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겐 어떤 유형의 유튜버가 어울릴까?
별다른 낙이 없어서 그런지 직장인의 2대 허언 중 하나인 ‘유튜브를 하겠다’가 머릿속에 자주 떠오르는 요즘이다. 이런 글을 쓴다고 해서 엉덩이 무거운 내가 당장 유튜브를 시작할 것 같지는 않지만, 그래도 상상은 즐거운 행위이니 글로라도 상상의 나래를 펼쳐 본다.
우선 주력 분야를 설정해야 한다. 섣불리 뛰어들었다가는 일상과 먹방, 자기계발, 고민상담 등등이 중구난방 뒤섞인, 이도저도 아닌 정체성을 지닌 채널이 돼버릴 수 있다. 특히 많은 이들이 유튜브 입문으로 시작하는 브이로그는 (어디서 주워들은 바에 따르면) 애초에 유명인이거나 남들과 구분되는 매우 두드러지는 특징이 있지 않은 이상 처음부터 조회수를 뽑아내기 어렵다. 하긴 나라도 옆집 직장인의 평범한 일상 브이로그는 굳이 보고 싶지 않을 것 같긴 하다.일단 나는 유명인도 아니고 외모, 직업, 자산, 취미 등 특정 분야에서 두드러진 특징이 있는 사람도 아니기 때문에 내 일상을 궁금해할 사람은 엄마나 이모 빼고는 없을 확률이 매우 높다. 따라서 일상 브이로그는 패스.
그렇다면 요즘 유행하는 먹방은 어떨까. 먹방을 꽤 자주 보는 시청자 입장에서 나름대로 시장을 고찰(?하자면 먹방 영상의 셀링 포인트는 대체로 다음과 같다. 첫째, 많이 먹을 것. 둘째, 즐기며 먹을 것. 셋째, 특이한(또는 유행하는) 걸 먹을 것. 넷째, 깔끔하게 먹을 것. 그 외에 외모가 출중하거나 특이하면 가산점이 붙는다. 나의 경우 즐기면서 깔끔하게 먹는 건 해당되지만 먹는 양이 특별히 많거나 모험심이 강해서 특이한 먹거리에 도전하지는 않을 뿐더러, 먹방 음식을 시키는 데 드는 천문학적인 식비와 신나게 먹고난 후 찾아올 현타와 불어난 살을 감당할 자신이 없어 패스.
그럼 요즘 핫한 여행 브이로그는? 솔직히 자신이 없다. 전생에 고양이 같은 영역 동물이었는지 밖에 나가서 돌아다니는 걸 즐기지 않는 기질을 타고난 탓이다. 막상 누군가의 강력한 추진으로 여행을 떠나면 신나게 놀고 먹고 잠도 잘 자긴 하지만, 많은 사람이 ‘쉬고 싶다’와 거의 동급으로 사용하는 표현인 ‘아~ 여행 가고 싶다’를 육성으로 입밖으로 내본 적은 거의 없다. 여행지 선정과 숙소와 항공편 예약, 일정 짜기 등을 극도로 귀찮아하는 탓에 모든 계획은 (일정 짜기를 광적으로 좋아하는) 동행자의 선택에 맡긴다. 그러면 동행자는 신나게 계획을 짜고 나는 적당히 맞장구를 쳐주고 돈을 보내고 여행지에 도착한 뒤로는 흐르는 물에 둥둥 떠다니는 해파리처럼 동행자의 빈틈없는 계획에 몸을 맡기고 이리저리 흘러다니면 그만이다. 내가 이 정도로 여행과는 동떨어진 삶을 사는 사람이라는 걸 설명하느라 말이 꽤 길어지고 말았다. 어쨌든 결론은 여행 유튜버도 패스.
이것도 안 되고 저것도 안 되면 대체 무엇을 주제로 유튜브를 하면 좋단 말인가. 사실 이 글을 쓰기 전에 남몰래 선망해온(? 분야가 있기는 하다. 바로 인생 유튜브다. 이 분야에서 무엇을 다루는지를 한 마디로 설명하기가 어려워서 왠지 수상쩍은 수식어가 나와버리고 말았다. 내가 정의하는 ‘인생 유튜브’란 왠지모를 현자의 풍모를 지닌 유튜버가 화면에 혼자 등장해 전반적인 사는 이야기와 인생의 희노애락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말하고, 나름대로의 인생 관련 인사이트도 풀어놓고 가끔 시청자들과 고민 상담도 하는 그런 이웃집 현자 내지는 동네 상담소 느낌의 채널을 말한다. 어릴 때부터 ‘인생 n회차 같다’, ‘현자/노인 같다’, ‘지혜롭다/현명하다’는 말을 많이 들어온 사람으로서 나름대로 소질은 있을 거라고 생각한다.
다만 이런 채널을 운영할 경우 오만함과 속단에 빠지지 않게 항상 조심해야 할 것이다. 나는 뛰어난 인사이트를 지닌 것도, 인생 경험이 많은 것도 아닌 30대 애송이일 뿐이고, 그저 남의 이야기를 잘 들어주거나 해결책을 제시하는 데 아주 약간 소질이 있을 뿐이다. 아직 유튜브를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내 생각을 풀어놓거나 남의 고민 상담을 해주면서 오직 내 생각만이 옳다는 아집이나 ‘하나를 보면 열을 안다’는 식으로 남의 상황을 속단하고 섣불리 해결책을 제시하려는 오만함이 영상에 은은하게 녹아있을까 봐 벌써부터 손발이 오그라든다. 아무래도 영상을 제작하기 전후로 이 글을 수시로 들여다보면서 끊임없이 스스로의 태도를 돌아보고 경계해야겠다.
이렇게 (처음부터 답이 정해져 있었지만) 미래의 내 유튜브 채널 정체성은 구독자와 사는 이야기 및 인사이트를 나누고 때때로 고민 상담도 하는 ‘이웃집 철학자’가 됐다.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고 과연 시작하기는 할지조차도 모르지만, 만약 정말로 채널을 개설하게 된다면 구독자 수에 최대한 연연하지 않고 꾸준히 영상을 만들어 올리는 성실한 채널이 되고 싶다. 비록 내 인스타그램과 브런치 스토리, 포스타입 채널은 꾸준함과 초연함과는 거리가 몹시 멀지만… 그러니 이 글을 보고 계신 여러분, 어느 날 유튜브에서 ‘이웃집 철학자’를 표방하지만 어딘가 조금 (많이) 어설픈 채널을 발견한다면 좋아요와 댓글, 구독과 알림설정까지 꼭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