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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거진 시학과 시


#문학강의

[시란 무엇인가]


이근모(시인)


- 상처가 시를 탄생시킨다 -


시 하나에 매달려 평생동안 시를 써온 시인들에게 시란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몇몇 시인들은 시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대답한다. 사실 그렇다. 인생이 만져지는 실체가 아니듯, 시는 손에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확연히 잡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시인 네루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시를 정의하는 일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굳이 이를 정의 하라 하면 <상처가 시를 탄생시킨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다

왜 이런 정의를 내리는가는 다음의 금이간 항아리라는 이야기를 소개하여 이 정의에 대한 답을 대신 하고자 힌다


- 금 간 항아리 -


어떤 사람이 양 어깨에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하나씩의 항아리가 있었다.

그런데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항아리였다.

물을 가득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의 물은 반쯤 비어 있었다. 금이 갔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른쪽 항아리는 가득찬 모습 그대로였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간 나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 것으로 쓰세요."


그때 주인이 금이 간 항아리에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알고 있단다. 네가 금이 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물 한방울 흘리지않는 오른쪽 길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 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리지 않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니? 나는 그 생명을 보며 즐긴단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금이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사람들 때문이다 .


시도 이와 마찬기지다

금이간 항아리가 풀을 자라게 하듯이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알고 독자의 아픔을 힐링해 주는 시를 탄생시킨다


이렇게 탄생시킨 시는 한 편의 시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깊은 뜻까지도 마음에 새기면서 무언가 인간세계에 따뜻이 손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시인은 시를 써서 독자의 가슴에 별자리 하나를 올려놓는 것이다.


겨울역 / 이근모


눈보라를 실은 기차

시린 꼬리 길게 획을 긋고

지나간다


철로 받침목 틈새로

얼굴 내민 인동초는

홀로 푸르다.


보리밭 들녘에서 날개 치는 까마귀

오롯한 그리움을 겨드랑이에 끼고

결박당한 새봄을 쪼면


얼굴 창백한 인동초 잎새

철길을 달리는 쇠바퀴의 매질에도

인고의 향기로 사랑을 베푼다.


찬바람을 철길에 눕히며

서둘러 아스라이 가고 있는 계절이

동박새 울음에서 매화를 품는다.


홀로 푸른 인동초

세상을 향해 몇겁의 생을 거듭 했을까?


내 삶의 겨울역에 묶여있는 정체성

애틋한 사랑으로 새 봄을 맞이하면

차갑던 고뇌들이 계절 밖에서 머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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