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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Apr 25. 2016

상흔에 대하여

-상처의 흔적

누구나 그렇듯 나도 몸에 몇 개의 상처가 있다.


애기 때 무릎을 찧어 생긴 상처, 긁힌 상처, 동생이 갓난아기 때 눈 아래를 꼬집어 생긴 흉터. 

이런 외부적인 상처 외에도 나로 인해 생긴 상처도 있다. 

아니, 엄밀하게 말하면 ‘상처의 흔적’이라 해야 맞겠다.


가끔 고단한 하루를 보내고 집에 돌아와 샤워를 하기 전에 윗옷을 벗으면, 갈비뼈 위 어딘가의 지점을 둘러가며 브래지어 자국이 패여있다. 단숨에 피를 막을 정도는 아니겠지만, 그 흔적은 충분히 어두컴컴한 갈색으로 깊이 패여있다. 내 시선은 양쪽 갈비뼈 위, 가슴 살집의 바로 아래, 등 뒤의 척추, 그리고 자그마한 두 어깨 위의 선을 따라간다. 어두스름한 갈색과 불그스름한 빛. 


혹은 옷을 벗고 앉아 이것저것 하다 눈이 거울 속의 내 모습에 머무른다. 가끔은 갈비뼈가 징그러울 정도로 도드라져 보인다. 숨을 쉬었다- 내뱉어본다. 갈비뼈가 몇 개인지 세어본다. 갈비뼈의 자국과 깊게 패인 브래지어의 콜라보는 대부분은 무감각하지만 가끔은 괴기스럽다.


얼마 전, 공채 인적성 관리 매니저 아르바이트를 한 적이 있었다. 정장이 없는 나는 친구의 정장을 빌려 입었다. 친구의 정장 치마를 입기 위해 이른 새벽, 편의점에서 옷핀을 사 꽂았다. 그리고 한동안 일을 했다. 점심을 먹고 난 즈음, 조이는 듯한 압박감을 느끼면서도 옷핀을 절대 풀지 않았다. 그러다 답답했던 옷핀이 해방하듯 퉁- 하고 퉁겨 나갔다. 옷핀을 줍고, 다시 옷핀을 꽂기 위해 치마 허리춤으로 손을 집어 넣었다. 사실 이미 치마는 충분히 맞았다. 그리 크지 않았고, 오히려 옷핀을 꽂은 치마는 손가락 두어 개 들어갈 틈 없이 허리를 조이고 있었다. 옷핀을 꽂고, 퉁겨나가고, 다시 꽂고. 반복됐다. 


미처 깨닫지 못했던 사실이다. 나는 유난히 옷으로 허리를 조이는 것에 강박을 가지고 있다. 현대 사회에서 코르셋만 없다뿐이지, 여전히 나는 갖가지 청바지와 치마로 허리를 조이고 있다. 하이웨이스트(hight-waist) 바지나 치마가 많은 이유도 사실 이상할 게 없다. 바지나 치마를 사면 습관적으로 허리를 줄이기 위해 수선을 맡긴다. 조금만 커도- 손가락이 두세 개만 들어가도 허리띠로 꼭꼭 허리를 조인다. 고무줄 바지를 입지 않은 그런 날의 내 허리는 배꼽 언저리를 둘러가며 빨갛게 자국이 패여 있다. 상의는 브래지어 자국, 배는 마치 바지를 내 배 위에 찍어 남긴 듯 바지 단추와 실밥 따위의 자국들로 기이하게 덮힌다.


친구는 이걸 ‘상흔(scar)'이라고 불렀다. 

상흔. 흔적이 아닌 상흔. 어쩌면 내가 스스로 만든 상흔, 사회의 특정 기준들이 만든 상흔. 어떤 친구는 다이어트 중 식욕을 참기 위해 손등을 꼬집었다고 했다. 그 상처는 한두 번의 일시적인 상처가 아닌, 무수한 손톱 자국들로 손등 위에 깊게 남게 됐다. 어린 시절 발이 큰 친구들이 놀림을 받는 걸 보고 무리해서 작은 신발만 신었던 내 발의 새끼발가락은 기괴한 상흔 자체로 남아 버렸다. 이 상흔은 가시적인 상흔만은 아닐 것이다. 어떤 사람은 먹은 것을 토해내느라 목 안이 상흔으로 가득하겠지. 어떤 사람은 연약한 피부임에도 털을 제거하느라 조그마한 상흔이 수백 개 생겼겠지. 어떤 사람은 허벅지에 주사를 맞느라 상흔이 남아있겠지.


친구는, 그리고 나는 이 상흔이 과연 내(스스로)가 만든 것일까- 묻고 싶다. 이런 물음이, 그리고 상흔에 대한 이런 고백이 이제 필요하다. 그리고, 상흔을 더이상 남기지 않기 위한 이야기도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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