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ㅎㅈ Oct 20. 2023

마치 미슐랭 평가원

피 같은 금요일 밤, 야근을 하게 돼 저녁밥을 먹으러 회사를 어슬렁 거린다. 마침 얼마 전 회사 사옥 일부가 리모델링하면서 식당 몇 개가 새롭게 들어왔다. 잘 됐다. 날도 추운데 밖에 나가지 말고 안에서 해결해야지.


그렇게 퓨전 어쩌고라는 식당에 들렀다. 어제 오픈했다.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금요일 저녁인데다 회사 안쪽이라 그런지 사람이 거의 없다. 들어서자마자 전 직원이 나를 쳐다본다.


메뉴판을 정독하다 주문을 넣는데 뒤통수가 따갑다. 뭐징? 뒤돌아보니 왼쪽 대각선 뒤쪽에 한 중년의 남성이 창문 옆 테이블에 앉아 지긋이 나(를 포함한 주변)을 응시하고 있다. 음식을 기다리는 손님인가 싶었는데 내 메뉴가 들어가고 나올 때까지 그 테이블에 아무것도 놓이지 않자, 그제야 알겠다. 이 사람, 이 식당의 높은 사람이다.


오픈을 어제 했고, 그러니 아마도 개시 주간의 분위기와 손님들의 반응, 또 직원들의 응대가 중요할 테고 그러니 마치 미슐랭 비밀 평가원처럼 저렇게 몰래 앉아 손님인 척 손님들을 바라보고 있는 거겠지.

그때부터 약간 신경이 쓰이기 시작한다.


이윽고 내가 시킨 음식이 나왔다. 밥을 가져다준 종업원이 나직하게 "저희 음식.. 드셔보셨나요?"라고 물었다.

- 아.. 아뇨; (어제 오픈하셨잖아욧!)


그러자 종업원은 아주 친절하고 조금 길게 어떻게 이 메뉴를 먹는지 설명해 주었다. 고작 한 그릇 짜리 음식이었는데 굉장히 친절하다. 하지만 그때부터 내 손이 떨리기 시작했다.


넓디넓은 식당에 혼자. 하필 좌석도 왜 이런 식으로 배치된 건지, 내 자리는 마치 이자카야의 다찌석처럼 한 줄로 길게 펼쳐진 테이블 중 한 자리였는데, 그 앞은 주방장이나 키친이 아니라 식당 전경이 한눈에 펼쳐지는 정중앙 자리였다. 나름 혼밥 짬바가 높은 나도 조금 머쓱한 위치다.


어쨌든 묵묵히 밥을 먹는데 온 직원이 내 얼굴과 표정과 손을 쳐다보고 있는 게 느껴지고… 대각선 뒤쪽에선 지긋이 응시 중이고... 이때 또 다른 직원이 다가온다.

"손님 이 메뉴는 우선 위쪽의 야채들과 함께 드신 후 나중에 수란을 터트려 ~~~"


또 두 입쯤 먹자 또 다른 직원이 다가온다.

"손님 혹시 양념장이 부족하지는 않으신지요원하신ㄷ~~~”


젓가락을 든 손이 떨린다. 가뜩이나 젓가락질 못하는 내가 두툼한 중식 젓가락을 쓰니 거의 손으로 먹다시피 하는 중인데 한 입마다 말을 거니 땀이 삐질 나고 괜히 두근 거린다.


게다가 딤섬을 먹을 때 주로 쓰는 중식 숟가락은 더 젬병이라 솥밥의 밥을 거의 퍼먹지 못하고 있다. 한 백 번쯤 고민하다 가까스로 용기를 내 손을 든다. 그러자 전 직원이 날 향해 달려온다...........

"네 손님"

- 저.. 죄송한데 숟가락 좀 ㅠ 일반 숟가락 좀 주시면 안 될까요?


선착순 1등 직원이 다급하게 주방으로 가 일반 쇠 숟가락을 가져다주시며 묻는다.

"손님 저희 식기가 많이 불편하신가요?"

- 아뇨ㅠㅠㅠㅠ 제가 원래ㅠㅠㅠ 이걸 잘 못 써요ㅠㅠㅠㅠㅠㅠㅠ


여러모로 안절부절x 좌불안석 불편불편 와중에 맥주라도 마시면 좀 나을까 싶었으나 조금이라도 더 길게 있으면 안 될 거 같아 이내 마음을 고쳐먹고 서둘러 밥을 삭삭 긁어 설거지한다. 좀이라도 남기면 붙잡고 만족도 조사를 할지도 모른다.


드디어 계산. 그렇게 식당을 나오니 마치 내가 미슐랭 평가원, 또는 맛집 전문 블로거쯤 되는 기분이다. 식당의 분위기에 전염되고 말았다. 괜히 식당 내부를 더 살펴보고 메뉴를 음미하고 평가하게 된다.



죄송하지만 솔직히 맛있진 않았다.

건승하세욥…

작가의 이전글 순옥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