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의 나_9
그때 이후로, 연애를 하는 나는 단 한 번도 갑인 적이 없다. 얘는 왜 날 좋다고 하는 걸까? 이러다가 또 떠나겠지? 그냥 잠깐 관심이겠지? 이런 질문들로 연애하는 날 옥죄고 있다. 사실 나는 나를 좋아한다. 솔직하고 다정하고 포기하지 않으려 하고 성실하고 또 도전하는 것도 좋아한다. 하지만 연애 그리고 누군가와 관계를 진전시키는 부분에 대해서는 항상 약자이다. 머리는 이성적으로 이러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알고 있고 내 위주로 생각해 봐도 된다는 걸 알지만 알게 모르게 내 맘 속 깊은 무거운 마음이 잘 가시지 않는다.
그런 시간이 지나고서 은유적으로 그런 일이 있었다고 그 여자애에게 말한 적이 있다. 어차피 모임으로 만나던 사이다 보니 그 여자애는 그런 일도 모른 채 그 남자애와 아주 친하게 지냈고 그게 몹시 아팠다. 정말 아팠다. 이런 얘기를 하는 게 쉬운 일일까, 마음먹기에도 꽤 오랜 시간이 걸렸고 말을 꺼내는 것도 그리 쉬운 일은 아니었는데 그녀는 꽤나 덤덤했다. 아주 덤덤했다. 같이 분개하지도 않았고 화내지도 않았고 날 탓하지도 않았다. 그랬었다. 그때 이후로 더 날탓하는 게 더 심해졌다. 나의 약점은 얘기하지 않는 거라 했었는데 솔직함이 뭐가 좋다고. 바보같이.
사람을 믿지만 믿지 못하게 되었다. 날 좋아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걸 알지만 내가 좋아하는 사람들에게 잘해야 하는 걸 알지만 언젠가 날 떠날 것 같고 지금 잠깐 좋아하는척하는 것뿐이라고. 문자하나 카톡하나 남기는 것도 별의별 생각으로 응. 하나 보내는 것도 힘들다. 말이 맞지 않는데 정말 사람을 너무 믿는데 믿지 못한다. 아니면 믿는다는 게 아니라 너무 믿고 싶은 것인지 모르겠다.
사람들은 잔인하다. 성선설보다는 성악설을 믿고 있기에 본성이 그러하다 생각한다. 잔인하다는 말을 달리하면 나만 바라본다는 것일 수도 있다. 내 위주로 살아야 하는 거니까. 그걸 잘못이라고 할 순 없다. 누구나 날 보호할 의무는 있는 거니까. 그게 혹은 남을 짓밟는 일일지라도 남에게 상처 주는 일일지라도 잔인해져야만 한다. 난 그 잔인함에 매번 베인다. 나도 누군가를 베기도 하겠지? 내가 알지 못하는 잔혹함으로 타인을 아프게 하기도 하겠지. 그러니까 이 아픔을 억울하다고 말할 수 없는 것일까?
나는 잔인하고 싶다. 이기적이고 싶다. 적어도 내가 느낄 수 있을 정도로 이기적이고 싶다. 타인의 감정에 공감하고 싶지 않다. 하지만 그게 또 제일 어렵다. 아픈 이야기를 들으면 마음이 먼저 아프다. 다 이해할 순 없어도 아픈 게 같이 느껴진다. 나만 신경 쓰기도 바쁜 삶에 참 이렇게나 바보 같을 수가. 물론 그렇다고 내가 뭐 엄청 착하다거나, 천사라거나 그런 건 아니지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