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의 나_24
끝이 다가오고 있었다. 사실 이 만남에게 앞으로를 이야기한다는 것은 말이 되지 않았다. 그가 좋긴 하지만 그건 나만의 마음이었다. 그는 곧 돌아갈 사람이었고, 그가 돌아가고 나면 내가 그를 다시 볼 수 있다는 가능성이 그리 많지 않았다. 홍대로 다시 걸어가는 동안 그가 말했다. 우린 여행지에서 일어날 수 있는 그런 연인이었고, 여행지에서 이런 일은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고. 그리고 우린 친구지 않냐고. 그렇게 선 긋는 그를 보면서 나는 더 이상 말을 할 순 없었다. 그의 말이 맞았다. 내가 여기서 무얼 바랄 것인가?
우리는 그렇게 포옹과 마지막 키스와 함께 안녕을 고했다. 그는 그렇게, 나는 그렇게 돌아갔다. 고작 며칠이었지만 행복했던 시간이었다. 후회하지도 않고 약간의 그리움만 남았다. 마음이 조금 아렸지만 우리의 인연은 여기까지였으니까.
그렇게 그는 돌아갔고, 인스타로 DM을 주고받았다. 이 인연이 끊기지 않길 바라는 마음도 있었고, 또 언젠가 내가 스페인에 가면 만나지 않을까 하는 작은 희망도 있었다. 그러다 그의 메시지가 왔다. 내가 산 엽서를 자기가 가져간 것 같다는 내용이었다. 처음에는 뭔지 몰랐는데 그 엽서는 내가 그에게 쓴 엽서였고, 살짝 가방에 넣어둔 것이라는 걸 깨닫는 데는 시간이 얼마 지나지 않았다. 혹시나 이걸로 한번 더 볼 수 있을까 싶어서 내가 찾으러 가겠다고 만날까 물어봤지만 그는 혼자가 아니었던 듯 만날 수는 없다고 했다. 이미 일본에서 그에게 인천공항에 마중 갈까라고 했을 때, too romantic이라고 거절당한 경험이 있었기에. 더 만나겠다고는 말하지 못했다.
시간이 좀 지나고서 그에게 말했다. 기억이 났다고, 그거 내가 너에게 쓴 엽서라고. 고맙다고 했다. 그렇게 그는 한국에서의 일정을 마치고 인천공항에 갔고, 그의 나라로 돌아갔다. 그 사이사이 연락을 주고받기도 했고, 또 돌아가서도 간간히 연락을 주고받고 있긴 하다. 나는 왜 이렇게 쿨하지 못한 지 알 수가 없다. 왜 자꾸 마음이 남는지 알 수가 없다. 다시 한번 보고 싶은 마음도 왜 그런지 알 수가 없다.
뭐, 인연이라면 다시 만날 수 있겠지. 아니면 이게 끝이겠지. 사람을 만나고 사람에게 마음을 주고 사람에게 진심을 전하는 게 세상에서 왜 이렇게 어려운 것인지 모르겠다. 내가 준만큼 돌려받겠다는 마음이 있는 것일까? 이전 남자친구라는 사람들에게 정말 최선을 다하지 않은 적은 없었다. 늘 좋아했고, 늘 잘해주려고 했다. 그게 화근이었을지도 모른다.
적당히 해야 하는 것인데, 문제는 그 적당히라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한다는 것이다. 나는 재는 걸 하지 못한다. 나는 밀고 당기는 것도 하지 못한다. 그저 주는 것만 할 줄 안다. 좋아하는 걸 해주고 싶고 상대방이 웃는 게 보고 싶을 뿐이다. 하지만 그런 걸 원하지 않는 사람도 많다는 걸 알고는 있다. 미련한 거지. 진심이 통할 거라고. 마음을 다하면 전달이 될 것이라고 미련하게 믿는 것이다. 그러면서 또 아프고 또 상처받고. 비단 남자친구의 문제가 아니라 친구사이에서도 나는 그랬고 또 그러는 것 같다. 나이가 들어도, 시간이 지나도 잘 고쳐지지 않는다.
나의 추구미는 시크미와 쿨함인데 그게 참 쉽지 않다. 담백해지고 싶은데 왜 안될까 모르겠다. 내가 담백해지려면 좀 더 마음을 덜 써야 하는데. 마음을 덜 쓴다는 게 나에게는 쉬운 일이 아니다. 정말. 그래야 마음이 덜 다칠 텐데 말이다. 이렇게 또 하나 더 배우고 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