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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제8장 : 예수의 유언

by 하인즈 베커

“예수께서 자기의 어머니와 사랑하시는 제자가 곁에 서 있는 것을 보시고 자기 어머니께 말씀하시되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하시고 또 그 제자에게 이르시되 보라 네 어머니라 하신대 그때부터 그 제자가 자기 집에 모시니라.” 요한복음 19장 26–27절 (NIV)


십자가 위의 예수는 여전히 누군가의 아들이었다. 피투성이가 된 육체, 무너져가는 숨결 속에서도 그는 군중도, 권력도 아닌 단 한 사람을 바라봤다. 어머니. 가장 오랜 시간을 함께했으며, 누구보다 먼저 그의 죽음을 예감했던 사람. 그는 자신을 낳고 키운 어머니를 내려다봤고, 말없이 곁에 있던 제자를 향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말했다. “여자여,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는 살아남을 제자와 어머니를 연결한다. 마지막 관계는 그렇게 정리되었다. 신이라면 선택하지 않았을 방식이다. 신은 홀로 완성되지만, 인간은 관계 속에서 떠난다.


예수가 신이 아니었다는 증거는 그의 출생보다, 죽음에 더 명확히 드러난다. 철학자 알랭 바디우는 <유한과 무한>에서 말했다. “신은 창조되지 않았기에 신이다.” 신은 태어나지 않고, 어머니를 갖지 않으며, 누구에게 무엇을 위임하지도 않는다. 그러나 예수는 창조된 자였다. 그는 누군가의 아들이었고, 누군가를 남기고 갔다. 예수는 어머니를 “여자여.”라는 거리감이 느껴지는 호칭으로 불렀다. 나는 그것을 차가움이 아니라, 이별의 형식이라고 생각한다. 그는 감정보다 예의를 선택했고, 울음보다 책임을 남겼다. “보소서, 아들이니이다.” 그는 어머니를 사랑하는 제자에게 맡겼다. 그러나 더 정확히 말하면, 제자를 어머니에게 맡긴 것이다. 남겨진 두 존재가 서로를 지킬 수 있도록, 관계를 재배치한 것이다. 그는 지금, 죽음을 앞두고 마지막으로 관계의 구조를 설계하고 있다.


엘리자베스 슈슬러 피오렌자는 이 장면을 “새로운 예수 공동체의 출발점”으로 읽는다. 예수는 교회를 세운 것이 아니라, 관계를 재조정했다. 마리아는 단지 육체적 모성이 아니라, 기억의 저장소다. 기적 이전의 예수, 침묵 속의 예수, 누구의 구세주도 아니었던 예수를 기억하는 유일한 증인이다. 사랑하는 제자는 단지 한 인물이 아니라, 그 기억을 이어받는 새로운 인류의 상징이다. 예수는 둘을 서로에게 맡김으로써, 자신의 빈자리를 메우고자 했다. 인간은 떠날 수밖에 없지만, 관계는 이어질 수 있다는 희망. 그것이 이 유언의 실질적 내용이다.


이 유언이 십자가 7언 중 셋째에 놓인 것은 우연이 아니다. 첫 번째 유언은 '용서'였고,두 번째는 '구원의 약속'이었다. 그리고 셋째는 '인간관계의 정의'다. 이후에는 더 이상 인간적 관계는 등장하지 않는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에서는 신에게 절규하고, “내가 목마르다”에서는 육체적 고통을 말하며, “내 영혼을 아버지께 맡깁니다”와 “다 이루었다” 에서는 자신의 종결을 선언한다. 셋째 유언은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책임이자, 인간다움의 정점이다. 예수는 유언의 형식을 통해 남겨진 이들이 사랑으로 서로를 지키는 연대의 구조를 만들었다.


신은 어머니가 없다. 신은 친구가 없다. 그러나 사람은 있다. 어머니, 제자, 스승, 친구, 그리고 끝내 남겨진 사람들. 예수는 이 관계의 실타래를 마지막까지 끌어안았다. '여자여'라고 불러야만 이별의 거리감을 견딜 수 있었고, '보소서'라고 말해야만 자신의 흔적을 남길 수 있었다. 그는 '사랑할 책임'을 남겼다. 이 장면은 믿음을 요구하지 않는다. 신앙 없이도 이해되는 장면, 인간이 인간을 대신해 곁에 남는 풍경이다. 기적도 계시도 없다. 말없이 서로를 받아들이는 일, 그 조용한 수용이야말로 이 유언이 가진 가장 깊은 울림이다.


예수는 설명하지 않았다. 부탁하지도 않았다. 하지만 이 짧은 한 마디에, 마리아와 그를 따르던 제자는 어떤 맹세보다 무거운 침묵으로 응답했다. 남겨진 자들이 기억하고, 지켜내야 하는 조율 없는 연대, 어쩌면 그것이 예수의 마지막 메시지였을지 모른다. 신이 아닌 사람이기에 가능한 구조, 사람이었기에 끝까지 누군가를 남겼다는 사실 앞에서 나는 잠시 멈춘다. 예수는 사라지며 자신의 자리를 비웠다. 그리고 그 빈자리에, 사람과 사람을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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