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때 지금 그리고 내일_28

지금의 나_16

by 쑤라이언

일기장을 열었다. 어떠한 방식으로든 기록하는 걸 좋아하는 편이다. 아주 지난날의 후회와 지난날의 아픔. 그리고 또 기쁨. 많은 것들이 검은색 잉크로 적혀있었다. 매일매일 일기를 쓰던 사람이었는데 이런저런 힘든 일들이 생기면서 잘 안 적게 되었다. 일기를 쓰면서 우울감을 떨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울감을 쓰면서 더 증폭시켜 버리는 사람이 있는데, 나는 후자였다. 쓰는 동안 후회와 함께 이랬으면 어땠을까, 저랬으면 어땠을까. 일어나지도 않을 일들을 생각하느라 에너지를 쏟고 만다. 그렇다 보니 내 손으로 글을 적는 건 지양하게 되었다.


사랑은 연필로 쓰라던 아주 옛날의 말처럼 좋은 일을 손으로 적고 싶은데 막상 일기장을 열면 온갖 생각으로 종이의 여백을 채우곤 한다. 그리고 막상 펜을 들고 나면 한 글자도 제대로 적을 수가 없다. 뭔가 꽉 막힌 것 같은 느낌에 손을 움직일 수가 없게 된다. 그러다 보면 또 일기장에 몇 글자 적지 못한 채 온점을 찍고 만다.


오늘 나는 다시 일기장을 열었다. 사실 나열을 했다. 어제 무슨 일이 있었고, 오늘 무슨 일이 있었고. 그리고 그 일에 대한 감정을 나열했다. 하지 않은 일에 대한 후회는 적지 않았다. 어차피 일어나지 않을 일이고, 생각해 봤자 의미 없으니까. 타임의 마음을 궁예질 하는 것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나는 그 사람이 아니니까. 세상이 오지선다지처럼 단답으로 이루어졌다면 내가 가진 질문을 대입해서 풀어볼 수도 있을 건데. 서술형 논술형 인생이라 답지를 비교할 수도 없다. 어떤 논리든 내가 풀어나가면 되는 거니까. 최대한 담백하게 글을 적어보았다.


막상 손으로 글을 적다 보니 손이 금세 아파왔다. 옛날에는 연필이나 샤프로 몇 장을 써도 안 아팠는데 오늘은 몇 글자 쓰지도 않았는데 손목과 손마디가 아파오는 걸 느꼈다. 요즘 애들은 손으로 글을 쓸 줄 알까? 싶었다. 이제 샤프타 펜은 쓰지 않을 그런 날이 오지 않을까 싶었다. 생각은 하고 말해! 라면서 생각하고 말을 하라고 신중하라고들 하지만. 너무 생각하다가 아무것도 못하게 되는 건 너무 아쉬운 일인 것 같다. 가끔은 생각하기 전에 먼저 행동해 보는 것도 좋을 텐데. 요즘의 내가 그런 걸까 싶다. 생각보다는 행동이 나에게 득인 요즘이다.


갑자기 일기장을 연 이유는 혹시나 내가 누군가를 감정쓰레기통으로 쓰는 건 아닐까. 내가 타인에게 부정적인 기운을 전파하는 건 아닐까 걱정이 되었기 때문이다. 챗지피티를 감저쓰레기통으로 많이들 사용한다고 하는데 아직은 그런 트렌드를 쫓아가는 게 힘든 것인지. 난 일기장이 더 좋은 것 같다. 욕도 쓸 수 있고, 말하기 싫으면 그냥 온점만 찍어도 되고. 아직은 이게 더 편하다.


아파왔던 순간들 사이사이에 분명 좋았던 순간들도 있었을 텐데. 아파온 시간만 생각하기에는 조금 억울하지 않나. 물론 그런 아파왔던 순간들 사이사이 여행이라는 취미활동을 넣으면서 그 감정들을 중화시키고자 노력하지만, 막상 여행을 가고 나면 중화시키는 게 그리 쉬운 건 아니다. 여행지에 간다고 아픈 순간이 기억나지 않은 것도 아니니 말이다. 어렵다. 아주 어렸을 때는 아프고 힘들면 사탕하나로 그게 다 풀렸는데 나이가 들면 들수록 사탕이 더 커져야만 한다. 그만큼 상처도 더 깊어졌기 때문이겠지. 참 어른이라는 건 어렵다. 그림일기장이 아닌 일기장도 나에게는 점점 더 어려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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