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지금 그리고 내일_16

그때의 나_8

by 쑤라이언

뭔가 새로운 환경에서 지낸다는 건 신선하기도 하고 또 무섭기도 한 것 같다. 재미있는 경험도 많았지만 또 낯선 경험도 많았으니까. 부모님을 떠나서 혼자 산다는 게 녹록지 않기도 했다. 늘 부모님이 곁에 있다는 알지 못하는 안정감이 혼자 살면서 더 두각 되기 시작했다.


여느 날과 다름없이 그날도 평온했다. 학교 근처에 생긴 새로 생긴 술집에 가서 주거니 받거니 술도 주고받고 말도 주고받았다. 그때는 뭐가 그리 세상에 할 말이 많았던 것인지. 재미있는 것도 많았고 흥미로운 것도 많았고. 또 화도 많았던 그때. 같이 술 먹던 친구들이 그날따라 과음을 했고, 집이 둘 다 멀기도 해서 내 방으로 같이 왔다. 여자애는 이미 술에 취해 잠에 들었고, 남자애는 그래도 걸을 수는 있어서 일단 같이 왔다.


어찌어찌 이불을 깔고 다 같이 누워서 잠을 청했다. 옆에는 자고 있던 남자애의 손길이 느껴졌다. 연애를 안 했던 건 아니었기에 이게 뭔지 몰랐던 것도 아니었지만. 다가오는 당황스러움. 건너에는 여자애가 자고 있었고, 소리를 지를 수도 없고 어찌해야 할지 몰랐던 순간. 소리를 질렀어야 했는데. 소리를 지르면 안 된다고 생각했다. 좋다 싫다의 느낌이 아니라 그냥 그래야만 했다고 생각했었나 보다. 그렇게 나는 아이러니하게도 처음의 순간이라는 걸 잃어버렸다.


날이 밝았고, 아마 둘은 집에 갔었나? 정말 거의 연이틀을 집에 불도 켜지 않은 상태로 있었던 것 같다. 꼬리에 꼬리를 무는 왜라는 질문과 내가 그 순간 좋아했던 건가? 그러면 안 되었던 건가? 뒤돌아서면 잘못은 그가 한 것인데 나는 나를 탓하고 있었다. 애초에 내 탓이다. 사람을 믿었던 내 탓이다. 자주 여행도 가고 했었기에 의심 없이 들였던 내 탓이다. 소리를 지르지 않았던 내 탓이다. 싫지 않았던 건 아니었나? 내 탓이다. 결국 내 탓이다.


그랬다. 어디에 말을 할 수도 없었다. 길건너에서 자고 있었던 친구가 너무 야속했다. 우리 모임이 와해될까 두려웠다. 정말 싫고 무서웠고 화가 났지만 또 한편에는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이고 친구였다는 것도 너무 슬펐다. 아무렇지 않게 행동했다. 어디 말도 하지 않았다. 내 잘못이라고 생각했다. 왜, 드라마나 뉴스에 나오지 않나. 그런 일을 당했을 때 아무렇지 않게 이모티콘을 쓰면서 대화하는 걸 보면 당한 게 아니라고. 그런데 몰라서 하는 말. 그럼 그 상황에서 뭐라고 할까? 뇌구조가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지만 남보다는 나를 탓하게 되면 나만 탓하게 되면. 마음이 약자가 되면, 그럴 수 있다. 적어도 카카오톡에서는 내 눈물이 보이지 않으니까 나의 이 혼란스러운 감정이 보이지 않으니까.


사람 감정은 하나로 정의 내릴 수 없는 것임을 모두가 알 것이다. 그렇게 생각하는 게 쉬울 수 있지만. 단순하게 생각할 수 있지만. 결국 하나를 두고도 생각하는 게 다른데. 그런 상황에서 무슨 말을 하게 될까? 그때 나는 따지지도 화내지도 못했다. 그리고 한참을 지나서 그때 왜 그랬냐고, 가라앉은 감정으로 나름 침착하게 물어본 적이 있었는데. 지금 생각해 보면 꽤나 개소리를 정성껏 했던 기억이 있다. 내가 아니라 그가. 무능력했다. 그때도 그리고 그때도 나는 아무 말도 대구 할 수 없었다. 아직도 나는 내 잘못이라고 생각이 된다. 또 그의 잘못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잘못이라고. 내가 잘못이라고. 그러지 않았더라면 안 그랬다면 이라고 수십 번 수백 번을 되뇌면서 나를 탓하고 갉아먹었다. 지금까지. 아마 죽을 때까지 그때를 떠올리면 이러지 않을까? 지금은 거의 연락하지 않고 있다. 그런데 그가 결혼한다고 했을 때 나는 축의금을 보냈었고, 지금 한 아이의 아빠가 된 그에게 축하를 했다. 단독으로 한건 아니지만. 지금에 와서도 나는 여전히 바보 같다.


다시 또다시 꺼내지도 못할 말을, 그럴 일을 나는 또 이렇게 마음에 묻는다. 충분히 울었고, 충분히 괴로워했다고 생각하지만 여전히 나는 울고 있고 괴로워한다. 많은 사람들이 당했던 그 일들을 다 이해한다고 할 수 없지만 그런 일들이 드라마나 사건으로 나올 때면 눈물이 주르륵 흐른다. 나와 같진 않겠지만 그녀들이 얼마나 마음이 아플지 같이 아파와서 주체할 수 없을 만큼 기분이 가라앉곤 한다. 이렇게 글이라도 쓰면 아픔이 좀 줄까 싶어서 일기도 써보곤 했지만, 오늘도 그때도 역시 또 나를 탓하는 말이 가득이다. 그러면 안 되는데.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그때 지금 그리고 내일_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