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지 못하는 사람은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된다

넉넉한 사람이 되기 위한 노력

by 해이지

주는 마음은 참 어렵다.


사랑하는 사람들에게 뭐 하나라도 해주고 싶은 마음, 자그마한 것이라도 주고 그들이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며 스스로도 행복해지는 사람들. 난 이게 지나치게 이타적이라 그런 사람들이 실제로 있다고 믿기가 어려웠는데, 살다 보니 그런 사람들은 내 주변에도 꽤 있다.


작게는 귀엽다고 갖고 싶다고 흘려 말했던 이모티콘도 휙 사주고, 서점엘 갔는데 니 생각이 나더라라며 책을 휙 사주고, 내 거 사는 김에 니 것도 살까 싶었다며 뭔가를 또 휙 사주고.


나는 거의 평생을 그러지 못하고 살았고 이건 연인 간에나 가능한 이타심이라고 그렇게 생각했다. 이유는 너무 잘 알고 있다.


가장 큰 이유는 금전적인 문제지 뭐야. 어릴 때부터 쪼그라든 집은 내 마음까지 쪼그라들게 만들었다. 고등학생 때 친구들끼리 평일 저녁이나 주말에 코스트코를 가 피자며 베이크를 먹곤 했는데, 쪼그라든 내 주머니 안에서 나올 돈은 거의 없었다. 친구들은 대신해 내주기도 했고 빌려 주기도 했다. 글쎄 시간이 벌써 그런 지 10년이 넘어 정확히 그 횟수가 얼마 했던지 기억은 나지 않지만 몇 번의 그 경험은 나를 조금씩 바꿔놓았다. 처음은 고맙지만 두 번은 미안하게 느끼고 세 번은 나를 쪼그라들게 만든다. 세 번째 되는 즈음엔 내가 받은 걸 계산하게 된다. 그만큼 돌려주어야 하는 거라고.


주지 못하는 사람은 받을 줄도 모르는 사람이 된다.


그 시기 언저리부터 나는 받은 만큼은 돌려줘야 한다는 사람이 돼버렸다. 대학생 때 사정이 좀 더 넉넉했던 친구로서 베푼 호의도 나는 부담스러워 꼭 그다음 번에 갚아야만 했다. 내 사정을 뻔히 아는 그 친구가 왜 그냥 받을 줄도 모르냐고 빤히 또 서늘하게 날 바라보며 이야기했다. 연애에서도 크게 다르지 않은지 애인은 나더러 가끔 계산적일 때가 있단다.


그런 쪼그라든 내 주변에 넓은 사람들이 고맙게도 늘 있다. 받을 줄 모르는 사람은 아주 사소한 것에도 큰 고마움을 느낀다. 오랜만에 만나는 저녁 자리에 자기가 좋아하는 책이라며 불쑥 내민 친구(그 책은 나에게도 인생 책이 됐다), 그냥 아침에 본인 먹을 걸 사는 김에 내 거까지 샀다며 쿠키를 건넨 누군가, 식도염 때문에 고생한단 소리를 듣고 인천에서부터 식도염에 좋은 걸 들고 서울까지 온 친구, 매년 새해마다 새해 선물을 챙겨주는 친구.


쪼그라든 마음을 넓히고 받을 줄도 아는 사람, 더 나아가 주는 것도 할 줄 아는 사람이 되는 건 노력을 들여야 하는 일 같다. 차근차근. 친구 사이에, 우리 사이에 이 정도쯤은 애정 어린 선물로 받을 줄도 알아야 한다는, 반드시 갚아야 한다는 강박 없이도 받을 줄 아는 그 훈련, 그럼에도 당연스레 여기는 뻔뻔한 친구는 되지 않으려는 그 중간 어디 즈음의 사람이 되려고 마음을 다듬었다. 그럼에도 줄 수 있는 그런 이타적이고 사랑스러운 사람은 평생에 절대 되지 않을 거라 생각했는데, 그래도 안정적인 일을 하면서 쪼그라들었던 마음이 조금씩 펴지고 그로 지갑도 넉넉해지니, 어쩌면 나도 그게 가능한 사람일지도 모르겠다. 지난주에 친구를 만나기 전 서점에 들렀고 마침 만나러 가는 길이니 그 친구와 어울리는 책을 사 건넸다. 기분이 좋았다. 큰 것도 아니지만 왠지 모르게 나도 마음이 넉넉했다. 이게 주는 마음이구나.


준다는 것은 그 사람에게 내 옆에 있어줘서 고맙다는 표현이기도 했고 앞으로도 계속 내 옆에 둘 거라는 일종의 회유이자 강요ㅎㅎ이기도 했고 이만큼은 니 생각을 하고 있다는 약간은 부끄러운 표현이기도 했다.


진짜로 태생적인 건지 아니면 어린 시절의 긴 경험이 나를 이렇게 만든 건지 아직도 쉽지는 않아.. 쪼그라든 걸 펴고 늘리고 그렇게 단단하게 유지하다가도 조금만 소홀해지면 그 마음은 다시 쪼그라들려 든다. 마음을 다시 펴내고 주변 근육을 튼튼하게 만들고 유지하고. 그런 넉넉한 사람이 되고 싶은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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