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지금 그리고 내일_27

지금의 나_15

by 쑤라이언

그들과 나는 그게 끝이 아니었다. 의사 선생님이 했던 말이 있다. 그래도 나름 똑똑한 사람들 가는 거 아닌가요? 행동이 너무 저급한데? 그랬다. 늘 그렇듯 회사 내 헬스장에 가서 운동을 했었다. 운동을 마치고 오는 길이었다. 마침 헬스장에는 아무도 없었고, 그녀가 내 앞에 서 있었다. 나를 노려보다시피 하고 있었다. 아니면 그냥 쳐다보았든. 그가 나왔다. 왜 무슨 일이냐는 눈빛을 주고받더니 나를 쳐다봤다. 순간 무섭기도 하고 조르였지만 일단 걸어갔다. 그가 아무도 듣지 못하게 나에게만 말했다. “시발년이 뒤질라고 “ 그리고 둘이 마주 보고는 웃었다. 떨렸다. 내가 겁이 난 모습을 들키고 싶지 않았지만 도저히 걸어서 여자 탈의실까지 갈 수가 없었다. 헬스장을 관리하고 계시는 선생님들이 계신 곳으로 들어갔다. 밖에 저 사람이 나에게 욕을 했다. 나는 증거를 내밀수도 없었다. 녹음을 한 것도 아니고, 그들이 아니라고 하면 끝이었다.


물을 마시고 좀 진정한 다음, 탈의실에 가서 옷을 갈아입으려는데 갑자기 울음이 났다. 정말 혼자, 이 모든 걸 오롯이 혼자 감당할 수밖에 없었다. 혼자서 나가다가 부딪힐까 두려워 회사 지인을 불러서 나갔다. 그 사이 그녀에게 가서 수지에게 무슨 말을 했냐고 했더니, 왜 그러냐고, 무슨 일 있었냐고 되물었다고 한다. 억울해도 어쩔 수가 없었다. 난 혼자였고, 그들은 둘이었으니까.


모두가 날 외면했었다. 도움의 손길도 아무도 주지 않았다. 모두가 그랬다. 나의 잘못이라고, 내가 감당해야 한다고. 내가 뭘 잘못했는지도 모르겠고, 왜 내가 이런 일을 당해야는 지 몰랐지만 혼자 버텨냈다. 내가 물러서면 내가 지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정신과를 가든, 다음을 기약하든 버텨야 한다고 생각했다. 부서를 옮기는 것도 생각하고, 이메일을 써서 상사에게 조목조목 상황 보고도 했다. 돌아오는 건 없었다.


공황장애라는 병명을 얻고 제대로 된 약물치료를 하기 위해 큰 병원으로 옮겼다. 선생님이 그랬다. 증상이 범죄피해자와 같다고. 끊임없이 나에게 주지 시키셨다. 물론 내 말만 들으셨지만. 내 잘못이 아니라고 했다. 생각하지 말라고 했다. 내가 불편한 만큼 그들도 불편할 거라고. 지금 뭔가 하는 게 득 될 건 없다고. 그냥 물 흐르듯 넘겨야 하는 거라고.


얼굴을 보지 않으면 마주치지 않으면 또 괜찮았다. 하지만 그들은 늘 함께 다녔다. 여전히 식사도 티타임도 함께였다. 소위말하는 지성인들이 다니는 회사에 저런 무식한 사람이 있다는 것도 충격이었고 순간 저 사람이 나에게 폭력을 행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기에 너무 무서웠었다. 떠나고 싶었다. 숨고 싶었다. 하지만 난 갚아야 할 돈도 있고 부모님께 약한 모습을 보이고 싶지도 않았다. 아팠다. 나는 피해자이자 환자였다. 2-3년이 지난 지금 누군가 말했다. 이젠 좀 괜찮아져야 하는 게 아니냐고.


난 여전히 아프다. 지난날 그 남자애와 있었던 입에 담고 싶지 않았던 일도. 떠올리는 순간이 힘이 풀리고 눈에 눈물이 난다. 마치 눈물을 댐으로 가둬뒀다가 풀어버리는 것처럼. 나에게 사기를 치고 잠수 탄 그 사람을 생각하면 내가 너무 한심해서 자꾸 가슴을 친다. 멍이 들고 또 들었는데도 여전히 아프다. 지금도 귓가에 욕을 하던 목소리가 맴돌고 둘이서 마주 보고 웃는 게 떠오른다.


이런 얘길 하지 않는 한, 내가 아픈 사람이라는 걸 누가 알까? 그냥 행복하게 여행 다니고 하고 싶은 거 사고 싶은 거 다 하고 사는 철없는 사람이라고 바라보겠지. 세상걱정이라는 건 없이 그냥 크게 떠드는 손 많이 가는 그런 사람이라고 생각하겠지?


함부로 남을 평가할 순 없다. 평가해서도 안된다. 나라면 그러지 않았을 거라고 왜 그런 말을 해서 고소당하냐고 그렇게 오만함을 가져도 안된다. 그런 일이 있다고 했을 때 나와 그런 얘길 한 적이 없었던 것처럼 비겁함을 가져도 안된다. 사람의 또 다른 본성을 알았다. 여전히 알고 있어도 또 당하고 또 당하고 있지만. 그렇게 난 아픈 만큼 한 뼘 마음이 커졌다. 아이러니하게도 상처받은 내 마음은 더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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