머신 네이티브의 시대, AI를 위한 인터넷이 온다
글로벌연합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버지니아대학교 이현우 교수
“우리는 이제, 인간이 아닌 기계를 위한 웹을 디자인해야 할 시점에 도달했다.”
1. 인터넷, 사람에서 기계로 중심축 이동 중
30년 전 웹이 등장했을 때, 인터넷은 철저히 사람을 위한 공간이었다. 클릭하고, 검색하고, 스크롤하는 사용자 행동은 인간의 감각과 습관에 맞추어 설계된 인터페이스에서 비롯됐다. 디자이너들은 ‘예쁜 버튼’ 하나를 놓기 위해 수십 개의 시안을 고민했고, 웹 개발자들은 마우스 클릭을 기준으로 사용자 경험을 조율해왔다.
그러나 이제 새로운 사용자가 등장했다. AI 에이전트, 즉 인간 대신 웹을 탐색하고 구매를 결정하며 정보를 요약하는 자동화된 지능이다. 에델만의 최고 운영책임자 저스틴 웨스콧(Justin Westcott)은 “인터넷은 사람을 위한 놀이터에서 이제 기계의 놀이터로 바뀌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자동차의 역사를 비유로 들었다. “초기의 자동차가 느렸던 건 엔진이 약했기 때문이 아니라, 도로가 마차를 위한 자갈길이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진정한 변화는 도로를 갈아엎는 것에서 시작됐고, 이처럼 지금의 웹 환경도 AI가 제대로 달릴 수 있게 재설계돼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AI 에이전트들은 사람이 사용하던 브라우저를 흉내 내며 마우스를 움직이고, 타이핑하는 ‘에뮬레이션’ 방식으로 웹을 사용하고 있다. 이는 AI에게 자갈밭 위의 페라리나 다름없다. 기술은 충분히 발전했지만, 그것을 달릴 도로가 너무 낡았다는 것이다.
2. 머신 네이티브 디자인: 사람 없는 웹의 시작
그래서 제시된 개념이 바로 **머신 네이티브 디자인(Machine-Native Design)**이다. 이 개념은 더 이상 사람을 위한 시각적 화면(UI) 이 아니라, 기계가 바로 데이터를 읽고 조작할 수 있는 구조화된 인터페이스를 중심으로 웹을 만들자는 것이다.
기존의 웹은 눈에 보이는 요소—버튼, 메뉴, 이미지, 글자—로 가득했다. 그러나 AI는 그것을 ‘보는’ 대신 API나 명령어로 데이터를 요청하고, 응답받아 판단을 내린다. 즉, 웹은 **‘클릭할 버튼’이 아니라 ‘소통할 구조’**가 되어야 한다. 이 변화가 의미하는 것은 단순하다. 사용자 경험은 이제 디자인이나 시각적 심미성보다, 속도, 정확성, 신뢰성이 중심이 된다는 것이다.
웨스콧은 이렇게 정리했다. “앞으로의 인터넷은 클릭하지 않고, 대신 이렇게 질문한다: ‘이게 나에게 최선의 선택인가요?’” 단 하나의 질문으로 수백 개 옵션을 AI가 걸러내고, 사용자의 예산과 선호도를 고려해 최적의 결정을 내리는 비시각적 소비가 본격화된다는 것이다.
3. SEO의 종말, GEO와 MEO의 도래
이러한 구조적 변화는 검색 엔진의 패러다임에도 큰 충격을 주고 있다. 지금까지 웹은 **SEO(Search Engine Optimization)**를 기준으로 구성돼왔다. 즉, 사람들이 구글에 검색했을 때 어떤 키워드로 내 사이트가 상위에 노출될지에 초점이 맞춰졌던 것이다.
그러나 AI는 검색하지 않는다. 대신 API를 호출하고, 응답을 해석하며, 문맥을 이해하고 요약한다. 이때 중요한 것은 ‘키워드’가 아니라 ‘데이터 구조’와 ‘신뢰성’이다. 그래서 웨스콧은 **GEO(Generative Engine Optimization)**를 넘어, 궁극적으로는 **MEO(Machine Experience Optimization)**의 시대가 열린다고 말한다.
MEO는 기계가 접근하고 이해하기 쉬운 웹을 구축하는 모든 전략을 뜻한다. 구조화된 JSON-LD, 빠른 응답 속도, 명확한 권한 정보, 보안 인증 등이 핵심이며, 사람보다 AI가 우선 고려하는 지표가 된다. 이른바 ‘기계의 눈에 잘 띄는 웹’이 새로운 경쟁력이다.
4. 실제로 벌어지는 변화들: 기업들의 움직임
이러한 흐름은 이미 여러 기업들에 의해 실행되고 있다. **마이크로소프트(MS)**는 최근 ‘오픈 에이전틱 웹(Open Agentic Web)’ 전략을 통해, AI 에이전트가 모든 웹 환경에 녹아들도록 구상 중이다. HTML처럼 AI 상호작용의 표준이 될 수 있는 ‘NLWeb’ 프로젝트도 공개했다.
데이터브릭스와 스노우플레이크는 포스트그레스(PostgreSQL) 기반의 전문 기업을 인수하며, AI 에이전트 시대에 최적화된 데이터 저장 및 교환 구조를 정비하고 있다. 이들은 빠른 호출, API 기반 데이터 접근, 실시간 동기화 등 머신 프렌들리한 데이터 환경을 기업 고객에게 제공하고자 한다.
이러한 전략은 단지 기술기업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유통, 금융, 관광 등 모든 산업군에서 웹을 AI 중심으로 재정비하는 움직임이 일고 있다. 소비자 행동을 대신할 AI를 염두에 둔 시스템 구축이 핵심이다.
5.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하는가
앞으로의 웹은 두 갈래가 될 것이다. 하나는 여전히 인간이 클릭하고 읽는 느리고 시각적인 웹. 다른 하나는 오직 기계가 접근하는 빠르고 투명한 구조의 웹이다. 이 두 웹은 평행 우주처럼 존재하며, 대부분의 경제적 의사결정은 기계의 손을 거치게 될 것이다.
우리는 그 변화에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일반 사용자는 자신의 데이터를 다루는 AI 에이전트의 투명성을 요구해야 한다. 내 선택을 대신하는 AI가 어떤 근거로 결정했는지를 이해하는 것이 디지털 시민권의 핵심이 된다.
기업은 SEO 시대를 넘어, MEO 전략을 고민해야 한다. 단지 “사람이 좋아하는 웹사이트”가 아니라 “기계가 신뢰하는 구조”를 우선시해야 한다.
정부는 AI 에이전트가 사회 시스템을 오남용하지 않도록 신뢰성 검증 기준, 윤리 가이드라인, 정보 접근 표준을 마련해야 한다.
결론
기계를 위한 웹, 사람을 위한 기준
“다음 디지털 혁명은 기계에 의해, 기계를 위해, 기계를 중심으로 일어날 것이다.” 웨스콧 COO의 이 말은 단지 멋진 수사만이 아니다. AI는 검색하지 않고, 스크롤하지 않으며, 클릭하지 않는다. 대신 질문하고, 판단하고, 실행한다. 이제는 웹도 그 리듬에 맞추어 재구성되어야 한다.
인터넷은 결코 사라지지 않는다. 다만, 우리가 알고 있던 방식으로 존재하지 않을 뿐이다. 웹은 더 이상 사람의 눈을 기다리지 않는다. 웹은 이제, 기계의 손을 먼저 맞이할 준비를 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