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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May 28. 2023

꽃의 아름다움과 겸손

봄을 맞아 요즘 내 사진첩엔 꽃 사진이 잔뜩 쌓이고 있다. 집 앞을 산책하다가, 자전거를 타다가, 공원을 걷다가 너무 아름다워 잠깐 멈추고 사진을 찍는다. 하얀 꽃잎에 진분홍 무늬가 겹겹이 발린 장미꽃이 너무 비현실적으로 예뻐 한참 들여다봤다. 세상엔 처음 보는 꽃들도 참 많다. 흰 종이 네 장을 예쁘게 십자 모양으로 포갠듯한 꽃 이름은 산딸나무 꽃이다. 열매가 산딸기를 닮아 산딸나무라고 한다. 작은 밥풀들이 팝콘처럼 한 움큼 모여 있는 꽃은 만첩빈도리라는 아주 재밌는 이름을 갖고 있다. 네이버 렌즈와 사진으로 새로운 꽃들을 차곡차곡 수집하면 마치 파브르가 된 것 같은 기분이다.


예전엔 꽃에 별 관심이 없었다. 어차피 철에만 피고 곧 시들어버려서이기도 하지만 애초에 아름다움을 잘 느끼지 못했다. 그런데 요즘엔 눈에 보이는 꽃들마다 한참 관찰하다 사진으로 남긴다. 다 다르게 생긴 꽃들은 저마다 아름답다. 조금이라도 실물과 가깝게 담으려 휴대폰을 요리조리 들고 있으면 문득 엄마들이 된 것 같다. 한국에서 어머니들은 프로필 사진을 꽃 사진으로 등록하고 댓글엔 장미를 남긴다(고 알려져 있다). 카메라로 꽃 사진을 찍을 때마다 이 밈이 떠오르는데 왠지 웃기다. 예전에는 꽃 사진을 찍기는커녕 어머니들의 그런 행동조차 잘 와닿지 않았는데, 내가 직접 그러고 있으니 좀 웃기기도 하고 좀 다르게 다가오기도 하고.


약간.. 너무 그럴듯하게 말을 붙이나 싶지만, 길에서 꽃을 보며 충분히 아름다워하고 사진으로 남기는 것, 이젠 이게 겸손의 행위처럼 느껴진다. 정말로. 세상 앞에서 나는 너무나 작고 내 손 밖의 일들이 너무 많아서. 내가 작다는 걸 인정하며 세상 만물에 더 감사함과 아름다움을 느끼는 것. 크고 아름다운 자연 앞에서 충분히 경탄하는 것. 나이가 들면 들수록 겸손해지는 게 아닐까. 나보다 인생을 몇 십 년 더 살아본 인생 선배 엄마들은 이걸 진작에 깨쳤던 거지. 돌이켜보면 20대의 나는 평생 내가 나이 들지 않을 것처럼 굴었다.


가끔 우울하거나 생각이 지나치게 많을 때, 지칠 때, 또는 내가 너무 허접하게 내 삶이 너덜하게 느껴질 땐 자연을 보는 것 자체가 도움이 될 때가 있다. 아름다운 꽃 앞에 카메라를 드는 마음과 비슷한 원리다. 이 거대하고 변화로운 자연 앞에서 -조금 클리셰적이긴 하지만- 나라는 존재는 한 줌, 한 개일뿐이라고.


이제는 산책을 하면 나와 내 생각에만 집중하지 않고 길 주변을 둘러본다. 새로운 꽃을 만나고 이름을 찾고 사진을 찍을 때마다 아름다움과 겸손함과 감사함을 느낀다. 이런 기분은 더 좋은 사람이 되고 싶은 마음을 안긴다. 세상의 아름다움에 더 경탄할 수 있는 사람이 되어야지. 세상엔 이렇게나 아름다운 꽃들이 많은데 내가 아는 꽃보다 아직 알지 못하는 꽃들이 더 많다. 살면서 얼만큼 더 많은 꽃들을 만나게 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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