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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Feb 09. 2023

나.. (이빨 없는) 젠지일지도?

영구치 결손인 자의 기록

"환자 분, 영구치 결손이네요. 알고 계세요?"


영구치 결손.

이름만 들으면 뭔지 모르겠지만 왠지 어마무시하다. 근데 내용은 더 무시무시하다.

영구치 결손인 나는 날 때부터 이빨이 네 개나 없다. 지금도 난 이빨이 당신들보다 부족하다.

(왠지 이 대신 이빨이라 쓰고 싶다.)


보통 사람은 유치가 스무 개 나고 그 유치가 제 몫을 다한 뒤 저절로 빠지면 그 자리에 영구치가 난다. 인간이라면 사랑니는 제외하고 스물 여덟 개의 이빨을 입에 달고 있다. 그런데 난 이 영구치가 스물 네 개다. 더 정확한 사실 - 그리고 더 재밌는 사실은, 내가 아직도 어린이적 유치를 세 개나 쓰고 있다는 것. 더 정확히 정리해보자면 내 입에 달린 이빨 중 3개는 유치, 1개는 임플란트, 그리고 영구치는 24개라는 것.


초등학생 시절. 유치가 빠지고 영구치가 나고 충치가 생기기도 하는, 누구나 다 겪는 자연스러운 과정 속에서 자연스럽게 날 치과에 데려간 엄마 김순옥은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소식을 듣는다. 따님이 이빨이 없습니다. 내 딸이.. 내 딸이 영구치 결손이라니요. 결손이라는 건 시간이 흐르거나 치료를 하면 나을 수도 있는 질병과는 다르다. 선천적으로 타고 난 유전적 결핍이므로 없는 이가 새로 뿅하고 나타나지 않는다.


스무 살이 되고 서울에 올라와 지금까지 치과 어느 한 군 데 정착하지 못한 채 전전하면서, 수도 없이 들어왔다. "환자 분, 영구치 결손이에요. 알고 계시죠?". 엄마한테 대충 들어서 알고는 있었지만 새삼 영구치 결손이 대체 뭔지, 약간은 억울한 마음에 원인이 뭔지 알고 싶었다. 뉴스를 검색해보니 아직까지 정확한 원인은 밝혀지지 않았지만 일종의 진화의 측면이라는 의견이 지배적인듯 하다. 식습관과 씹는 행태가 변하고 사람들의 얼굴이 점점 작아지면서 스물 여덟 개의 이가 몽땅 자리 잡을 공간이 없어 결손이 일어나는 거란다. 꽤 최근 연도의 기사들은 하나 같이 '요즘 아이들에게 많이 발견되어...', '최근 들어 문의가 늘고 있다...'고 한다. 젠지들과 발걸음을 나란히 하고 있다. 이런 식으로 어려지고 싶었던 건 아닌데요? 억울하다.


쉽게 말해 과도기에 당첨된 거다. 진정한 진화의 결과로 스물 네 개의 이빨로만 살 수 있는 건 아니기 때문에, 나는 아직도 유치를 네 개나 달고 산다. 내가 진화의 결과였다면 애초에 유치도 덜 났거나 어릴 때 이미 빠진 채로 잘 살았겠지. 서너살 됐을 무렵 아기 입 안에 귀엽게 나는 쪼끄마한 유치를 무려 삼십 대가 돼서도 쓰고 있다는 건데, 이 유치가 빠지게 되면 그 옆에 자리 잡은 다른 영구치들이 움직이게 된다. 그럼 잇몸이 약해진다. 그러니까, 나는 이가 없을락말락한 진화의 과도기에 서 있는 셈이다. 왠지.. 없어도 될 거 같은데 왠지 없으면 또 안 될 거 같은 그런 시기. 애매함에 훨씬 더 억울해졌다.


흔들리는 이에 실을 묶어 이마를 탁 치는 그 직전의 두려움. 엄마가 언제 잡아 당길지 몰라 오들오들 떨던 그 순간. 이미 아는 맛이라 더 무서웠던 그 고통. 그걸 서른 두 살이 돼서 또 겪었다. 어느 날 오른쪽 위의 유치가 흔들거리는 것 같았다. 그쪽에 치실을 하면 왠지 모르게 쿰쿰한 염증 냄새가 났고 손으로 슬쩍 밀어보면 이빨도 함께 밀리는 것 같았다. 아 이제 때가 왔구나.


영구치 결손이 있는 사람들은 유치를 정말 길어야 30, 40대 정도까지 쓸 수 있다. 말 그대로 어린 아이의 이빨이기 때문에 뿌리가 그렇게 튼튼하지 못하다. 엑스레이를 찍으면 영구치가 잇몸에 뿌리 내리고 있는 깊이의 절반도 되지 않게 짧다. 치과에 가니 역시 임종을 맞이 할 때다. 근 30년 가까이 쓴 유치 하나가 이제 생을 다 해간다. 흔들리는 채로 두면 주변 이에 영향을 줄 수 있으니, 이제 그만 보내주고 그 자리에 임플란트를 박자고 한다. 이제 정말 정말 억울해진다. 임플란티드 키드는 임플란트가 하나라도 있을까? 갑자기 화가 난다.


임플란트 과정은 생략하겠다. 다시 떠올려도 지옥의 고통이었기 때문에. 아직도 그때만 생각하면 소름이 돋는다. 그렇게 내 귀엽고 안쓰러운 유치는 내 곁을 영영 떠나갔다. 그리고 이제 나에겐 인공의 이빨 하나와 다른 귀엽고 소중한 유치가 세 개 남아있다. 그 말은 앞으로 임플란트 할 일이 세 번은 더 있다는 뜻이다. 괴롭다.


얼마 전 다른 치료 때문에 치과에 갔다. 지옥으로 박아 넣은 임플란트와 뼈도 잇몸에 잘 정착해 마치 내 이빨처럼 자리 잡았단다. 나머지 유치 세 개도 다행히 아직은 모두 멀쩡하단다. 이대로만 잘 써준다면 60대까지도 쓸 수 있겠다며 의사 선생님이 농담인지 진담인지 모를 소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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