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10
돈은 버는데 없고 연인이었던 그 사람은 어디에도 없고. 허전하다. 가방끈이 길면서 제일 하고 싶었던 건 여행이었다. 교수에게 엮여있던 삶이라 어딜 갈 수도 없었고 여행을 하면 뭔가 있어 보일 것만 같았다. 소위 말하는 역마살이라는 게 없더라도 어디 나가는 건 좋았다. 나도 돈 버는 사람이다. 허세 부리고 싶기도 했다. 온전한 첫 해외여행은 홍콩이었다.
학회도 가보고 여행을 한 번도 안 가본 건 아니지만 입국심사를 받는 것도 떨렸다. 혼자였으니까 이런저런 일들로 강해진건 자립심이었다. 사실 누구보다 외로움을 많이 타고 쓸쓸해하지만 겉으로는 누구의 도움 없이 혼자 할 수 있는 것처럼 보일 수 있는 자립심. 어쨌든 홍콩에 혼자 가있는데 누가 날 돕겠나. 입국심사는 그리 어렵진 않았다. 공항철도를 타고 홍콩시내로 왔고 밖을 나섰다. 습하고 더위와 홍콩음식냄새가 섞인 거리 냄새가 났다. 주위를 둘러보는데 한국과는 다른 느낌이다.라는 생각과 왜 이곳이 유명할까? 하는 질문이 들었다.
홍콩은 고층 빌딩이 많았다. 지금 보면 서울과 뭐가 다르겠냐만은 뭔가 좁은 간격에 휘황찬란한 고층 빌딩들이 줄지어 서있었고, 그 사이사이에 한쪽 벽만 페인트칠이 된 습한 냄새가 가득 찬 옷들이 바람에 날리는 일반 아파트들이 있었다. 우리나라는 뭔가 테헤란로에 건물들이 가득하고, 아파트 단지가 있는 뭔가 주거공간과 일하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는 느낌이라면, 홍콩은 모든 게 혼재되어 있는 느낌이었다. 그리고 그 번쩍이는 고층 건물들이 한강보다 작은 강, 아니 바다인가. 물을 사이에 두고 서로의 위용을 뽐내고 있었다. 특히나 밤에 그걸 보니 아기자기한 게 예뻤다. 여행을 가서 좋았던 것은, 내가 신경 쓸 사람이 없다는 것. 그리고 나를 신경 쓰는 사람도 없다는 것이 제일 컸다. 모국어가 아닌 말들로 유리벽속에서 그곳을 걸어 다니는 느낌이 색달랐다.
홍콩은 흑백인 듯 컬러인 듯 한 배경지에 도시의 불빛이 흩뿌려진 곳 같았다. 쨍한 컬러감도 아닌 색감에 뭔가 모를 무채색이 덮인 차분하지만 우중충하고, 진득하지만 무심한 그런 곳. 화양연화나 중경삼림을 보면 그런 느낌이 더 강한 것 같다. 그래서 낮이나 밤이나 그 느낌이 너무 좋았다. 그런 곳에 이방인으로 사람들을 관찰하듯 바라본다는 것이 낯설면서도 좋았다. 금토일월의 짧은 여행이었지만 긴 휴가와는 다른 느낌으로 여행을 다녀왔다. 지금도 이렇게 여행을 다니고 있는데 몇 시간 전엔 다른 나라였는데 지금 회사 컴퓨터 화면을 바라본다는 것이 묘한 즐거움을 느끼게 한다.
한 달에 한 번은 여행을 하는 것 같다. 어쩌면 그것보다 더 많이 갈 수도 있다. 일종의 허세일까? 마음의 허세일까? 뭔가 허전한 기분을 이렇게 채운다. 아무리 특가의 저렴한 비행기표라고 한다 한들. 숙박비와 비행기값 음식값에 기념품을 사면 사실 한번 여행 때마다 100만 원은 그냥 깨지는데 막상 비행기, 숙소, 액티비티를 따로 구매하거나 예약하면서 그런 생각이 없어지곤 한다. 갚을 돈도 많은데 마음이 허하다고 이렇게 풀면 안 되지 않나 싶다가도 막상 이렇게 여행이라도 다녀오고 나면, 빚을 갚고 있다는 누군가에게 마음의 상처를 받고 혼자라는 생각을 안 하게 된다. 다른 사람들보다 잘 살고 있는 그런 멋진 삶을 살고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결국 남들의 눈치를 보고 있는 거겠지. 내가 이런 사람인 걸 들키고 싶지 않아서. 내가 부족하고, 모자란 사람인 걸 들키고 싶지 않기 때문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