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14
다음 날이었다. 그녀가 나를 불렀다. 주말 동안 많이 생각했고, 그녀만의 일이 아니다 보니 그와 상의를 했다고 한다. 그리고 말했다. 고소하겠다고. 일단 당황스러웠다. 고소라니. 나에게? 그러면서 말했다. 그래서 제가 지금 불륜이라는 건가요? 분명히 말했다. 그때도 그랬고 나는 내입으로 그 단어를 꺼낸 적도 없었고, 그때도 말했다. “그런 셈인가요?” 아마 그녀의 기억은 그게 아닐 수도 있지만. 휴대폰은 책상에 올려져 있었다. 그리고 계속 물었다. 누구와 이야기를 했고, 왜 그런 이야기를 했으며, 소문을 왜 퍼뜨렸는지. 내가 지금 잘했다고 생각하진 않는다. 그런데 내가 왜 그런 결정을 내렸는지도 모른다. 모른다고 했다. 누구랑 이야기했든 난 이야기할 생각이 없다고 했다. 그냥 나로 마무리지으라고 했다. 고소... 하라고 했다.
사실인 건가, 이걸로 고소가 되는 건가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었다. 그날 저녁에 상대 쪽 남자가 나를 보자고 했다. 이야기를 하자고 했다. 자기에게 왜 그러냐며, 왜 그런 소문을 냈고, 누구랑 이야기했는지 또 말하라고 했다. 모른다고 했다. 그랬더니 주먹을 휘둘렀다. 지금 생각해 보면 차라리 맞았어야 했는데 말이지.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며칠 뒤, 경찰서에서 전화가 왔다. 고소가 접수되었고, 와서 조사를 받으라고 했다. 고소인은 남자였고, 여자는 참고인이었다. 웃겼다. 나랑 이야기한 건 여자였는데 고소는 남자가 하다니. 나는 뭘 지키려고 나 혼자 그걸 다 덮어썼을까? 혹시나 일이 커질까, 어쨌든 회사 내의 일이니 상사에게 이야기했다. 처음에 여자와 나와의 문제일 줄 알고 본인이 이야기해 보겠다고 했던 상사는 남자가 고소했다고 하니 타 부서와 엮인 일이라 발을 뺀다고 했다. 그래, 머리는 이해했다. 회사일이니까 시끄러워지는 게 싫은 거겠지. 혹시 몰라서 나와 이야기 나눴던 동료들에게도 말했다. 모두가 날 질책했다. 왜 그때 그런 말을 했냐고 했다. 여기서 또 잘못을 나에게 돌렸다. 사람들도 나도. 내가 문제였다. 회사상담도 받아봤지만 별 의미가 없었다.
조사를 받으러 갔다. 아무도 나와 함께 해주지 않았고, 나와 그런 이야기를 했던 모든 이들이 나에게서 등을 돌렸다. 이제 자기 일이 아니니까. 나보다 더 과하게 그들의 관계를 지탄했던 모든 이들이 입을 닫았다. 냉정한 현실이었다. 정말 있는 그대로 말했다. 여전히 손이 부들부들 떨리고, 화가 나는 상황이지만. 그래 다 내 잘못이지. 내편을 들어주지 않고 내 뒤에 선 그 사람들을 욕할 수는 없지. 여긴 회사니까. 그런데 그런데 왜 다들 이렇게 비겁한 걸까? 따뜻한 말 한마디도 그렇게 어려운 건가? 여기서 잘못이라는 걸 누가 한 것일까? 이름이 언급되지 않았을 뿐 블라인드에도 오고 내리던 그 내용을 내가 소문을 냈다라니.
결국은 증거불충분으로 불송치 결정이 났다고 한다. 그 결정이 오기까지 어떤 마음으로 하루하루를 버텨야 했는지 여전히 나는 병원을 다니고 있고, 약을 먹고 있다. 한동안 그녀가 공적으로 보냈던 메일과 언급되는 이름 하나에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엄살이 아니라 이름을 보기만 해도 심장이 쿵쾅거리고 숨이 쉬어지지 않았다. 벌써 3년이 지나가는 것 같다. 바로 명예훼손으로 고소를 하고 싶었다. 아무나 할 수 있는 고소라면 나도 할 수 있지 않나. 다들 말렸다. 오히려 더 힘들 수 있다고 여기서 마무리 지으라고.
옛날이나 지금이나 비겁한 사람들이 더 많다. 그리고 오만한 사람들도 더 많다. 본인은 그 상황에서 그럴 리 없을 거라는 그 오만함. 네가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책임 없으니 혼자 해결하라는 그 비겁함. 정말 분명한 건 나와 그런 이야기를 나눴던 동료가 그런 일에 휘말렸다면 이렇게 나두진 않았을 거다. 적어도 나는 나는 그런 멍청한 인간이니까. 단언하지 말라고? 아니 단언한다. 하지만 이젠 어떻게 할지 모르겠다. 너무 큰 상처를 받았고, 너무 힘든 시간을 보내고 있는 나에게 이 상황이 어떤 것인지 알 수가 없다. 잔인했다. 그 몇 개월이 너무 잔인했고, 가슴을 갈기갈기 찢어버리는 순간이었다. 많은 사람을 향했던 신뢰가 그냥 무너졌었고, 그 사람들에게서 버려지고 밟힌 내가 너무 안쓰러웠다. 한 번도 그런 생각을 안 했던 것처럼 지금 와서 그녀와 하하 호호하면서 일을 하는 이들을 볼 때마다 불같이 화가 나는 감정을 나는 끊임없이 다스려야 했고, 다스리고 있다. 일은 일이고, 그런 소문은 소문이라는 건가. 네 편 내 편 나눔 일도 아니지만 결국 그녀 편인 건가. 그 와중에 나로 인해 일을 제대로 하지 못한다며 상사에게 얘기하는 그녀나, 그걸 그대로 나에게 말하면서 양쪽의 이야기를 듣기는커녕 나에게 잘못했다고 공개적인 장소에서 질타하는 상사나. 불합리한 일들이 가득했다. 적어도 내 기준에서 불합리한 일들이 가득했다. 이걸 어떻게 버텨야 할지 어떻게 지나갈지 여전히 터널 속일 뿐인데. 경제적으로나 감정적으로나 그리고 일적으로나 날 둘러싼 이 모든 일들이 어려울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