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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Feb 14. 2023

유언장 프롤로그

존재 양식의 변화

이걸 꼼꼼히 한 자 한 자 읽고 있다는 건 나와의 갑작스런 이별을 맞이했다는 사실일 테다. 이건 나의 유언장이기도 하고 아니기도 하다. 반은 유언장인 이유는 죽음을 맞이하는 나의 태도는 정말로 이렇기 때문이고, 반은 유언장이 아닌 이유는 죽음과 죽음 이후 내 몸과 삶의 정리는 이 글보다 더욱 면밀하게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언제나 유언장을 생각한다. 유언장의 초고를 쓰고 평생에 거쳐 나의 삶을 조금씩 반영하며 면면을 수정해야겠다고 다짐했다. 운이 좋아 기나긴 생을 살며 그 끝으로 조금씩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조금 몇 해 전의, 더 몇 해 전의, 더 훨씬 오래 전의 나를 되돌아 보며 내가 어떤 변화를 만들어 왔는지 궤적을 볼 수 있을 테다. 그 행운을 온전히 누리기 위해 나는 평범하지만 길게 살고 싶다. 이 글은 기나긴 유언장에 앞서 우선, 죽음에 대한 일종의 프롤로그다.


내 옆의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나와의 갑작스런 이별을 너무 슬프게 생각하지 말아 달라. 한때 죽음이라는 게 너무 두려웠던 적이 있다. 그 두려움은 철학과 학부 전공 수업에서 더욱 짙어졌고 많은 질문이 남았다. 이 두려움은 스물 두어 살의 내게만 있던 게 아니다. 어린 시절 한 손 끝으로 아파트 난간에 위태롭게 매달려 있다 추락하는 꿈보다도 기억에 남는 꿈이 하나 있다. 유치원생 즈음이었나, 초등학교 저학년 즈음이었나. 그 시절 평소처럼 갓바위를 열심히 오르며 굽이진 돌 계단을 한 발 한 발, 옆에 돌을 끼고서 열심히 도는데 그 길 끝에서 돌연 마주한 건 엄마의 영정 사진이었다. 사진 속 엄마는 여느 날처럼 매일 입던 진한 녹색 가디건을 입고서 활짝 웃고 있었다. 땀에 범벅이 되어서 기절하듯 안방으로 달려가 자던 엄마를 찾았다. 벌렁벌렁 가라 앉지 않던 그날의 심장, 다시 잠들기 어려웠던 긴 밤. 그 꿈을 지금도 종종 생각한다.


스무 두어 살. 태어나 처음이자 마지막으로 울며 잠에서 깬 적이 있다. 고향에 갈 때나 타는 커다란 대절 관광 버스가 눈 앞에 있었다. 아무 것도 모른 채 버스에 타는 사람들을 따라 탔는데, 차에 탄 그 누구도 나를 알아보지 못했다. 그러니까 내가 누군지 알아보지 못한 게 아니라 그들 눈엔 내가 보이지 않는듯 했다. 머뭇 거리며 사람들이 모여 앉은 좌석 근처 어딘가에 앉았더니 눈에 보이는 건 어떤 사람 품에 들려 있는 내 영정 사진이었다. 찬찬히 차 안을 돌아보니 사람들은 울고 있었고 이내 내 죽음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됐다. 아무리 사람들에게 말을 걸어도 사람들은 나를 알아 차리지 못했다. 하고 싶은 말이 너무 많아 무슨 말인지도 모르게 쏟아 냈지만 아무도 들을 수가 없었다. 순간 엄청난 두려움이 몰려 왔다.


더이상 나는 이 생을 살아갈 수 없다는 것, 더이상 내 옆의 사람들이 나의 목소리를 들을 수 없다는 것, 우리가 대화를 나눌 수 없다는 것, 더이상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없다는 것. 그리고 이 삶의 뒤에 무엇이 있는지 전혀 알지 못 한다는 것. 그렇게 버스 안에서 나는 펑펑 울다 잠에서 깼는데 조금 우습게도 베개가 눈물로 범벅이 돼 있었다. 일어나자마자 룸메이트가 차려 준 밥을 먹으면서 꿈 얘기를 하느라 입 안에 밥을 한가득 넣고서도 아이처럼 펑펑 울었다.


어린 시절의 죽음의 공포는 타인, 그중에서도 가장 친밀감과 애착을 느끼는 엄마에게로 이어져 있었고 성인이 된 후 죽음의 공포는 '나'로 이어져 있다. 엄마의 녹색 가디건에서 내 영정 사진으로 오는 동안 어쩌면 나는 타인의 죽음은 조금씩 받아 들이게 된 걸지도 모르겠다. 삶이 지난해지고 복잡해지면서 예전보단 가끔, 그러나 여전히 같은 깊이로 나의 죽음을 염려하던 내가 조금은 달리 받아들이게 된 아주 사소한 계기가 있다. 지난 백상예술대상에서 조연상을 받은 조현철 배우는 수상 소감으로 감사와 노고만을 이야기하는 대신 죽음을 앞두고 있는 그의 아버지에게 자신의 진심을 전했다.


"아빠가 눈을 조금만 돌리면 마당 창밖으로 빨간꽃이 보이잖아. 그거 할머니야. 할머니가 거기 있으니까 아빠가 무서워하지 않았으면 좋겠어. 죽음이라는 게, 난 그렇게 생각하는데 그냥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인 거잖아.

 작년 한 해 동안 내 첫 장편 영화 <너와 나>를 찍으면서 나는 분명히 세월호 아이들이 여기에 있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어. 그리고 그 영화를 준비하는 6년의 시간 동안 내게 아주 중요했던 이름들, 박길래 선생님, 김용균 군, 그리고 이경택 군, 할아버지, 할머니, 외삼촌, 아랑스 그리고 세월호의 아이들 특히나 예진이, 영은이, 슬라바, 정모... 나는 이들이 분명히 죽은 뒤에도 여기에 있다고 믿어.

그러니까 아빠, 무서워 하지 말고 마지막 시간 아름답게 잘 보냈으면 좋겠습니다. 소란스러운 일 잘 정리하고 도로 금방 가겠습니다. 편안하게 잘 자고 있으세요. 사랑합니다."


쏟아지는 기사가 극찬했듯 이 수상 소감은 개인을 넘어 사회에 어떤 메시지와 울림을 주었지만, 나에게 가장 의미 있는 구절은 바로 "존재 양식의 변화"였다. 머리를 망치로 번쩍 때리듯 같은 깨달음은 아니었다. 그저 고요히 두려움이 가라 앉았다. 물 속 깊이 가라 앉은 두려움은 이내 물에 풀려 버리듯 사라졌다. 죽음이라는 건 단순히 존재 양식의 변화이다. 존재 양식의 변화이므로 나는 어딘가에, 빨간꽃으로도 구름으로도 내가 좋아하는 별로도 어딘가에 남아 있다. 애초에 나는 별에서 왔으니까. 존재 양식의 변화. 그렇기에 두려워 할 필요도 없이 아름답게 죽음을 맞이하겠다.


그러니까 지금 나는 존재 양식이 변화했을 테다. 갑작스러워도 변화에 달라지는 사실은 없다. 손에 잡히고 말이 오가는 인간이라는 존재 양식으로는 더이상 당신들 곁에 없겠지만 나는 또 다른 방식으로 존재하고 있다. 그렇기 때문에 나의 손이 더이상 잡히지 않고 나와의 말이 오가지 않더라도 너무 슬퍼하지 말아 달라. 진심으로 나의 죽음을 지나치게 힘들어 하고 버거워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이제 다른 형태의 존재로 살아갈 나를 위해 축복해달라. 소리 지르고 울며 슬픔이 가득한 마지막을 보내지 말아 달라. 나의 장례식은 내가 좋아했던 플레이리스트로 가득 채우고 내가 좋아했던 와인과 맥주로 가득 채우고 내가 사랑했던 사람들로 가득 채우고 내가 얼마나 행복했는지, 내가 당신들을 얼마나 행복하게 했는지 이야기들로 가득 채워 달라. 가끔은 목 끝이 무겁게 차올라도, 다시 이야기를 이어나가 달라. 그게 내가 바라는, 나의 인간으로서의 존재 양식의 마지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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