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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 근대 태권도의 형성과 정립

7 근대 태권도의 형성과 정립

세계태권도대학교/대학원

     이사장  이현우 교수


태권도는 대한민국의 국기(國技)이자 전 세계에서 가장 널리 알려진 무술 중 하나로, 그 역사와 철학은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합니다. 태권도의 기원은 고대 한국의 전통 무술에서 시작되었지만, 오늘날의 형태로 정립되기까지는 수많은 역사적 사건과 사회적 변화가 있었습니다. 특히 일제강점기와 해방 이후의 혼란기, 그리고 국제화 과정을 거치면서 태권도는 끊임없는 발전과 변화를 경험했습니다. 본 논문에서는 근대 태권도의 형성과 정립 과정을 심도 있게 분석하고, 그 역사적 배경과 사회적 의미를 조명하고자 합니다. 이를 통해 태권도가 어떻게 한국의 문화적 아이덴티티를 형성하고 세계적인 무술로 성장하게 되었는지에 대한 이해를 높이고자 합니다.


본론


1. 역사적 배경


태권도의 뿌리는 고대 한국의 전통 무술인 수박(手搏)과 택견에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수박은 삼국시대부터 고려시대에 이르기까지 군사 훈련과 개인 수련을 통해 발전한 무술로, 주로 손기술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1. 반면 택견은 조선시대에 민간에서 전승된 무술로서, 발차기와 유연한 몸놀림이 특징입니다2.


삼국시대에는 각 국가가 군사력을 강화하기 위해 무술 수련을 장려하였으며, 특히 신라의 화랑도는 무예뿐만 아니라 정신 수양과 예술 활동까지 포함한 종합적인 교육 체계였습니다3. 화랑도는 국가의 엘리트 계층을 양성하는 데 큰 역할을 했으며, 이들이 수련한 무예는 이후 한국 무술의 기반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조선시대에 들어서면서 유교 이념의 강화로 무(武)보다 문(文)을 중시하는 경향이 강해졌습니다4. 이에 따라 무술은 군사 훈련에서 필수적인 요소로 남았지만, 일반 사회에서는 점차 그 중요성이 감소하였습니다. 또한 외세의 침략과 내적인 사회 변동으로 인해 무술은 더 이상 사회의 중심적인 위치를 차지하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2. 일제강점기와 무술의 변화


1910년부터 1945년까지의 일제강점기는 한국의 전통 문화와 무술에 큰 영향을 미쳤습니다. 일본은 한국의 문화와 정체성을 말살하기 위한 정책의 일환으로 한국의 전통 무술을 금지하거나 억압하였습니다5. 대신 일본의 무술인 가라테(空手)와 유도(柔道)를 학교와 군대에서 강제로 도입하여 교육하였습니다6.


이러한 상황에서 한국의 무술인들은 전통 무술의 맥을 이어가기 위해 비밀리에 수련을 계속하였습니다. 일부는 일본 무술을 수련하면서도 한국의 전통 기술과 철학을 접목하려는 노력을 기울였습니다7. 예를 들어, 최홍희 장군은 일본에서 가라테를 수련하면서도 한국 무술의 요소를 연구하였고, 이는 이후 태권도의 발전에 큰 영향을 미치게 됩니다8.


3. 해방 후 무술 부흥과 관(館)의 설립


1945년 해방 이후 한국은 정치적, 사회적 혼란 속에서도 전통 문화의 부흥을 위한 움직임이 활발해졌습니다. 이 시기에 여러 무술 도장이 설립되었는데, 이를 흔히 "오대관(五大館)"이라고 부릅니다. 청도관(靑濤館), 무덕관(武德館), 송무관(松武館), 지도관(指導館), 창무관(彰武館)이 그 대표적인 예입니다9.


각 관은 자신들만의 독특한 무술 철학과 기술 체계를 갖추고 있었으며, 지도자들은 모두 한국 무술의 부흥과 발전에 열정을 가진 인물들이었습니다. 예를 들어, 이원국이 설립한 청도관은 가라테의 영향을 받았지만 한국의 전통 무술을 융합하려는 시도를 하였고10, 무덕관의 황기 또한 택견과 수박의 요소를 도입하여 독자적인 무술 체계를 구축하였습니다11.


이러한 관들은 전국적으로 무술 수련생을 모집하고 교육하였으며, 이는 태권도의 저변 확대와 대중화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그러나 각 관이 서로 다른 체계와 명칭을 사용함에 따라 무술계의 분열과 경쟁이 심화되기도 하였습니다.


4. 태권도의 명명과 통합 노력


1950년대에 들어서면서 무술계는 통합의 필요성을 절감하게 되었습니다. 특히 국제적인 인지도 향상과 정부의 지원을 받기 위해서는 통일된 명칭과 체계가 필요하였습니다12. 이에 따라 1955년, 최홍희 장군을 비롯한 무술인들은 회의를 개최하여 새로운 국기 명칭으로 "태권도(跆拳道)"를 제안하였습니다13.


"태(跆)"는 발차기를, "권(拳)"은 주먹 지르기를, "도(道)"는 무도의 철학을 의미합니다. 이 명칭은 한국 무술의 특징을 잘 나타내며, 각 관의 지도자들에게도 받아들여졌습니다. 이후 1959년에 대한태권도협회(Korea Taekwondo Association, KTA)가 설립되어 태권도의 통합과 표준화를 추진하게 되었습니다14.


대한태권도협회는 기술 체계의 표준화, 단(段) 제도의 도입, 그리고 심사 규정의 통일 등을 통해 태권도의 체계적인 발전을 이끌었습니다. 또한 국내 대회 개최와 국제 교류를 통해 태권도의 위상을 높이는 데 기여하였습니다.


5. 국제화와 세계태권도연맹의 창설


태권도의 국제화 노력은 1960년대부터 본격화되었습니다. 국기원은 1972년에 설립되어 태권도의 기술과 단(段) 체계를 국제적으로 표준화하였으며, 국내외에서 태권도 지도자와 수련생을 양성하는 역할을 맡았습니다15.


1973년에는 세계태권도연맹(World Taekwondo Federation, WTF)이 창설되어 태권도의 국제적인 조직 기반이 마련되었습니다16. 첫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가 서울에서 개최되었으며, 이 대회에는 19개국이 참가하여 태권도의 글로벌 스포츠로서의 가능성을 보여주었습니다17.


세계태권도연맹은 이후 태권도의 규칙과 경기 방식을 국제 기준에 맞게 조정하고, 전 세계에 태권도를 보급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또한 각국의 태권도 연맹과 협력하여 국제 대회 개최, 심판 교육, 지도자 양성 등을 추진하였습니다.


6.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과 글로벌 영향력


태권도는 1988년 서울 올림픽에서 시범 종목으로 첫 선을 보였으며, 이는 태권도의 글로벌 인지도를 높이는 계기가 되었습니다18. 시범 경기의 성공적인 개최는 태권도가 올림픽 정신에 부합하는 스포츠임을 세계에 알리는 중요한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후 지속적인 노력 끝에 2000년 시드니 올림픽에서 태권도는 정식 종목으로 채택되었습니다19. 이는 태권도가 세계적인 스포츠로 완전히 자리매김하는 중요한 이정표가 되었습니다.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은 태권도의 기술과 규칙이 국제적으로 인정받았음을 의미하며, 이는 전 세계인의 참여와 관심을 더욱 증대시키는 결과를 가져왔습니다.


현재 태권도는 200여 개국에서 수련되고 있으며, 매년 다양한 국제 대회와 교류 프로그램이 개최되고 있습니다. 또한 태권도의 정신인 예의, 인내, 극기, 백절불굴의 정신은 무술을 넘어 교육과 문화 교류의 매개체로 활용되고 있습니다20.


결론


근대 태권도의 형성과 정립은 역사적 역경 속에서도 한국인들의 열정과 노력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고대의 전통 무술에서 시작하여 일제강점기의 어려움을 딛고, 해방 후의 부흥과 통합 과정을 거쳐 오늘날의 글로벌 스포츠로 성장하기까지 태권도는 끊임없는 변화와 발전을 거듭해 왔습니다. 태권도는 한국의 문화적 정체성을 대표하며, 전 세계인이 사랑하는 스포츠이자 무술로 자리매김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태권도는 그 철학과 정신을 바탕으로 인류의 화합과 평화에 기여하는 무술로서 지속적인 발전을 이룰 것으로 기대됩니다. 또한 태권도의 교육적 가치와 문화적 의미를 더욱 확산하여 글로벌 시대에 걸맞은 문화 교류의 중심이 되기를 희망합니다.


참고문헌



• 이중환. (2010). 한국 전통 무술의 역사와 철학. 서울: 동방출판사. ↩


• 김성환. (2015). "택견의 역사적 전개와 문화적 의미". 한국체육학회지, 54(3), 45-60. ↩


• 박용수. (2008). "신라 화랑도의 교육과 무예 수련". 한국교육사연구, 19(2), 89-110. ↩


• 정재원. (2012). 조선시대 무술과 사회. 부산: 해운대출판사. ↩


• 최영준. (2009). "일제강점기 한국 무술의 변화와 저항". 역사와 문화, 31, 77-95. ↩


• 김동현. (2011). "일제강점기 체육 정책과 무술 교육". 체육사학회지, 18(1), 101-120. ↩


• 이선호. (2014). "한국 무술의 전승과 근대화 과정". 무도연구, 23(4), 55-73. ↩


• 최홍희. (1965). 태권도 교본. 서울: 대한태권도협회. ↩


• 박진수. (2016). "해방 이후 태권도 관의 형성과 발전". 한국스포츠사학회지, 25(2), 33-52. ↩


• 이원국. (1958). 청도관 무술 수련법. 서울: 청도관출판부. ↩


• 황기. (1963). 무덕관 태권도 교본. 서울: 무덕관출판사. ↩


• 김영호. (2000). "태권도 명칭의 유래와 통합 과정". 태권도학회지, 40(1), 15-28. ↩


• 대한태권도협회. (1955). "태권도 명칭 제정 회의록". 서울: 대한태권도협회 자료실. ↩


• 대한태권도협회. (1959). 대한태권도협회 창립 총회 자료집. 서울: 대한태권도협회. ↩


• 국기원. (1972). 국기원 설립 취지서. 서울: 국기원. ↩


• 세계태권도연맹. (1973). 세계태권도연맹 창설 선언문. 서울: 세계태권도연맹. ↩


• 세계태권도연맹. (1973). 제1회 세계태권도선수권대회 보고서. 서울: 세계태권도연맹. ↩


•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1988). 1988 서울 올림픽 공식 보고서. 서울: 서울올림픽조직위원회. ↩


• 국제올림픽위원회. (2000). "태권도 올림픽 정식 종목 채택 결정문". 로잔: IOC. ↩


• World Taekwondo. (2020). Taekwondo for Peace and Development. Seoul: World Taekwondo.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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