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 하나에 매달려 평생동안 시를 써온 시인들에게 시란 무엇인가를 물어보면 몇몇 시인들은 시가 무엇인지, 어디에 있는지 모른다고 대답한다. 사실 그렇다. 인생이 만져지는 실체가 아니듯, 시는 손에 그 실체가 구체적으로 확연히 잡힐 수 있는 것이 아니다.
그러다 보니 시인 네루다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일은 시를 정의하는 일이라 했다.
그러나 나는 굳이 이를 정의 하라 하면 <상처가 시를 탄생시킨다> 이렇게 정의를 내리고 싶다
왜 이런 정의를 내리는가는 다음의 금이간 항아리라는 이야기를 소개하여 이 정의에 대한 답을 대신 하고자 힌다
- 금 간 항아리 -
어떤 사람이 양 어깨에 지게를 지고 물을 날랐다.
오른쪽과 왼쪽에 각각 하나씩의 항아리가 있었다.
그런데 왼쪽 항아리는 금이 간 항아리였다.
물을 가득채워서 출발했지만, 집에 오면 왼쪽 항아리의 물은 반쯤 비어 있었다. 금이 갔기 때문이다.
반면에 오른쪽 항아리는 가득찬 모습 그대로였다.
왼쪽 항아리는 주인에게 너무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래서 주인에게 요청했다. "주인님, 나 때문에 항상 일을 두 번씩 하는 것 같아서 죄송해요. 금이 간 나같은 항아리는 버리고 새 것으로 쓰세요."
그때 주인이 금이 간 항아리에게 말했다.
"나도 네가 금이 간 항아리라는 것을 알고 있단다. 네가 금이 간 것을 알면서도 일부러 바꾸지 않는단다. 우리가 지나온 길 양쪽을 바라보아라. 물 한방울 흘리지않는 오른쪽 길에는 아무 생명도 자라지 못하는 황무지 이지만, 왼쪽에는 아름다운 꽃과 풀이 무성하게 자리지 않니? 너는 금이 갔지만, 너로 인해서 많은 생명이 자라나는 모습이 아름답지 않니? 나는 그 생명을 보며 즐긴단다."
많은 사람들이 완벽함을 추구한다.
자신의 금이 간 모습을 수치스럽게 여긴다.
어떤 때는 자신을 가치없는 존재로 여겨 낙심에 빠질 때도 있다. 그러나 오히려 세상이 삭막하게 되는 것은
금이 간 인생 때문이 아니라 너무 완벽한사람들 때문이다 .
시도 이와 마찬기지다
금이간 항아리가 풀을 자라게 하듯이 아픔을 겪어본 사람만이 그 아픔을 알고 독자의 아픔을 힐링해 주는 시를 탄생시킨다
이렇게 탄생시킨 시는 한 편의 시에 드리워진 그림자의 깊은 뜻까지도 마음에 새기면서 무언가 인간세계에 따뜻이 손 잡아주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오늘도 시인은 시를 써서 독자의 가슴에 별자리 하나를 올려놓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