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한 잔소리 27


#고추장


이현우


고집스럽게 여문콩 가마솥에서 삶아져 단단한

현실 앞에 껍질을 벗고 내려놓는다

찹쌀 장밥에 고운 가루로 부서지는 아픔 속에 밀봉하여 점점, 점을 찍으며 숙성되어 가는 맛있는 시나리오를 혼자 누릴 수 없는 일이다

"장맛이 좋아야 집안이 잘 되더라" 아스팔트 위에 뒹구는 헐렁한 꽃무늬 몸빼바지의 눈부신 패러독스 매운 맛과 단맛의 조화 식초 섞으면 초고추장 된장과 섞으면 쌈장 시큼하게 만들면 막걸리 떡과 만나면 쫄깃한 떡복기 내어주는 넉넉한 속사정 세상 누구와도 친구되어 맛을 더하는 어느 심심한 가을날의 여백을 채우는 단골 레시피 비내리고 눈 내리는 역사의 뒤안길에서 소리없는 참아내며 지켜야 했던 장독대 만의 고집스러운 비밀 손끝에서 손끝 이어진 전설의 가보 썩어지고 녹아져 얼큰한 서사시 마침표를 찍는다 알 수 없는 거미줄 같은 과거 매꼼한 다이어리 욕심없이 우리가 모르는 순간에도 내속의 나를 낮추어 익어가고 익어갈 수 있다면,

순서 없이 왔다 순서 없이 가야 하는 미스테리 추리소설 아무도 알 수 없는 맛을 전해온 신비

알 수도 없고 알아도 정답이 없는 철자 없는 어설픈 메뉴판 네모난 희망과 희망 사이로

둥둥 떠다니는 얼큰한 하루 지난 아픔을 삼키며

살아가렵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생일 케이크 한 번 만으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