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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의 ‘세계 AI 협력 기구’ 제안과 목적

#AI 산업혁명

AI 국제 질서 재편의 신호탄

중국의 ‘세계 AI 협력 기구’ 제안과 목적



글로벌연합대학 버지니아대학교

인공지능융합연구소장 이현우 교수


1. 중국의 선언: ‘AI는 모두의 것’이라는 정치적 메시지


2025년 7월 26일, 중국 상하이에서 열린 세계인공지능대회(WAIC)에서 리창 중국 총리는 AI의 독점적 구조에 경고를 보내며, “AI 핵심 자원과 역량이 소수 국가와 기업에 집중돼 있다”는 강도 높은 비판을 던졌다. 미국이 주도하고 있는 AI 개발 흐름에 대한 대응 전략으로, 중국은 ‘세계 AI 협력 기구’ 설립을 제안하며 글로벌 AI 거버넌스의 재편을 촉구하고 나섰다. 이 선언은 단순한 외교적 수사로 그치지 않는다. 이는 오랜 기간 진행돼 온 기술 패권 경쟁에서 ‘AI’를 매개로 한 새로운 국제 질서 구축 의지를 표명한 것이다.

중국은 이번 WAIC에서 미국 정부가 7월 23일 발표한 ‘AI 행동 계획’에 즉각 대응한 셈이다. 해당 계획은 미국의 AI 기술과 하드웨어를 동맹국 중심으로 적극 수출하겠다는 전략을 담고 있으며, 이는 기술을 둘러싼 신냉전 구도를 심화시킬 가능성이 크다. 중국의 반응은 이러한 일방적 흐름을 견제하고, 기술의 공동 소유와 공유라는 새로운 패러다임을 내세우는 전략으로 풀이된다.


2. 디지털 실크로드에서 AI 실크로드로: 전략적 확장


리창 총리의 발언은 일회성 의제 제시가 아니다. 이미 중국은 2017년부터 ‘일대일로(一帶一路)’ 정책의 일환으로 ‘디지털 실크로드’를 추진해왔다. 이는 글로벌 인터넷 인프라 및 통신망 구축을 중심으로, 남반구 국가들과의 기술 협력을 확대하는 전략이다. 이번에는 그 중심축을 ‘AI’로 옮겼다. 오픈 소스 기반의 AI 개발 플랫폼을 통해 기술 격차를 해소하고, 남미·아프리카·동남아시아 등 기술 비의존국들과의 연대를 강화하려는 포석이다.

이러한 맥락에서 ‘세계 AI 협력 기구’는 단순한 형식적 기구가 아닌, 중국 주도의 신흥 기술 블록 형성을 상징한다. 남반구 국가들을 중심으로 기술 자립과 AI 주권을 키워주겠다는 중국의 제안은, 미국 중심의 기술 수직 분업 체계에 대한 대안적 길로 작용할 수 있다.


3. 미국 vs. 중국: AI 거버넌스 패권 전쟁


중국의 행보는 명확한 정치적 대결 구도를 내포하고 있다. 미국은 동맹 중심의 기술 공유를 통해 ‘AI 네트워크’를 구축하려는 반면, 중국은 ‘비동맹적’ 기술 협력을 통해 다극화된 AI 질서를 만들고자 한다. 트럼프 행정부의 AI 전략이 기술 확산을 통한 지정학적 영향력 확대라면, 중국은 기술 공유를 통한 ‘기술 평등’과 ‘다자주의적 AI 거버넌스’라는 외피를 씌우고 있지만, 실상은 자국의 기술 우위를 새로운 국제 표준으로 전환하려는 시도다.

특히 WAIC에서 연설한 제프리 힌튼 교수와 에릭 슈미트 전 구글 CEO의 발언은 주목할 만하다. 힌튼은 “AI가 인류를 소멸시키지 않도록 국제 공동체가 필요하다”고 했고, 슈미트는 “미국과 중국은 협력해야 한다”고 밝혔다. 두 사람 모두 AI 기술의 단극 독점에 대한 우려와 함께, 초국가적 협력의 필요성을 강조했다. 이는 AI가 더 이상 단일 국가의 윤리나 전략만으로는 규율될 수 없는 시대가 도래했음을 보여준다.


4. 기술은 누구의 것인가: 오픈 소스와 공공성의 전장


중국은 이번 발표에서 자국의 오픈 소스 AI 생태계를 강조했다. 이는 단순히 기술적 개방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AI의 공공성을 기반으로 국제적 영향력을 넓히겠다는 전략이다. 실제로 이번 WAIC에는 알리바바, 바이두, 화웨이 등 중국 빅테크뿐 아니라, 유니트리와 지푸 AI 같은 스타트업, 심지어 구글·아마존·테슬라 등 800개 이상의 글로벌 기업이 참가해 3000개에 달하는 AI 제품을 선보였다. 특히 40여 종의 LLM과 60여 종의 휴머노이드 로봇은 중국의 기술 진보를 과시하는 장이었다.

중국이 제시한 '오픈 소스 AI'는 기술 공유를 넘어, 새로운 기술 표준 설정이라는 의도를 내포한다. 표준을 누가 만들고, 누가 그것을 따르느냐에 따라 AI 생태계의 주도권이 정해지기 때문이다. AI 알고리즘은 단순한 도구가 아닌, 사회 구조, 정치, 윤리까지 포괄하는 총체적 프레임이 되기 때문에, 그 코드 자체가 하나의 정치 행위가 된다.


5. 새로운 기술 냉전인가, 협력의 출발점인가


이번 WAIC에서 드러난 양상은 AI를 중심으로 한 ‘기술 냉전’이 시작되었음을 암시한다. 미국과 중국의 AI 전략은 단순한 경쟁을 넘어, 국제 질서를 설계하는 관점에서 충돌하고 있다. ‘누가 기술을 소유하느냐’에서 ‘누가 기술을 어떻게 나누느냐’로 전환된 이 싸움은, 결국 인류 전체의 미래를 결정짓는 기로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동시에 이는 협력의 새로운 출발점이 될 수도 있다. 기술 독점과 폐쇄적 거버넌스는 AI의 잠재력을 제한할 뿐 아니라, 인류 공동의 위협으로도 작용할 수 있다. AI가 가져올 불평등, 감시 자본주의, 노동 소외 등의 문제는 초국가적 해결을 요하며, 이를 위해선 새로운 규범과 제도, 그리고 국제 기구의 설립이 필수적이다.

중국의 ‘세계 AI 협력 기구’ 제안은 아직 실행으로 이어지지 않았지만, 그 정치적, 기술적 파장은 이미 시작되었다. 이제 AI는 기술만의 영역이 아닌, 윤리와 정책, 협력과 통제, 이상과 현실이 얽힌 세계정치의 최전선이 되었다.


결론

AI를 둘러싼 세계의 게임판이 다시 짜이고 있다. 누가 중심에 설 것인가보다, 어떤 방식으로 함께 설 것인가가 더 중요한 시대가 오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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