했다. 하지만 그는 지쳤는지 쉬이 일어나질 못했다. 장기화되는 COVID-19와 얼어붙은 주식시장은 그를 힘들게 했다. 빠른 속도로 나도 지쳐갔다. 나도 모진 말들이 나갔다. 모질게 말하면 일어설 줄 알았다. 어느 날은 연락이 되지 않았다. 알고 보니 연체가 된 것이었다. 연락이 안 되는 게 답답하기도 했고 폰이 정지되면 일하는데 방해될까 싶어 대신 폰요금도 내주었다. 어느 날은 고소가 들어왔대서 변호사비용도 내주었다.
자존심이 강한 친구라 고맙다는 걸 쉬이 내색하지 못하는 거라 생각했다. 기분전환하라고 뮤지컬도 보여주고 사진도 찍으러 갔다. 그러나 그뿐이었다. 내 콩깍지가 떨어진 것인지 나도 점점 지쳐만 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