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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생 Dec 01. 2020

2. 생산성이라는 강박

세상에 쓸데없는 짓은 없다

나는 시간을 무의미하게 흘려보내는 것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내가 하루 24시간을 알차게 쓴다는 의미는 아니다. 쓸데없는 짓도 하고 인생에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행동도 많이 한다. 다만 그런 행동을 하면서도 이런 내 모습이 싫을 뿐이다. 이왕 놀 거 마음 편하게 놀면 좋을 걸, 굳이 ‘이런 행동은 생산적이지 않아!’하고 절규하며 스스로를 학대한다. 그러면서도 쓸데없는 짓을 그만두지 못한다. 그야말로 변태가 아닐 수 없다.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한다는 나의 강박은 바야흐로 ‘생산성’이라는 키워드가 유행하기 시작하면서부터 두각을 드러내기 시작했다. 물론 그 말이 등장하기 전에도 하루를 바쁘게 보내야 한다는 생각은 가지고 있었지만, 시간을 대하는 나의 태도가 ‘생산성’이라는 단어 하나로 요약된 것은 그 단어의 유행 이후였다. 나는 ‘생산성’이라는 단어야말로 시간 관리의 키워드라고 믿게 되었고, 모든 시간을 생산적으로 사용해야 한다는 강박을 가지게 되었다.


생산적인 하루를 보내기 위해서는 우선 바빠야 했다. 깨어 있는 동안은 내내 일하거나 공부하거나 자기계발을 하고 있어야 했고, 생산성과 전혀 관련 없는 딴짓이나 취미활동 따위는 최소화해야 했다. 일을 끝내고 나면 잠시 숨을 돌린 뒤 다른 일에 착수해야 한다는 생각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했다. 또는 쉬면서도 비생산적인 활동을 하고 있다는 생각으로 스스로를 괴롭혔다. 생산 강박증을 가진 학생은 생산 강박증에 찌든 사회인으로 자라났고 딴짓을 하는 자신을 잠시도 가만두지 않았다. 쉬는 게 쉬는 게 아니었고 노는 게 노는 게 아니었다. 쉬면서도 머릿속으로는 항상 다음에 할 일 생각을 하고 있었다. 완전히 꺼두는 대신 화면만 꺼 놓는 바람에 늘 뜨끈뜨끈한 노트북처럼, 내 머리도 항상 과열 상태를 유지했다. 


여느 때보다 더 큰 강박증을 가지고 더 많은 일에 시달린 금요일이었다. 그 날은 내 생일이었지만, 생일이라고 공짜돈을 주는 것은 아니니 어쨌든 일을 해야 했다. 그날따라 일이 많고 골치 아픈 것들도 많아서 하루 종일 일에 시달린 뒤 파김치가 되어 침대에 쭉 뻗어 버렸다. 머리가 잔뜩 과열된 나는 친구와 대화라도 하며 머리를 식히려고 메신저를 켰다. 


“시간을 생산적으로 보내야 하는데 자꾸 쓸데없는 짓만 해서 걱정이야.”


한숨이 섞인 내 말을 들은 친구가 이렇게 대답했다.


“쓸데없는 짓이 어딨어? 쉬고 나면 일하는 데 필요한 에너지를 얻게 되잖아. 그럼 그것도 결과적으로 생산적인 활동이 되는 것 아닐까? 다만 사람마다 방법이 다를 뿐이지. 게임이 잘 맞으면 게임을 하면 돼. 굳이 스트레스 받아가면서 독서하는 사람을 따라할 필요 없어.”


친구의 담담한 위로는 내게 잔잔하지만 큰 울림을 주었다. 그래, 그 동안 나는 일이나 공부만이 생산적인 활동이라고 생각하며 스스로를 몰아세워 왔다. 하지만 나무를 베기 전에 도끼를 갈아야 하듯이 일을 하기 위해서는 충분한 휴식과 재충전이 필요했다. 그 동안 나는 나무 베기에만 열중한 탓에 도끼 갈 시간마저 아까워하고 있었던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그런 생각을 한다고 해서 생산성이 낳은 괴물인 내 자신이 바로 여유로운 사람으로 바뀌는것은 아니었다. 고백하자면 이 글도 오늘의 일과를 마치고 난 뒤 생산성 있는 취미를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하지만 적어도 ‘쓸데없는 짓은 없다’고 말한 친구의 현답(賢答)을 되새기며 생산 강박증의 구렁텅이에서 빠져나오려는 노력은 해야겠다. 그리고 오늘 하루를 무사히 살아낸 나 자신을 칭찬해줘야겠다. 오늘도 존재하느라 수고했어. 내일도 잘 부탁한다.




이미지 출처: https://m.blog.naver.com/PostView.nhn?blogId=kohhh123&logNo=220182759285&proxyReferer=https:%2F%2Fwww.google.com%2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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