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패배자인가?
1.
새해가 되고 나는 29살이 되었다. 'late 20s blue'가 더 심해졌다. 'late 20s blue'는 20대 후반이 되면서 알 수 없는 우울감에 시달리는 증상으로, 28~29세에 정점을 이룬다(사실 내가 지어낸 말이다). 사실 인생 전체를 놓고 보면 지금은 초반부에 해당한다는 걸 알고는 있지만 그래도 불안함은 여전하다. 모든 것이 늦어버린 것만 같고 모든 기회가 내 곁을 떠나는 것만 같아 불안해서 견딜 수 없다. 게다가 이제는 취업도 힘들다. 29세의 경력이 전무하다시피 한 여자 신입사원을 뽑아줄 회사는 아주 드물 테니까. 작년에는 그래도 자발적 프리랜서라는 느낌이 강했는데 이제는 뽑아줄 회사가 없으니 프리랜서 말고 다른 길은 없다는 불안감이 나를 짓누른다. 나이를 먹을수록 나는 점점 초라해진다. 나이가 한 살 두 살 쌓일 때마다 내 어깨는 점점 무거워진다.
2.
가끔씩, 아니, 꽤나 자주 내가 통번역대학원에 들어갔던 것을 후회한다. 유망하지도 않은 통대를 선택한 것이, 한낱 통대입시에 내 소중한 20대를 몽땅 갈아넣었던 것이 때로는 미치도록 후회스럽다. 23살부터 25살까지 3년 동안 입시 준비를, 26살부터 27살까지 2년 동안 통대 재학을 했다. 졸업하고 나니 나는 어느덧 20대의 끝자락에 서 있었고 더 이상 어린 나이가 아니었다. 통대에 눈이 먼 경주마처럼 앞만 보고 달리다 졸업이라는 결승점에 골인하고 보니 앞에는 훨씬 더 험난한 광야가 펼쳐져있었고 나에게는 아무 것도 남지 않았다. 나는 가끔, 아니, 꽤나 자주 생각한다. 통대 진학을 포기하고 중국어 유학을 다녀온 뒤 바로 번역가의 길을 택했다면 지금쯤 꽤나 많은 돈이 모였겠지. 후회해봤자 이미 늦었지만 그 당시 나의 선택에 대해 자부심과 후회가 동시에 드는 이상한 감정을 나는 지금까지도 뼈저리게 맛보고 있다.
3.
번역가는 패배자의 직업이라는 말이 있다. 처음 그 말을 들은 순간 화가 났다. 그 다음은, 슬펐다. 부정할 수가 없어서 더 슬펐다. 나는 내가 패배자인 것만 같은 기분이 자꾸 든다. 그래서 번역가들의 자조섞인 농담임에 분명한 저 말 한마디에 그만 슬퍼지고 말았다. 결코 웃어넘길 수가 없었다. 내가 패배자인 것을 들켜버린 것만 같아서.
4.
재능을 발휘할 수 있는 기회를 썩히는 건 잘못일까? 아니면 내 재능을 내가 썩히는 것이니 개인의 자유일까? 나는 지금 내 재능을 썩히고 있나? 만약 그렇다면, 그것도 내 자유가 아닌가? 내가 지금보다 훨씬 더 돈도 많이 벌고 화려하고 명예로운 직업을 가졌더라면 나는 행복했을까? 패배자라는 기분에 힘들지 않았을까?
5.
뭔가를 놓치고 있는 듯한 기분이 든다. 그게 돈은 아니다. 지금은 아침에 일어나서 밤에 잠들 때까지 돈 벌 생각밖에 안 하니까. 그렇다면 마음의 양식일까? 그것도 아닌 것 같다. 마음의 양식의 대표격인 책을 읽어도 공허함이 달래지지 않으니 말이다. 그렇다면 취미일까? 잘 모르겠다. 글 쓰고 그림 그리는 것이 내 취미인데 지금 실컷 하고 있으니 말이다. 다만, 지금 내 모습이 예전의 내가 바랐던 모습과는 많이 다르다는 건 잘 알겠다.
6.
나는 내가 이렇게 초라한 어른이 될 줄은 몰랐다.
물론 어릴 때 그걸 알았다면 더 초라했겠지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