커피가 사람이라면

어떤 친구를 고르시겠습니까

by 구선생

오늘은 무슨 커피를 마실지 매일 고민한다. 그것도 무척 진지하게. 맛있는 커피는 평일의 경우 그날의 업무 효율과 직결되는 에너지 부스터 역할을 하며, 주말의 경우 그날의 여유로운 기분을 만끽하게 해주는 요소이기 때문에 커피를 선택하는 일은 매우 중요하다. 아침의 작은 선택이 하루의 전반적인 무드를 좌우한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작지만 그 결과는 결코 작지 않다.


잠깐 커피 예찬을 늘어놨지만 평소에 마시는 커피 종류는 생각보다 다양하지 않다. 아메리카노, 카페라떼, 콜드브루, 바닐라라떼. 주로 이 네 가지를 그날 기분 따라 골라 마시고 당이 많이 필요하거나 유난히 기분이 꿀꿀한 날에는 카페모카, 말차라떼(에 샷 추가), 아샷추, 연유라떼, 헤이즐넛라뗴 등으로 변주를 준다. 보통 선택지는 겨우 네 가지인데도 고르기 전 계산대 앞에서, 또는 키오스크 앞에서 일생일대의 선택을 앞둔 사람처럼 고민한다. 그깟 커피 고르는 일이 뭐길래 싶겠지만 앞에서 말했듯이 커피가 하루를 만드니까.


일주일에 일곱 번씩 같은 주제로 고민하다 보니 이제는 특정 커피가 사람이라면 이런 느낌이겠다 하는, 제법 구체적인 이미지까지 형성하게 됐다. 이런 느낌의 사람과 하루를 보낸다면 대충 이런 느낌이겠다는 감이 잡히니 커피를 선택하는 것이 좀 더 쉬워졌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직도 꽤 자주 실패한다.


참고로 오늘 아침에도 모 커피 프랜차이즈 브랜드에서 야심차게 바닐라크림 콜드브루를 주문했다가 장렬하게 실패했다. 맛은 나쁘지 않았지만 콜드브루는 존재감이 너무 옅었고 바닐라크림은 부담스러울 정도로 크리미하고 텁텁했다. 무엇보다도 그것을 한 모금 마시는 순간 내가 원하는 오늘 아침의 무드와는 어울리지 않는다는 느낌이 들었다. 달콤한 음료를 홀짝거리며 씁쓸한 마음으로 집까지 계단으로 올라갔다. 당을 채워넣었으니 몸이라도 좀 움직여야지.


가만 있자, 얘기가 옆으로 샜다. 아무튼 결론은, 그날에 내가 원하는 무드에 어울리는 친구(커피)를 선택하면 하루가 조금 더 즐거워진다는 것이다. 사람마다 느끼는 이미지가 다르겠지만 내가 생각하는 네 가지 커피의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아메리카노

바쁘지만 에너지 넘치는, 갓생 사는 직장인 친구. 뒤끝 없는 깔끔한 성격이라 언제든지 편하게 만날 수 있다. 늘 활기 넘치는 친구답게 월요일이나 화요일 같은 주 초반에 만나면 활력을 멱살 잡고 끌어올려 준다. 단점이 있다면 멱살 잡혀 끌려다니다 보면 배가 금방 고파진다는 것. 대신 같이 다니면 재밌는 경험을 많이 할 수 있다. 보통 평일에 만나지만 주말에 만나도 좋은 친구.


카페라떼

부드럽지만 강단 있는 독서가 친구. 세심하고 사려 깊지만 은근히 강단과 고집이 있어 내가 잘못을 하거나 아니다 싶은 선택을 하면 부드럽고 날카롭게 지적해 준다. 책 읽기와 낯선 사람과의 깊은 대화를 좋아하고 고양이와 직접 짠 스웨터를 좋아한다. 똑부러지게 일도 잘 하고 주변 사람도 잘 챙겨서 제일 닮고 싶은 친구.


콜드브루

어딘가 금욕적인 느낌을 주는 종교인 친구. 얼핏 보기에 아메리카노와 비슷한 이미지지만 엄연히 장르가 다르다. 아메리카노가 자유롭고 개방적인 성격이라면, 콜드브루는 좀 더 엄격하고 금욕적이고 FM적인 성격이다. 종교로 치자면 청교도 같은 느낌이랄까. 좀처럼 웃거나 농담을 건네는 일은 없지만, 담백하고 진중한 성격이 무척 매력적인 친구다.


바닐라라떼

발랄한 여행가 친구. 워낙 여기저기 쏘다니느라 바빠서 네 친구 중에서 제일 얼굴 보기가 힘들지만, 만나는 순간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듬뿍 나눠받고 종일 깔깔거리다 기분 좋게 집에 돌아올 수 있다. 지나치게 낙천적인 탓에 가끔 철부지처럼 보이기도 하지만 그게 바로 이 친구의 매력. 덕분에 주변에 사람이 많고 어딜 가나 사랑받는다.

각기 다른 매력의 네 친구를 돌아가며 만나는 일은 생각보다 더 즐겁다. 무엇보다 어떤 친구와 시간을 보낼까 고민하면서 그날 내가 원하는 하루의 무드를 새삼 깨닫게 되는 일이 좋다. 파이팅 넘치게 보내고 싶은 날에는 아메리카노를, 차분하고 이지적인 하루를 보내고 싶은 날은 카페라떼를, 진중하고 담백한 하루를 보내고 싶은 날에는 콜드브루를, 달콤하고 낙천적인 기분에 잠기고 싶은 날에는 바닐라라떼를 고르면 된다. 가끔 판단 실수로 엉뚱한 친구와 함께하게 되는 날도 있지만, 뭐 어떤가. 내일도, 내일 모레도 해는 떠오르고 선택의 기회는 다시 찾아오는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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