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23
어차피 다 큰 성인이었고, 선택에 책임을 질 수 있는 나이였기에 이미 온 그를 다시 돌려보낼 수도 없었고, 보내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공항버스는 나의 호텔이 더 가까운걸. 뭔가 오랜만에 느껴보는 온전한 행복이었던 것 같다. 그를 바라보면서 웃으면서 말을 한다는 거. 그의 이야기를 듣고 나의 이야기를 한다는 것. 적어도 그때만큼은 온전히 그 사람하고 나와의 시간으로 보냈던 것 같다. 모든 걸 다 떠나서 상처가 없다고는 할 수 없기에 뭔가 위로되는 시간이었다고 하면 좀 웃기려나?
다음날이 되었고, 짐을 싸서 공항버스를 타러 갔다. 왜 전날 알았을까, 하루라도 일찍 알았더라면 하는 물음표가 남았지만 그것도 다 이유가 있었겠지. 같이 버스를 탔다. 정말 그때만큼은 연인이라고 생각했다.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아쉬워했고, 내려서도 뭔가 아쉬웠다. 체크인으로 하고서 같이 아침을 먹었고, 그 순간을 또 이야기 나누고. 사실 그렇게 연착을 기대한 건 또 처음이었다. 비행기가 늦게 도착하길 바랐던 것도 그때가 처음이었던 것 같다. 손을 잡고 그냥 쳐다보기만 해도 좋았다. 비행기도 같이 타고, 원래 예약했던 자리도 옮겨서 같이 서울로 왔다. 사실 혼자 여행을 다니던 게 익숙한 나였기에 누군가와 함께 간다는 것도 낯설었다.
공항에 도착해서는 또 그 친구와 점심을 먹었다. 한국 음식을 하는 곳이었는데 야무지게 한국음식 먹는 거 보는데 그게 참 웃기면서도 대견하다고 해야 하나? 스페인친구들이 한국음식을 잘 먹는다고 하더니 그것도 사실인가 싶었다. 뭔가 외국인과 대화를 하고 얘기를 한다는 건, 단순히 대화하는 것을 떠나서 그 나라 그 사람을 알아간다는 것인 것 같다. 잠시 일이 있어서 그와는 저녁에 다시 만나기로 하고, 나는 나의 일을 보러 갔다. 이런 일이 있을 줄 알았나. 알았으면 그에게 한국 소개를 핑계로 함께 있었을지도 모른다.
저녁이 되었다. 비가 몹시 오고 있었다. 예상컨대 그는 우산이 없을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그에게 줄 수 있는 우산을 가지고 갔고 그를 기다렸다. 비를 맞고 뛰어오는 그를 보니 참, 여행지의 콩깍지가 대단히 씌었다는 것을 느꼈다. 버스를 탈 수도 있었지만 거리가 애매해서 걸었다. 그리고 삼겹살집에 도착해서 고기를 구워 먹었다. 삼겹살을 먹어본 적이 없다고 해서 데리고 갔었다. 내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보니 단점은 말의 뉘앙스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다는 것이었다. 아쉽지만 어쩔 순 없었다. 영어실력을 늘리기에는 너무 짧은 시간이었으니. 그에게 삼겹살을 대접하고, 다시 그를 홍대로 데려다준다는 핑계로 좀 더 걸었다. 비가 너무 와서 그가 비를 다 맞아서 근처 우리 집으로 잠시 데려가려고 했었는데 그가 거절했기에 아, 끝이 다가오는 것을 느끼고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