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지금 그리고 내일_11

지금의 나 _5

by 쑤라이언

예나 지금이나 사람 잘 믿는 건 변함이 없다. 누구나 사정이 있고 사정얘기 들으면 이해 못 할 건 없다고 그렇게 믿기 때문이다. 나는 좀 바보 같다. 그렇게 하루하루가 갔고 기약 없는 답변에 지쳤다. 화도 내고 구슬려도 보고 지금 보면 질렸겠다 싶은 그런 상황도 많았다. 미안한 것도 많았지만 나 또한 최선을 다했다. 뭐든 도와주고 싶었고 누구보다 얼른 일어서길 원했으니까.


하지만 그는 점점 힘들기만 했나 보다. 그는 그런 내가 질렸었나 보다. 지금 내가 그를 이해하는 게 노력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냐만은 그렇게 우린 삐그덕거렸고 내가 차단당하면서 관계가 얼어붙었다. 그 사이 변호사를 만나보기도 하고 다른 번호로 연락을 시도해보기도 했다. 막상 진행하기만 되는 그때는 하지 못했다. 기다리면 기다보면 관계가 나아지지않을까, 고마움을 갚지 않을까 하는 허황된 믿음을. 그사이 나는 단순 사기당한 이금액이 문제가 아니라 생활비와 이자와 원금을 갚기 위해 갈아타던 대출로 빚은 불어났고 여기저기 손 벌리다 결국 회생을 신청했다.


쉽지 않았다. 나름 고액연봉자였고 그사이 통장내역서와 모든 재산내역서 그리고 사정설명 등 모든 걸 설명한다는 게 숨 막혔고 내가 뭐 하는 짓인가 멈추고 싶은 순간들이었다. 내가 까발려지는 순간들이었다. 나 자신이 얼마나 멍청했던가 이럴 거였으면 주위사람 안 괴롭히고 바로 신청이나 해볼걸 싶었고 나는 왜 멍청하게 돈을 빌려줬나 싶었고 주저앉고 울고 싶던 때였다.


몇 개월이 지나서 회생이 승인되었지만 드라마틱하게 빚이 탕감된 것도 없었고 실제 생활비 따윈 고려되지 않았다. 비정기적인 금액의 보너스는 일괄적으로 계산되어 매달 받는 월급의 90%를 회생금액으로 지불해야만 했다. 회생돈을 내기 위해 빚을 내야 하나 하는 생각도 들정도였다. 결국 1년 조금 넘게 잘 내다 금액이 부족한 순간들이 오기도 했다. 어쨌든 갚아야 하니 버텨야만 했다.


주저앉아서 울고 있기에는 나 자신이 너무 민폐였다. 그러면서 계속 고민하고 있다. 여전히. 그를 고소해야 하나, 사실 그에게서 원하는 건 이제 돈과 빌려준 전자기기들인데 고소해서 받을 확률이 낮다 보니 망설이게 된다. 그에 비해 소모되는 시간과 또다시 들어갈 돈이 적은 돈이 아니다 보니 한심하지만 고민하게 된다. 그러면서도 또 멍청한 건 돈 때문에 접근한 게 아니라고 상황이 나아지면 찾아올 거라고 내가 믿은 그 친구는 그럴 사람이 아니라고 믿는다는 것이다.


일부러 그의 소식은 찾지 않았는데 이래저래 작은 채널에서 얼굴도 비추고 홍보도 하고 그렇게 열심히 살고 있다고 했다. 웃는 모습도 보이고 홍보도 하고 나름 어딘가의 대표로 있다고 했다. 그런다고 했다. 한편에서는 난 이용당한 거라고 그렇게 나 자신을 안타깝게 바라보고 한편에서는 아니라고 그도 면목이 없어서라고 애써 생각하고 있었다.


그로 인해 많은 것들이 바뀌었다. 철없이 여행 다니면서 돈도 모으고 했었을 텐데. 사는 게 녹록지 않다고 남자는 쉽게 믿는 게 아니라고 사람은 쉽게 믿는 게 아니라고. 아팠고 아프고 앞으로도 아플 일. 그런데도 여전히 누군가를 믿는다는 건 뇌가 이상한 걸까. 굳이 그를 믿는걸 내가 해야 했던 것일까. 지금 나는 그저 당장 지금에 집중한다. 나는 월급의 대부분을 법원에 내야 하고 또 내 삶에 집중해야 한다. 앞으로는 그러지 말자 다짐하지만 또 그럴 수 있을까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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