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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Jul 17. 2023

타투 또 하면 안 될까?

엄마아빠한테 또 한 소리 듣겠네~

내 몸엔 작은 타투들이 몇 개 있다. 내 몸의 모든 타투는 내 인생에서 아주 중요한 때, 그러니까 어떤 시기들을 기록한다. 10대를 끝내고 20대를 맞이하던 내 마음, 13년 겨울 나를 잠식하던 첫 우울감을 떨치고 어떤 삶을 살아야겠다고 다짐하던 순간, 14년 4월의 어느 날, 16년 지금의 나를 만든 강력했던 마음. 이 순간들은 언제나 늘 내 몸에 특별한 감정들을 돌게 했다. 이를테면 갑자기 머리끝부터 발 끝까지 짜릿하게 어떤 감정이 빠르게 돈 것처럼. 대충 ’머리를 망치로 한 대 맞은 듯‘이라는 전형적인 수사를 정말로 느꼈던 것처럼. 돌이켜 보면 이 순간들만큼 내 인생에 큰 영향을 끼친 것들이 없다. 큼지막한 순간들이랄까. 이때의 날들이 차곡차곡 쌓여 지금의 날 만들었다.


물론. 타투를 전혀 후회를 않냐 물으면 쉽게 답하긴 어렵다. 그 순간순간들을 기록한 걸 후회하는 건 아니고, 오로지 미감 차원에서. 실제로 새길 당시 비용의 몇 배를 들여서 지우...워 나가고 있는 타투도 있는데 무지 아프다. 살면서 느낀 고통의 통각 중 최상위권이다. 타투를 지울 때 걸리는 시간이나 드는 아픔은 타투를 새길 당시 타투이스트 실력에 반비례한다는데 지금 와서야 괜히 그들을 탓하고 싶지만, 뭐 내 선택이었지 뭐.


피부과에서 타투를 지우기 시작하면서 한동안 타투를 하고 싶단 마음이 쏙 들어갔더랬다. 후회를 넘어 지우기까지 하니 더 신중해질 따름이고 무엇보다 더 새기고 싶은 것도 없었다. 사실상 평생 몸에 새길 것은 평생 갖고 갈 마음 정도는 돼야 할 수 있다는, 나름의 신념을 지키기 위해서 더 신중했다. 요 몇 년 간은 그럴 순간도, 그럴 마음도, 그럴 사건도, 계기도 모두 없었다.


그런 시절을 보내고 있어서일까. 주변에서 타투를 한다고 하면 나도 모르게 그들을 말리고 있었다. 엥? 내가 왜? 내가 왜 우리 부모님처럼..? 레터링은 아니다, 도안을 조금만 더 생각해 봐라, 타투이스트는 누구냐, 디자인이 유행 타는 건 아니냐, 기존 타투와 잘 어울릴지 생각해 봐라 어쩌고저쩌고 내가 뭐라고. 그러던 내가. 그러던 내 몸이 이제 또 할 말이 생겼나 보다.


역시 인간은 고난을 겪어야 이야깃거리가 생기는 건가. 올해 힘든 시기를 보내고 그 시기를 극복하기 위해 이곳저곳 누비다 보니 괜히 이 순간들을 기록하고 싶어 진다. 발리의 한 요가원에서 아주 오랜만에 짜릿한 어떤 깨달음을 느꼈을 때를, 그리고 지금 산티아고 순례길 위에서 물집이 터지고 어깨가 무너지면서 매일을 새벽에 일어나 한 발 한 발 디디는 순간을. 하지만 타투를 지워 본 경험을 해봤으니 조금은 고민이 된다. 물론 후회라는 감정은 아무리 고민해 봤자 지금 이 순간엔 전혀 알 수 없다. 어차피 지나 봐야 안다. 그걸 감당하는 것도 나다. 감정도, 고통도, 돈도. 셋 모두를 함께 경험하는 날에도 결국 그 순간은 영원히 기억된다. 내가 왜 그걸 몸에 새겼는지, 그리고 왜 지웠는지까지도. 그렇게 타투는 그 순간을 평생 잊지 못하게 만든다.


그래서 말인데 타투 또 하면 안 될까?

이 긴 여행이 끝나고 나면 타투를 하려 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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