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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Feb 21. 2023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어요

도시에서 살면서 친절한 사람 되기

친절한 사람이 되고 싶다.


누구나 그렇듯 나조차도 내 본 성격을 잘은 모르겠으나, 대강 생각했을 때 나는 51%의 선한 마음과 49%의 못된 마음을 안고 사는 것 같다. 사실상 선함과 못됨이 비등하게 공존하지만 결국은 고작 저 이 퍼센트가 나를 악하지 않게 살게 만든다. 그래서 나는 세상에서 가장 못된 생각을 하다가도 이내 정신을 차리고 타인에게 다정하고 친절한 이웃이 되려 노력한다.


이를테면 나를 선하고 친절하게 만드는 것들은 이런 거다. 문 하나를 두고 들어가야 하는 나와, 나와야 하는 사람이 마주할 때 어떤 이들은 기꺼이 문을 제 쪽으로 당긴 채로 내가 들어올 수 있게 기다려준다. 회사 엘레베이터에서 한 손 가득 짐을 들고 있을 때, 먼저 내리지 않고 꼭 열림 버튼을 눌러 주며 내게 먼저 내리라고 해주는 사람들이 있다. 우습지만 나는 그런 사소한 친절에 눈물까지 글썽일 수 있다. 왠지 벅차다. 그런 모습을 본 나는 다음 번에 언제든 꼭 써먹는다. 비슷한 상황에서 내가 먼저 내 쪽으로 문을 당긴 뒤 이웃이 지나갈 수 있도록 기다린다. 굳이 짐을 들지 않은 사람에게도 먼저 내리라며 손짓으로 양보한다. 그러면 두 배로 뿌듯하다. 이런 사소한 친절은 잘 전염되고 그럼 뿌듯함과 벅참을 느낄 사람들도 많이 늘어날 거라고 믿는다.


또 하나는 이런 거다. 동네 구민 체육 센터에서 어정쩡한 자세로 탁구를 치고 있으면 참견하기 좋아하는 사랑스런 어른들의 훈수를 가장한 레슨이 시작된다. 아는 척하며 호통을 치지만 그 뒷면엔 관심과 다정함이 있다. 물론 실력도 있다. 아무리 잘난 척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모르는 사람에게 도움이 되는 걸 알려 주기 위해 자기 시간을 쓴다는 건 결국 선한 마음이 해낸 것이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인정할 수밖에 없는 사실, 내 안에 있는 약간의 노인혐오를 선함이 기꺼이 이겨낸다. 적어도 오늘 이 시간만큼은 불신을 조금 내려 놓고 혐오하던 집단을 조금 믿게 된다.


이런 사소하고 자그마한 경험을 일상에서 겪을 때마다, 감사함이 흘러 넘치는 좋은 사람, 다정한 사람, 선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그런 마음을 먹는다. 그러나 49%의 못된 마음은 절대 조용히 있지 않는다. 예를 들면 이런 거다. 빡빡한 출근길 지하철에서 백팩으로 사람들을 밀고 다니는 사람, 아직 사람들이 내리지도 않았는데 비집고 먼저 타려고 달려 드는 사람, 몸을 이리저리 움직일 때 누가 봐도 고의로 힘을 주고 주변을 밀치는 사람. 출퇴근길 대중교통에서만큼은 나는 싸이코패스가 된다. 쏘시오패스인가? 양팔을 옆으로 쫙 벌려 내리기도 전에 먼저 타려는 사람들의 목을 한꺼번에 치고 싶다. 나를 세게 밀치고 내리는 사람의 뒷통수 머리 끄댕이를 잡아 당기고 싶다. 위의 문장을 쓸 때보다 이 문장들을 쓸 때 훨씬 신나게 키보드를 두드렸다. 49%의 마음은 아주 강력하다.


아무리 선한 사람이 되겠다고 마음을 먹어도 이렇게 인구 밀도가 높은 도시에서는 글러 먹은듯 하다. 예전부터 도시에 살면 마음을 넓게 못 쓴다는 류의 말들에 코웃음을 쳤는데, 이제는 인정한다. 사실이다. 당장 내 어깨를 치고 누르고 미는 지하철 출근자들은 동지나 이웃 보다는 그들로부터 나를 지켜내야 하는 적처럼 느껴지니까. 문을 잡아주는 친절에도 인류애를 느끼며 눈물을 흘릴 수 있는 난데, 외려 이런 역치가 낮아져 조그마한 것에도 눈물을 흘리게 된 건가? 생각해보니 나는 모성이나 가족애가 나오는 영상에는 눈물을 잘 흘리지 않는데 이상하게 인류애를 자극하는 영상에는 쉽게 눈물을 쏟는다. 그런 거, 막 도로에서 트럭이 술병을 쏟았는데 길 가던 사람들이 달려 와 데굴 데굴 굴러가는 술병들을 주워다 주는 그런 영상. 이상하게 그런 포인트에서 눈밑이 시큰하고 목이 뜨거워진다. 역시.. 이상한 데서 역치가 낮아진 게 틀림 없다.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자연을 보러 열심히 다니는 걸지도 모르겠다. 10명의 친절한 사람을 만나고서도 한 명의 못된 사람을 만나면 49%의 마음은 쉽게 작동된다. 인구 밀도가 빽빽하게 높은 도시에서 그 한 명 역시 어쩔 수 없이 고작 2% 모자란 마음에 졌을 거야. 꺾이는 게 쉬운 환경이다. 그래서 나도 사람들 숲을 떠난다.


큰 산을 올라 광활한 주변을 말 없이 한참 바라보는 것. 파도가 무서울 정도로 몰아치는 대양을 보며 숭고함과 감사함을 느끼는 것. 까만 하늘에 점점이 박힌 별들을 보며 나의 작음과 덧없음을 느끼는 것. 그저 소박하게, 떠오르는 태양에 고개 숙일 줄 아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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