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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ㅎㅈ Oct 25. 2023

야채곱창을 사러 간 날

난 돼지 야채곱창을 정말 좋아한다. 당연히 배달 앱에는 믿고 먹는 단골 곱창집이 있고, 매주 목요일엔 아파트 단지에 맛있는 곱창 트럭이 온다는 것도 알고 있다. 매주 수요일마다는 아파트 장이 열리는데 그때 오는 곱창 트럭도 있다. 곱창의 품질과 맛으로 따지자면 단골 곱창집이 가장 맛있고 그다음이 목요 곱창 트럭이다. 사실 수요일 아파트 장의 곱창 트럭은 그저 그렇다. 야곱에는 대창이 국룰인데 수요 곱창 트럭은 곱창의 양이 적은데다 무엇보다 요리하면 쪼그라들고 질겨지기 마련인 소창을 쓰기 때문이다. 그래서 수요 곱창 트럭엔 아주 예전에 한두 번 정도 가고 더 이상 안 갔더랬다.


퇴근하기 한 시간 전쯤까지 오늘이 목요일인 줄 알고 있었다. 마침 동거인도 약속이 있어 집을 비운다고 하니, 퇴근하는 길에 목요 곱창 트럭에서 맛있는 곱창을 1인분만 포장한 다음, 집에 와 씻고 재미난 걸 보며 야곱을 때려아지 무척 설렜다. 나의 이 설렘은 동거인과 통화로 산산조각이 났다. “오늘 수요일이야..”.


집에 남은 반찬들이랑 밥을 먹어야 하나 꽤나 심란하다. 그냥 퇴근해 집 반찬으로 밥을 먹기엔 오후 내내 설렌 기대를 너무 많이 했다. 집으로 가던 길에 결국 발걸음을 돌려 수요장 곱창 트럭 앞에 섰다. 아무리 맛이 없어도 야곱은 야곱이지. 야채곱창 소 사이즈를 시키고 계좌 이체를 하는 동안 사장님이 곱창을 볶는다. 꽤 기다리는 시간이라 멍을 때리다 나도 모르게 곱창을 볶는 사장님께 눈이 갔다. 요즘 꽤 날씨가 추워졌는데도 뜨거운 가스 불 앞에서 곱창을 볶는 사장님 두 뺨이 발갛다. 왠지 모르게 우리 엄마를 닮은 것 같다고 생각했다. 가느다랗게 옆으로 처진 두 눈, 도톰한 눈두덩이, 조금 튀어나온 입. 얼굴을 벌겋게 하고서 더우신지 가끔 땀을 닦아내신다. 엄마보다는 나이가 조금 더 있는 것 같다.


곱창을 다 볶은 사장님은 은박지를 드르륵 뜯은 다음 스티로폼 접시에 올리고 그 위에 야채곱창을 수북이 담으신다. 그런 다음 은박지로 곱창을 잘 감싼 다음 검정 비닐봉지에 넣어 손잡이를 단단히 묶고 내게 넘겨주셨다.


“저 오늘이 마지막이에요.”

- 네?

“이번주가 끝이고 다음 주부터 안 나와요. 그동안 감사했습니다.“


내가 단골이 아니란 걸 사장님이 더 잘 아실 거다. 한두 번 밖에 가질 않았으니 얼굴도 전혀 익지 않을 텐데 사장님은 마치 내가 매주 왔던 손님인 것처럼 고개 숙여 감사하다고 하셨다. 그 말을 듣는데 왠지 눈물이 날 것 같았다. 사장님은 언제부터 여길 나오셨던 걸까. 얼마 동안 매주 수요일에 꼬박꼬박 와서 트럭을 열고 곱창을 볶으셨던 걸까. 이런 이야기를 나누기엔 손님이 너무 많았다. 평소 같으면 남들과의 스몰 토크를 그리 편해하지 않는 난데 지금은 왠지 말을 하고 싶었다.


- 아쉽네요.

“네, 정말 감사했어요. 앞으로 건강하시고 행복하시길 바랄게요.”


단순히 수요일마다 다른 판매 지역으로 이동해 가는 느낌이 아니다. 은퇴하시는 걸까? 환하게 웃는 발간 얼굴 뒤엔 어떤 이야기가 있을까. 잘은 모르겠지만 나도 꼭 덧붙이고 싶었다.


- 정말 아쉬워요. 사장님도 꼭 행복하시고 건강하시길 바랄게요.


봉지를 손에 꼭 쥐고 뒤를 돌아서는 내게 사장님은 또 그동안 감사했다고 덧붙이신다. 나도 다시 뒤돌아 감사했다고 인사했다. 고작 두어 번 온 게 다지만, 어쩌다 보니 오늘이 마지막이 되었지만 감사하고 건강하고 행복하시길 바라는 마음은 진심이라고, 그렇게 꾸벅 인사했다. 이럴 줄 알았으면 몇 번 더 올걸.. 마음이 많이 아쉽다.


나이가 들면서 점점 타인에 대한, 심지어 잘 모르는 타인이라 할지라도 그들에게 애틋함이 생기고 동지애가 생긴다. 어찌 됐든 이 세상에 태어나 이 나라에서, 이 지역에서 함께 고군분투하며 살아가고 있는 인간에 대한 사랑일까. 이런 동지들에 대한 응원과 측은지심도 날로 두터워진다. 정말로 모두가 행복했으면 좋겠다. 얼굴이 익지도 않은 내게 그동안 감사했다고 말씀해 주시는 사장님이 앞으로 정말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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