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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구선생 Jul 12. 2021

4. 확진자의 접촉자와 접촉했다(上)

코로나 선별진료소 탐방기

평화로운 일요일 오전이었다. 나는 엄마와 여동생과 함께 팔당 나들이를 다녀오는 길이었고, 브런치로 맛있는 빵과 라떼를 먹어서 기분이 좋은 상태였다. 카페인 섭취로 잔뜩 업 된 나는 평소처럼 조수석에 앉아서 엄마와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그 순간, 휴대폰에 새 메시지가 왔고 나는 얼어붙었다. 


우리 매장 점장님 확진이래. 그래서 나도 검사 받아 보려고…


온몸의 피가 순식간에 빠져나가는 기분이었다. 등골이 오싹하다는 표현이 이렇게 정확히 들어맞을 수가. 갑자기 주변의 풍경이 잿빛으로 보이고(사실 날이 흐려서 잿빛이긴 했다) 엄마의 말이 들리지 않았다. 엄마의 말에 건성으로 대꾸하며 이 사태를 어떻게 전달해야 할지를 고민했다. 뭐라고 말해야 하지? 엄마가 그러게 작작 돌아다니지 그랬냐며 화내진 않을까? 가족들에게는 미안해서 어떡하지? 수만 가지 고민을 거듭한 끝에 결국 어렵사리 입을 열었다.


엄마, 나 코로나 검사 받아봐야 할 것 같아.

뭐? 왜?

금요일에 접촉했던 분이 확진자랑 접촉했대…


우리는 잠시 말이 없었다. 나는 죄책감과 공포심에 떨리는 손을 겨우 추스리며 검색창에 ‘코로나 선별검사소’, ‘코로나 확진’, ‘코로나 치료비용’ 등을 마구 검색해 보았다. 


내가 만약 확진되면 어떻게 되는 거지? 내 가족은? 금요일에 접촉한 뒤에 일요일까지 같이 한 집에서 밥 먹고 커피 마시고 웃으며 보냈으니까 내가 확진이면 가족들도 무조건 확진이겠지. 나야 젊어서 괜찮지만 우리 엄마랑 아빠는? 아직 어린 내 동생은? 내 직장은 이제 어떻게 되는 거지? 이제 겨우 수습 기간 끝나가는데 확진되면 잘리려나? 겨우 얻은 일자리인데 앞으로 이만큼 마음에 드는 직장 찾을 수 있으려나? 완치되려면 적어도 한 달은 걸려야 할 텐데 그동안 뭐 하면서 지내지? 짐은 뭘 챙기지? 간혹 생명이 위독해지는 경우도 있다는데 설마 나도 그렇지는 않겠지? 아직 아무 증상 없긴 한데…


그야말로 온갖 걱정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무거운 침묵을 안은 채 잠재적 확진자를 태운 자동차는 달렸다. 뒤늦게 마스크를 써 봤지만 소용이 있을 리가. 그래도 안 쓰고 있는 것보다는 마음의 죄책감이 조금 덜했기 때문에 마스크를 쓴 채로 집 근처까지 왔다. 엄마는 나를 고속터미널 1번 출구에 있는 선별진료소 앞에 내려 주셨다. 


흐린 날이었지만 해가 조금씩 나오고 있었고 간혹 빗방울이 떨어졌기 때문에 우산과 선글라스를 챙겼다. 나들이용으로 가져온 것들이었는데 선별진료소 앞에서 쓰게 될 줄이야. 일단 화장실이 급했기 때문에 근처 고속터미널 화장실에 들렀다가 곧바로 선별진료소 앞으로 향했다. 뉴스나 개인 블로그(여기 오기 전에 찾아보았다)에서 봤던 것보다 훨씬 사람이 적었다. 주말이라 많을 줄 알았는데 줄의 끝이 한 눈에 보일 정도로 사람이 적었다. 일단 맨 끝에 서서 기다리기 시작했다. 


주위를 둘러보았다.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떨어져서 줄을 서 있었다. 우산으로 햇빛을 가리고 있는 사람들도 많았다. 시계를 보니 12시 45분이었다. 12시부터 1시까지는 소독 시간이었기 때문에 15분 정도 더 기다려야 했다. 나는 밀리의 서재에 들어가 다운받아 놓은 책을 읽기 시작했다. 이런 상황에서 책 내용에 집중이 될까 싶었지만 의외로 집중이 잘 됐다. 햇빛이 조금 눈부셔서 선글라스를 끼고 우산을 펼친 채 서서 책을 읽었다. 


1시가 되자 줄이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핸드폰에 시선을 고정한 채 앞사람과의 적당한 간격을 유지하면서 앞으로 조금씩 나아갔다. 정말 뜬금없는 얘기긴 하지만 책이 정말 잘 읽혔다. 적당히 흐린 날씨, 간간이 부는 산들바람, 그리고 흥미로운 책까지… 여기 오기 전까지는 일생 최악의 기분을 맛보며 왔건만 막상 와서 책을 읽으며 기다리니 기분이 나쁘지 않았다. 게다가 내 앞뒤에 서 있는 수많은 사람들과 내가 겪고 있는 불안을 공유하고 있다고 생각하니 약간 안심까지 되었다. 그렇게 때로는 조용히 책을 읽으며, 때로는 주위를 두리번거리며 내 차례를 기다렸다. 


맨 앞에 도달하기까지는 대략 50분이 걸렸다. 세 시간 정도 기다렸다는 블로그 글을 읽고 잔뜩 각오한 채 왔는데 다행히도 사람이 얼마 없어서 더위를 먹지 않을 수 있었다. 내 차례가 오자 휴대폰 번호가 찍힌 화면과 신분증을 제시한 뒤 곧바로 옆에 있는 의자에 앉아서 검사를 받았다. 가느다란 면봉을 콧속 깊숙이 넣었다 빼는 코로나 검사의 악명은 익히 들었기에 살짝 긴장했는데, 생각보다 아프지도 않고 그냥 반사적인 기침이 조금 나는 정도였다. 무엇보다 검사가 긴장할 틈을 안 주고 신속하게 진행되었기 때문에 어어어? 하는 사이에 검사를 당하고 손소독제를 문지르며 바로 귀가할 수 있었다. 


(계속) 



이미지 출처: https://blog.naver.com/kye8719/2224261900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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