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치도 듬뿍, 마요도 듬뿍, 뭐든 듬뿍!
점심으로 참치마요 주먹밥을 만들었다. 만들기 전에 레시피를 검색해보긴 했지만 주의깊게 읽지는 않았다. 내 머릿속에는 이미 맛있는 참치마요 주먹밥의 이데아가 존재했으니까. 레시피를 찾아본 건 주먹밥의 맛이나 요리법을 몰라서가 아니라 주먹밥의 이데아를 구현해 내려면 어떤 재료가 필요한지 파악해 두기 위해서였다. 내게는 핵심 재료만 알면 궁극의 주먹밥을 만들어낼 수 있을 거라는 근거 없는 자신감이 있었다.
우선 준비물은 (1인분 기준) 따끈한 밥 한 공기, 참치캔 반 개, 반달 단무지 7조각, 참기름, 마요네즈, 통깨다. 미리 얼려둔 밥이 냉동실에 딱 한 공기 남아있었기 때문에 재빨리 구출해서 전자레인지에 돌렸다. 삑삑 기계음을 내는 전자레인지 문을 열자 새 생명을 얻은 밥이 모락모락 김을 풍기며 얌전히 들어앉아 있었다. 스테인리스 볼에 따끈한 밥을 투하한 뒤 손가락이 베이지 않도록 극도의 주의를 기울이며 조심조심 참치캔을 따서 기름을 따라 버리고 숟가락으로 반 정도를 덜어 넣는다.
개나리처럼 샛노란 단무지는 도마에 올려 쫑쫑쫑 썰어준다. 밥과 함께 동그랗게 뭉칠 예정이기 때문에 너무 크게 자르면 단무지 조각이 주먹밥 위로 툭 튀어나와 조형미를 해치는 불미스러운 일이 발생할 수 있다. 따라서 전체의 조화를 해치지 않는 선에서 적당한 크기로 잘라준 뒤 볼 속으로 털어넣는다. 요리는 무엇보다 중용이 중요한 분야인 것 같다고 문득 생각한다.
이제는 양념을 할 차례. 밥숟가락에 참기름을 한가득 따라 골고루 뿌린다. 이로써 구수한 풍미 완성. 참기름 냄새는 참 신기하다. ‘고소하다’ 외에 참기름을 형용할 다른 방법은 없는 걸까. 분명 고소한데, 그것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는 참기름 특유의 기분 좋아지는 풍미가 있다. ‘참기름향’이라고밖에 표현할 수 없는 독특하지만 누구보다 친숙한 냄새다. 이것저것 잘 먹는 어른이 된 뒤로는 들기름도 좋아하게 됐지만, 좋아한 세월은 참기름 쪽이 훨씬 길다.
참기름으로 탄탄하게 기반을 잡은 밥에 마요네즈를 세 숟갈 정도 듬뿍 넣어준다. 이때 주의할 점은 ‘어, 너무 많은 것 아닌가?’ 싶을 정도로 과감하게 뿌려야 한다는 것. 마요네즈는 참치와 함께 주먹밥의 정체성을 나타내는 재료이기 때문에 존재감이 없는 것보다는 차라리 과한 편이 낫다. 참고로 나는 마요네즈 귀신이 들린 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많이 뿌린다. 그러면 맛이 좋다.
슬슬 군침 도는 냄새가 나기 시작한다. 이제 비닐장갑을 끼고 재료들을 골고루 섞어준 뒤 적당한 크기로 둥글게 뭉쳐준다. 어제는 찹쌀떡 크기로 뭉쳤는데 크기가 작아서인지 다 먹고 나서도 왠지 속이 헛헛했다. 그래서 오늘은 왕만두 크기로 만들어봤다. 의외로 작게 만드는 것보다 크게 뭉치는 게 모양 잡기가 더 쉽다. 쇠똥구리처럼 고운 구 모양을 만들고 싶지만 손의 구조적 한계 때문인지 요리 경력 부족 때문인지 자꾸만 일그러진 공룡알 모양으로 뭉쳐진다. 냅두자. 어차피 팔 것도 아닌걸.
친구에게 독립 선물로 받은 멋진 접시에 공룡알 주먹밥 네 개를 신중하게 배열한다. 좀 많은가 싶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순식간에 먹어치울 것을 그간의 경험으로 안다. 탄수화물에 치우친 식단 같아 단백질 보충용으로 냉동 닭안심도 굽고, 계란후라이도 하나 부치고, 닭안심만 먹으면 심심할까 봐 묵은지도 썰어서 한 접시 준비하고, 야채 칸에 잠들어 있던 오이와 피망을 스틱 모양으로 썰어 섬유질도 챙겼다. 밥을 차려놓고 봤을 때도 좀 많은가 싶었는데 이렇게 글로 써놓고 보니 진짜 많다. 이래서 살이 안 빠지나 보다. 코끼리도 풀만 먹는다는 모 트레이너의 일갈이 떠오른다.
좋아하는 유튜브 채널에 최근에 업로드된 여행 브이로그를 보며 음식을 천천히 음미하려고 노력한다. 브이로그가 30분 정도 길이니까 3분의 2 정도 볼 때까지를 식사 시간으로 잡으면 되겠다. 20분도 그다지 긴 식사 시간은 아니긴 하지만, 평소에 10분 이내로 밥을 마시다시피 하는 사람에게는 대단히 큰 도전이다. 오늘은 도전 성공. 천천히 먹어서라기보다는 워낙 차린 게 많아서 먹는 데 오래 걸린 것 같긴 하지만… 어쨌든 오늘도 잘 먹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