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구선생 Jul 05. 2021

3. 나의 아침

직장에 다니다 보니 아침 루틴이 생겨버렸다

6시 50분에 알람이 울린다. 일어나기 싫다. 천근만근 무거운 몸을 억지로 일으킨 뒤 기지개를 켜고 화장실로 향한다. 밤새 입 속에 세균이 모였기 때문에 아침에는 한 번쯤 입을 헹구어 주는 것이 좋다는 건강 상식이 생각나서 물로 입을 헹군다. 그 다음 옷을 훌렁훌렁 벗고 머리를 감는다. 머리를 감는 것은 일종의 의식 같다. 밤새 두피에 쌓인 노폐물과 머릿속에 쌓인 잡생각을 제거하는 엄숙하고도 개운한 의식. 오늘 해야 할 일의 무게는 잠시 잊고 시원하게 쏟아지는 물줄기를 맞으며 멍하니 있는다.


흠뻑 젖은 머리를 수건으로 대충 말린 뒤 속옷만 입은 채로 내 방으로 향한다. 다행히도 내 방은 화장실 바로 앞이어서 아무에게도 들키지 않고 방 안으로 들어갈 수 있다. 문을 닫자마자 비장하게 기지개를 켠 뒤 더욱 비장하게 체중계 위에 발을 디딘다. 음, 어제 좀 많이 먹긴 했지. 오랜만에 보는 숫자의 조합에 잠시 경각심이 들며 식단조절을 다짐한다. 하지만 주방에서 나는 맛있는 냄새에 나의 다짐은 금세 물거품이 되고 만다. 빨리 밥을 먹겠다는 일념으로 토너를 챱챱챱 바르고 선크림도 문질문질 발라 준다. 요즘 선크림을 매일 바르고 있다. 이것 또한 날씨가 맑든 흐리든 일정한 자외선이 존재하므로 선크림을 발라 줘야 한다는 건강 상식에 기초한 조치다.


아침을 먹기 전에는 집에서 키우는 새들에게 밥을 주고 물을 갈아준다. 새똥으로 가득한 물을 버린 뒤 깨끗한 정수기 물을 채워서 새장 속에 놓아둔다. 어제 새들이 먹고 남은 모이를 와르르 버린 뒤 바닥에 철퍼덕 앉아 곡물, 해바라기 씨, 달걀 노른자, 과일, 밀웜, 칼슘제 등을 모이통에 붓고 비빔밥처럼 섞어서 새들에게 급여한다. 얼마 전 알을 낳은 새들은 작은 인기척만 들려도 알통(알을 낳으라고 만든 나무통) 밖을 경계심 가득한 눈빛으로 내다보며 먹이를 주려고 새장 안에 손만 넣어도 냅다 달려든다. 밥 주는 주인도 몰라보나 싶어 조금 섭섭하긴 하지만 자식을 지키는 부모로서는 훌륭하므로 내가 참기로 한다.


뉴스를 보며 엄마와 아침을 먹는다. 간밤에 일어난 사건 사고와 성폭력, 비리, 극도의 가난 등으로 버무려진 뉴스는 볼 때마다 거북하기는 하지만 아침 하면 왠지 뉴스라는 이상한 공식 때문에 쉽사리 채널을 돌리지 못하게 만든다. 엄마와 함께 뉴스를 품평하며, 또는 사는 이야기를 나누며 아침을 먹고 나면 어느새 출근할 시간이 가까워 온다. 출근도 중요하지만 그 전에 여동생을 깨워야 한다. 나와 엄마는 동생의 방으로 가서 블라인드를 걷고 창문을 열며 어두운 방에 아침을 불어넣는다. 아무리 일어나라고 해도 동생은 미동도 없다. 이럴 때 동생이 좋아하는 아침 메뉴나 (주말에 한해서) 놀러갈 일정을 귓가에 속삭여 주면 미동도 없던 동생이 슬로우 모션으로 부스스 일어나는 작은 기적을 목격할 수 있다.  


동생을 깨운 뒤 치실과 치간칫솔을 곁들여 꼼꼼히 양치질을 하고 아까 대충 말렸던 머리를 드라이기로 다시 말린다. 아침에 복용해야 하는 정신과 약을 물과 함께 꿀꺽 삼킨 뒤 휴대폰으로 뉴스레터를 체크하다 보면 텔레비전에서 ‘아아아~~~아~~~’ 하는 인간극장 주제곡이 흘러나온다. 나와 동생은 그 노래가 흘러나올 때마다 과장되게 따라하는 습관이 있다. 오늘도 성악가처럼 아아아~~아~~를 한 뒤 시간을 체크한다. 7시 58분. 출격할 시간이다.


내 방으로 들어가 5초만에 옷을 고르고 3분만에 옷을 갈아입은 뒤 향수를 칙칙 뿌린다. 가방 속을 뒤지며 뭐 빠뜨린 것이 없나 확인한 뒤 오늘을 책임져줄 새 마스크를 쓰고 현관문을 나선다. 오늘도 무사히, 하지만 즐겁게 보내자! 머릿속으로 작지만 꾸준한 다짐을 한다.   


※이 글은 오랜만에 아침 6시에 일어나서 쓴 글입니다.

커버의 이미지는 제 방에서 찍은 아침 풍경입니다.




매거진의 이전글 2. 내가 매일 들여다보는 5가지 앱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