맑은 날 먹는 김치전과 간장비빔국수

맛있는 조합은 날씨를 가리지 않는다

by 구선생


김치전에 초고추장을 찍어먹는 게 우리집 전통이다.



늘어지게 한잠 자는 것이 주말 아침의 미덕이라지만 체질적으로 덕이 부족한지 토요일 아침 7시부터 눈이 번쩍 떠지는 사람들이 있다. 나와 동거인도 그렇다. 지난 주말에도 마치 아침잠이 없는 어르신들처럼 이부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우리는 짐을 주섬주섬 챙겨 근처 공원으로 향했다. 걸어서 한 시간 정도 거리에 있는, 규모가 꽤 큰 공원인데 워낙 걷기를 좋아해서 그 정도는 걸어갈 만 하다. 근처 맥도날드에서 맥모닝과 아이스 커피로 간단히 배를 채우고 부쩍 선선해진(그러나 차도 옆이라 그닥 신선하진 않은) 공기를 느끼며 공원까지 설렁설렁 걸어갔다.


가을로 접어드는 길목에 위치한 공원에는 생각보다도 사람이 더 많았다. 다양한 연령대와 체형을 가진 사람들이 저마다의 속도로 바삐 움직이며 햇살 아래서 건강한 땀을 흘리고 있었다. 대한민국 인구 중 4분의 3 가량이 운동부족 상태라는 뉴스를 어제 봤는데, 그럼 여기 나온 사람들은 나머지 4분의 1에 해당하는 건가? 그렇다면 난 꼼짝없이 4분의 3에 속하겠군. 그래도 대부분의 사람들이 나와 같은 길을 걷고 있어 다행이야. 그런 생각을 속으로 하며 여전히 설렁설렁, 느릿느릿 걸었다.


운동 후에는 근처 백화점 1층에 있는 폴바셋에서 1+1으로 산(매우 중요한 사실이다) 아이스크림 라떼를 한 잔씩 마시며 창밖을 오가는 사람들을 여유롭게 관찰하는 호사를 누렸다. 다 마시고 난 뒤 근처 빵가게도 구경했지만 입이 달아서 그런지 딱히 당기는 빵이 없어서 그냥 빈손으로 나왔다. 그리고 지체없이 집으로 향했다. 당장 해결해야 할 시급한 과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그것은 바로 단 입을 진정시킬 만한 짭짤한 걸 먹어주는 것.


메뉴는 김치전과 간장비빔국수로 정했다. 원래 김치전은 비 오는 날 먹어줘야 제맛이지만, 아쉽게도 김치전이 먹고 싶을 때마다 귀신같이 날씨가 쨍쨍한 탓에 매번 구름 한 점 없이 맑은 날 대뜸 김치전을 부쳐먹는 사람들이 됐다. 오늘도 예외는 아니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김치전은 먹고 싶을 때 먹는 게 제일. 집에 돌아와서 간단하게 청소를 한 우리는 각자 김치전과 간장비빔국수 만들기에 돌입했다.


메뉴가 두 가지나 되지만 만드는 법은 아주 간단하다. 우선 김치전은 부침가루와 튀김가루를 적당량(요리 초보들에게 가장 두려운 단어 중 하나) 섞은 뒤 물과 (또 다시) 적당한 크기로 썬 김치를 넣고 되직한 주홍빛 반죽이 될 떄까지 잘 섞어주면 반죽 완성이다. 여기에 냉동 오징어를 잘라 넣고 함께 섞어주는 것도 좋다. 바삭한 반죽에 쫄깃한 오징어의 식감이 더해져 식감이 더 다채롭고 재밌어진다. 반죽 농도 맞추는 것도 어렵지 않다. 너무 되직하면 물을 더 넣으면 되고, 너무 묽으면 부침가루를 좀 더 넣어주면 된다. 다만 너무 과감하게 털어넣으면 반죽이 무한증식할 수 있으니 주의하자.


이제 프라이팬에 기름을 골고루 두르고 표면이 적당히 달궈졌다 싶으면 국자로 반죽을 떠서 고르게 펴 준다. 요리 초보의 경우 너무 두껍게 올려놓지 않는 것을 추천한다. 다 익은 것 같아 호기롭게 접시 위에 올려놓았는데 한 입 먹어보니 속은 아직 찐득한 반죽 상태인 김새는 사태가 일어날 수 있기 때문이다. 매우 자세하고 사실적인 묘사에서 이미 눈치 채셨겠지만 내 경험담이다. 전 부치기에 서투른 초보들에게는 전 크기는 4분의 1 정도로 작게, 두께는 얇게 하는 것을 추천한다. 뒤집기도, 익히기도 쉽고 무엇보다 그릇에 옮겨놓으면 더 귀엽다.


노릇노릇 바삭바삭하게 부쳐진 김치전을 넓적한 접시 위에 차곡차곡 쌓아놓으면 김치전 만들기 끝. 이제는 간장비빔국수를 만들 차례다. 내 체감상 간장비빔국수는 양념비빔국수보다 만들기가 더 쉽다. 간장 양념을 만든 뒤 삶은 국수에 뿌려서 잘 비벼주기만 하면 된다. 두 번째 김치전이 노릇노릇 익어갈 무렵, 냄비에 물을 반 정도 채운 뒤 프라이팬 옆 가스불을 켜고 그 위에 냄비를 올려놓았다. 어라, 그런데 한참을 기다려도 물이 끓을 생각을 안 한다. 보골보골 개구리 알 같은 기포가 간헐적으로 올라오긴 하는데, 본격적으로 용암처럼 격렬하게 팔팔 끓지를 않는다. 어, 이거 왜 안 끓지, 하며 고개를 갸우뚱 하자 동거인이 말 없이 가스불 세기를 강으로 올린다. 이윽고 물이 팔팔 끓기 시작한다. 아하, 물이 안 끓을 때는 불 세기를 올리면 되는구나(바보 맞다).


무서운 기세로 부글부글 끓는 물에 소면을 투하한 뒤 5분 정도 기다린다. 젓가락으로 한 가닥을 건져 조심스럽게 맛본다. 음, 딱 알맞게 익었군. 가스불을 끄고 개수대 위에 미리 준비해놓은 체에 냄비의 내용물을 과감하게 붓는다. 물은 체 구멍으로 다 빠져나가고 면만 남는다. 찬물로 면의 온도를 식히면서 이리 뒤적 저리 뒤적거려 전분기를 빼준다. 얼음 몇 덩이를 넣으면 면이 더 쫄깃해진다는 말을 어디서 들은 것 같아서(요리 초보지만 어디서 본 건 많다) 냉동고에서 얼음 서너 덩이를 꺼내와 국수면 위에 박력 있게 흩뿌린다. 그리고 전분기가 빠지고 충분히 차가워질 때까지 주물주물.


이제 미리 준비한 양념장(간장, 다진마늘, 매실액, 식초, 설탕 등을 ‘적당량’ 섞어 만든 궁극의 간장양념으로, 네이버에 ‘간장비빔국수 레시피’라고 치면 AI가 훌륭하게 요약해 준다)과 함께 조물조물 섞어준 뒤 그릇에 정갈하게 옮겨 담으면 완성. 더 높은 완성도를 원한다면 위에 잘게 썬 김치와 김가루, 통깨 등의 고명을 뿌려주면 된다. 생각보다 예쁜 김가루 만들기가 어려워서 석탄 얹은 비빔국수의 비주얼에 가까워지긴 했지만, 어쨌든 맛은 괜찮았다. 바삭하고 쫄깃한 김치전과 함께 와구와구 먹었다. 중간중간 입 안의 짠기를 가시게 하기 위해 제로(이 또한 매우 중요하다) 사이다를 들이켜 가면서. 쨍쨍한 날 파란 하늘을 감상하며 먹는 김치전과 비빔국수도 꽤 별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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