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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 학습의 눈과 귀가 된 스마트 안경

AI 학습의 눈과 귀가 된 스마트 안경, 어디까지 허용해야 하나?

글로벌연합대학 버지니아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이현우 교수


1. 기술 진보인가, 감시의 시작인가?


2025년 5월, 메타(Meta)는 자사의 래이밴 스마트 안경(Ray-Ban Smart Glasses)에 대한 개인정보 보호정책을 전격 수정하며 기술 산업과 프라이버시 논쟁에 다시 불을 지폈다. 이번 조치는 단순한 제품 개선 공지를 넘어, 우리의 일상과 사생활을 인공지능의 학습 도구로 삼으려는 의도라는 분석이 설득력을 얻고 있다. 스마트 안경은 더 이상 단순한 웨어러블 디바이스가 아니다. 그것은 AI 학습에 필요한 데이터 수집 장치이며, 동시에 사용자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지하는 감시 기기가 될 가능성도 내포하고 있다.


2. 메타의 공지와 사용자 데이터의 새로운 용도


메타는 4월 29일(현지시간), 사용자들에게 스마트 안경의 AI 기능이 기본 활성화된다는 내용을 이메일로 고지했다. 구체적으로, 안경을 통해 촬영된 사진과 영상, 음성 대화 등은 AI 분석 대상이 되며, 제품 품질 향상을 위해 저장된다는 것이다. 특히 '헤이 메타(Hey Meta)'라는 호출어를 통해 활성화되는 음성 녹음 기능은 자동으로 최대 1년간 저장되며, 사용자가 이를 거부할 수 있는 명시적 옵션(opt-out)은 없다. 삭제를 원한다면 사용자가 직접 수동으로 음성 파일을 삭제해야 한다.


공식적으로 메타는 사진 및 영상이 AI 학습에 "직접" 사용되지는 않는다고 밝히고 있다. 대신 이러한 미디어의 메타데이터(촬영 위치, 시간, 사용 기기 등)가 AI 학습에 사용될 수 있다는 점에서, 사용자들은 보다 세심한 경계심을 가질 필요가 있다. 더욱이 이러한 데이터는 메타 AI, 클라우드 서비스, 타사 제품과 공유될 경우 각각의 정책에 따라 활용될 수 있어 복잡한 데이터 경로가 형성된다.


3. 개인정보 보호의 경계선은 어디인가?


기술의 발전은 반드시 프라이버시와의 갈등을 수반한다. 음성 기반 AI 서비스는 이제 흔한 기능이 되었고, 스마트폰, 스피커, 가전기기 등에서 일상적으로 사용되고 있다. 하지만 웨어러블 기기가 직접 사용자 주변의 영상을 기록하고, 대화를 저장하며, 그 데이터를 기업의 서버에 전송한다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민감한 이슈다. 특히 이러한 정보가 AI 학습이라는 용도 하에 오랜 시간 저장될 수 있다는 점은 사용자에게 상당한 거부감을 줄 수 있다.


더욱 우려되는 점은, 이러한 데이터 수집과 활용이 실제로 얼마나 효과적으로 통제되고 있는지 사용자 스스로가 확인할 방법이 거의 없다는 것이다. AI가 학습에 활용하는 데이터의 범위, 사용 목적, 삭제 여부 등은 기업의 정책에 의존하며, 일반 사용자가 이에 대해 실질적으로 개입할 수 있는 여지는 매우 제한적이다. 단순한 '동의' 절차로는 복잡한 기술적 흐름을 이해하고, 동의의 의미를 충분히 숙지하기 어렵다.


4. AI 시대, 사용자의 권리는 누가 보장하는가?


현재 메타뿐만 아니라 아마존, 오픈AI 등 글로벌 기술 기업들은 AI 기능을 다양한 플랫폼에 탑재하며 경쟁적으로 서비스를 확장하고 있다. 소셜 미디어, 스마트 스피커, 스마트폰을 넘어 스마트 안경까지 확대되는 이 AI 생태계는 사용자 데이터를 통해 점점 더 정교한 알고리즘을 훈련시키고 있다. 이는 기술의 진보이자, 동시에 프라이버시 위협의 확대이기도 하다.


프라이버시 보호를 위해서는 사용자의 동의를 받는 형식적인 절차를 넘어, 보다 투명하고 강제력 있는 통제 장치가 필요하다. 사용자에게는 AI 학습에 대한 실질적인 옵트아웃 권리, 데이터 삭제 요청 기능, 수집 내역에 대한 상세한 리포팅이 제공되어야 한다. 유럽연합의 GDPR(일반개인정보보호법)과 같은 강력한 개인정보 보호 체계가 글로벌 스탠다드로 확산되어야 한다.


5.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기술 수용성'이 아닌 '기술 감시력'


스마트 안경은 앞으로 우리 생활에 깊숙이 들어올 가능성이 크다. 그 활용 가능성은 무궁무진하다. 하지만 그 편리함 이면에 존재하는 데이터 수집과 AI 학습의 그림자를 우리는 잊지 말아야 한다. 기술에 무조건 순응하는 태도가 아닌, 기술을 감시하고 평가하는 시민의식이 절실한 때이다.


메타의 스마트 안경 정책은 단순한 기능 업데이트가 아니라, AI 사회에서 사용자 권리의 범위와 경계를 시험하는 분기점이다. 우리는 지금, 기술이 아닌 인간 중심의 규범과 법률이 더 필요해진 시대에 살고 있다. AI는 우리가 만든 도구이지만, 그 도구를 어떻게 통제하고 공정하게 사용할 것인가에 대한 사회적 논의가 부족하다면, 우리는 결국 도구에 의해 통제받는 존재가 될 수도 있다.


이제는 단순한 기술 수용을 넘어, '기술 감시력'이라는 새로운 시민 역량을 갖춰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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